들어가며: 문제제기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부터 전 국가적 차원에서 전개된 노동시장 유연화 및 경제구조 개편은 과거 기업별 노조체계에 기반하고 있던 민주노조 진영에 위기감을 불러오면서 산별노조로의 전환 및 조직통합을 거세게 압박했다. 1994년 전국과학기술노조, 1998년 보건의료노조, 2001년 금속노조 출범 등으로 본격화된 산별노조운동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2004년 39.4%를 기록했던 우리나라 전체 조직노동자 대비 초기업노조 소속 조합원 비율은 2013년 말 55.7%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며,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 전체 가맹단위 조합원의 79.9%가 초기업노조에 속해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산별노조의 외형적 성장 이면에는 다양한 비판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혹자는 조직형식이나 조직운영 측면에서만 산별노조일 뿐 교섭권이나 쟁의권 등 기업별노조가 갖고 있던 핵심권한은 여전히 기업단위에 온존해있다며 우리나라의 산별노조가 아직까지 ‘무늬만 산별’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같은 업종에 있던 여러 기업노조들이 단일한 조직체계를 갖춤에 따라 한편으로는 특정 산업․업종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결집성을 높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와 같은 탈업종적 성격의 지역연대활동이 위축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평가도 있다. 심지어 노동조합 간부들과 달리 조합원이 산별노조 건설의 전략적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는 계기는 거의 없었으며 이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관여된 특수한 조건에서만 산별노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최근 수년 간 노동조합 안팎의 여러 환경조건의 변화를 계기로 산별노조의 현장조직력 누수가 보다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복수노조제도 시행 이후 급격히 증가한 기업노조 설립과 기존노조 조합원의 이탈 및 소수노조화를 들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만 하더라도 2011년 7월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 이후 1년 6개월 만에 25개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설립됐고 그 중 18개가 소수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 누구도 쉽사리 노동조합 간부를 맡으려고 하지 않는 노조간부 기피 현상, 노조간부의 일상화된 연임-중임 및 임단협 중심의 관성화된 조직운영, 조합원들의 저조한 집회․파업 참석 문제 등은 오늘날 노동운동 활동가라면 누구나 그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자 산별노조의 현장조직력이 약화되고 있는 증거들이다.

이 글은 우리나라 산별노조가 조직의 근간이 되는 현장에서부터 조직력 약화를 깊이 체험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현장간부 재생산의 관점에서 현장조직력 약화의 배경과 원인을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현장간부란 산별노조 중앙이나 지역이 아닌, 각각의 단위사업장을 대표하는 임원 및 집행위원과 사업장 내 대의원을 지칭하는데, 산별노조의 현장조직력을 분석함에 있어 이들 현장간부의 재생산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 산별노조의 조직체계에서 현장간부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와 역할 때문이다. 노조 중앙이나 지역지부처럼 초기업적 상급단위에 속한 간부들은 노조 전체나 특정 지역에 속한 사업장 전체를 활동반경으로 삼지만 현장간부는 기본적으로 지역지부나 산별노조체계 안에서 자기 사업장 조합원들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게다가 초기업단위의 상근간부가 대부분 노동조합이 채용하는 간부인 데 반해, 현장간부는 자신들이 속한 사업장의 조합원들로부터 선출된 –또는 그렇게 선출된 대표자가 임명하는- 간부이자 동시에 조합원들과 직접 소통한다는 점에서 기층의 조합원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산별노조 중앙이나 지역에서 사업이나 지침을 추진할 때 조합원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가 하는 것은 이들 현장간부들의 의지와 노력에 좌우된다.

둘째, 현장간부의 조직 내적 매개역할이 산별노조의 추동력에 관건으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집단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소홀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간부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기업의 고용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노동조합 간부들, 즉 노동조합 중앙이나 지역단위에서 직접 채용하는 간부들에게 주로 집중해왔으며, 현장간부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현장간부 재생산이 위기에 봉착하게 된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이 연구는 그동안 노동조합 연구자들이 다소 간과해왔던 -그러나 노동조합 내 그 어떤 집단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집단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보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 검토: 현장간부 기피 현상의 배경 및 접근방법

조합원의 현장간부 기피 현상 및 노조활동에 대한 낮은 참여도가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조합원의 인식 변화와 관련된 문제라고 가정해볼 때 이에 대한 가장 전통적인 접근방식은 이른바 노동계급의 부르주아화 명제(embourgeoisement thesis)에서 찾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 및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소득과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노동자들이 사회의식 및 삶의 양식 전반에 중간계급의 가치나 태도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보는 부르주아화 명제는 구매력에 기초한 사회경제적 지위 구분이 생산관계에 기초한 계급적 구분을 대체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부의 증가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 노동자(affluent worker)의 보수화가 노동조합운동 및 노동자 정당이 약화된 원인이라고 보는 설명방식이다.

그러나 부르주아화 명제에서 일컬어지는 부유한 노동자의 삶과 실제 현실의 삶을 비교하면서 그 타당성을 경험적으로 검증했던 골드소프 등(Goldthorpe et al., 1968a; 1968b; 1969)은 노동자들의 가치지향이나 태도가 실제로 중간계급의 그것으로 동화되지 않았고 계급상황 역시 변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부르주아화 명제를 부정했다. 대신에 노동자가 자신의 직무나 회사동료, 노동조합, 직업 그 자체에 대해서 도구주의적 태도 및 가족주의적 태도, 즉 자신과 그 가족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임금과 고용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들은 이러한 경향이 사회변혁적 계급운동에 대한 부유한 노동자들의 무관심과 도구적인 태도를 뜻한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집단주의는 고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골드소프와 그 동료들의 이 같은 분석은 노동자가 일정한 경제적 성취를 달성하게 된 시점부터는 노동조합에 대해 도구적인 태도를 갖게 되며, 이것이 한편으로는 사회변혁적 실천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집단행동의 구심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조합의 도구적 역할에 대한 강조는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의사에 관한 연구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utility theory) 혹은 현재의 일자리에서 경험하고 있는 불만족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dissatisfaction theory) 노동조합에 가입하려 한다는 것이다(Guest and Dewe, 1988; Klandermans, 1986; Wheeler and McClendon, 1991). 그러나 현실의 노동조합운동이 보이고 있는 사회변혁적 실천들을 생각해본다면 노동조합의 구성원들 모두가 비단 경제적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노동자는 도구적 목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신념 혹은 노동자연대와 같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공감을 이유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도 한다는 것인데(ideological theory) 이 같은 주장에서는 노동자의 신념이 형성되는 작업장 경험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강조된다(Guest and Dewe, 1988; Van de Vall, 1970).

특히, 노동조합 활동가 및 전임간부에 관한 국내의 선행연구들은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전임간부로서 활동을 지속하는 데 있어 개인의 신념 및 그것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효래(2004)는 금속노조 및 보건의료노조의 지회 전임간부들이 간부활동을 지속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직업적 경력상승이나 경제적 보상이 없는 조건에서는 이데올로기적 몰입 여부가 간부활동을 지속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했으며, 박현미․이상학․이상훈(2013) 또한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가로 거듭나거나 간부활동을 지속하게 된 계기로서 회사 내부의 각종 부조리에 대한 불만, 파업투쟁의 경험을 통한 연대의식, 노동조합에 대한 신념과 간부활동 경험이 주는 만족감 등을 제시했다. 이상의 논의들은 조합원이 노동조합 간부를 맡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배경을 검토하는 데 있어 노동조합에 대한 도구주의적 기대감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계급적 혹은 사회변혁적 신념과 그것이 형성되는 맥락들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도구주의적 태도나 신념이 노동자 개인 차원의 요인이라면 노동조합의 조직구조가 현장간부 재생산 및 현장조직력 약화에 미치는 효과도 가정해볼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 어떠한 조직이 됐든 간에 조직규모가 증가하면 그 조직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관료제를 발전시키게 되며 관료제화는 그 자체로서 구성원들에게 여러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Blau, 1956; Kelly and Heery, 1994; Michels, 1962; Offe and Wiesenthal, 1980). 블라우(Blau, 1956)에 따르면 관료제화는 업무의 세분화 및 정교한 노동분업, 공식적인 지위 위계에 따른 차등적인 권한 부여, 명확한 업무규칙과 탈개인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관료제는 직책에 따른 위계적인 권한 배치로 인해 오히려 조직의 효과적인 작동을 저해하기도 하는데, 특히 노동조합처럼 민주주의적 운영원리를 지향하는 조직에서는 관료제적 위계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구성원들이 상층부에 대해 느끼는 불평등이 구성원의 조직활동 참여 및 조직목표에 대한 공감을 저해한다고 여겨진다. 더 나아가 미헬스(Michels, 1962)는 민주주의와 대규모 사회조직의 관료제적 운영원리가 양립할 수 없으며 관료제적 구조를 갖는 모든 조직은 필연적으로 상층부의 소수에 의한 지배원리(iron law of oligarchy)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했다. 일, 가족, 여가 등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에 바쁜 기층의 구성원 대중은 조직운영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만한 시간도 없으며 조직 내외부의 복잡다양한 환경들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능력과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지도부의 역할에 대해 더 의존적으로 변화해가는 동시에 조직의 일에 대해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미헬스의 관료제 이론은 과도하게 구조결정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일련의 조직행동을 개인의 경험이나 태도로 환원하지 않고 그가 속한 조직구조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을 갖기도 한다.

한편, 오페와 비젠탈(Offe and Wiesenthal, 1980)은 노동조합의 규모와 조직력에 대해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즉 노동조합의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사용자에 대한 제재력이나 파업력이 계속해서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이들은 조직규모 증가에 따른 관료제화 효과 때문에 조합원 규모와 노동조합의 힘이 역U자형 관계에 있다고 봤다. 가령 매우 전투적이지만 파업을 수행하기에는 조합원 규모가 너무 작고 파업기금 등의 재정을 마련할 수 없는 노동조합이 있는 데 반해 조합원 수가 많고 축적된 파업기금도 많지만 고도로 관료화돼있는 탓에 내부의 소통 및 조합원 동원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조합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조합원 규모의 극대화보다는 관료제화의 부정적 효과가 노동조합의 힘을 저해하지 않는 조직규모의 최적화가 중요한 과제임을 제안하고 있다.

오늘날 산별노조와 같은 대규모 노동조합은 대표적인 관료제 조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중앙(본부)-지역(지부)-단위사업장(지회)의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체계와 함께 각 단위별로 업무범위와 권한이 정해져있고, 노동조합의 일을 전담하는 채용직 간부가 존재하며, 이들이 각각 분업화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노동조합운동이 단위기업 차원에서 이뤄지던 시기에는 단위노조의 역량이 현장 노사관계의 향방을 좌우했다. 비록 여러 노동조합들이 지역이나 업종별로 연맹체를 꾸리고 특정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단위노조의 주체적 역량과 전문성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노동조합 깃발을 내걸고 하는 모든 싸움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당사자인 싸움이었고, 때문에 -일부 구성원의 무임승차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산별노조와 같은 중앙집권적 조직구조에서는 현장의 자생성이 약화되고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이 떨어지는 관료제의 역기능이 발생하기도 한다. 조직체계에 따른 위계적 권한 부여로 인해 단위사업장의 활동이 상급단위의 지시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고, 노동조합 활동의 전문성과 역량이 중앙이나 지역으로 집중되고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채용직 간부들이 증가함에 따라 중앙이나 지역에 대한 현장의 의존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산별노조에서는 강제된 연대윤리와 지침으로 인해 조합원들, 특히 현장간부들이 자신이 속해있지 않은 다른 사업장의 투쟁에도 참여해야 하고 중앙의 지도부와 기층 조합원 간에 소통단계가 늘어남에 따라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무관심과 피로감이 증가하게 된다. 이상의 논의는 산별노조의 현장간부 재생산 및 현장조직력 약화의 원인을 노동조합 조직구조 및 관료제화 그 자체가 갖는 효과의 관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하나의 산별노조라고 하더라도 그 내부는 설립, 성장, 갈등, 투쟁, 안정, 쇠퇴 등의 생애국면에 있어 서로 다른 역사를 갖는 다양한 하부조직-기업단위 지회로 구성돼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앞서 언급한 여러 요인들이 기층 조합원이 속한 작업장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현장간부 재생산의 위기는 산별노조의 각 지회마다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특히 비교연구에 있어서는 분석대상이 보여주는 현상의 차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각 사례들의 역사적 경험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장간부 재생산의 위기를 분석함에 있어 조합원 개인 차원의 도구주의적 태도의 확산과 보수화, 노동조합 구조 차원의 산별노조 조직구조와 관료제화의 역기능 등을 각 작업장의 역사적 맥락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분석사례 기초현황

이 글의 분석대상은 금속노조 소속의 자동차부품사지회 네 곳이다. 이들 모두 과거 금속노조 지역지부나 중앙 차원의 집회․파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사업장으로서 최근 들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장간부 기피 현상 및 집회․파업 참석률 저하를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각 지회는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조직상태 점검을 목표로 동일한 포맷의 설문조사 및 면접조사를 진행했으며 이 글에서는 주로 조합원 면접조사 결과를 분석에 활용했다. 특히 금속노조에서 자동차부품사가 차지하고 있는 높은 비중을 감안할 때 각 지역의 주요 자동차부품사지회의 사례를 비교하는 것은 금속노조 전반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A사는 현대자동차에 납품되는 자동차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모그룹은 A사 외에 울산, 화성, 광주 등에도 다수의 동종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생산품목은 동일하지만 차종을 달리하는 까닭에 공장 간의 물량이동은 거의 없으며, 울산, 양산, 화성공장에는 한국노총 소속의 기업노조가 설립돼있다. A지회는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평균연령은 38.1세로 분석대상인 다른 지회에 비해 조합원의 연령대가 비교적 젊다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조합원의 4분의3 가량이 기혼자였고 특히 미취학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자녀로 둔 조합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A지회가 설립된 것은 2002년으로 당시 노동시간 및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출범 이후부터 2010년까지는 대체로 단체협약의 부족한 내용들을 조금씩 채워가는 시기였는데, 비록 노사 간에 첨예한 갈등이나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단체교섭 과정에서 쟁의행위가 있었고, 특히 2009년에는 지회가 금속노조의 지침이 아닌 지회 자체의 교섭현안을 두고 잔업거부, 4시간 부분파업 등을 병행하면서 두 달 동안 파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는 주로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르는 파업만 수행할 뿐 과거와 같이 자체적인 현안을 두고 진행한 파업은 없는 상황이다. 2010년 지회에 대립적인 태도를 보였던 전임 공장장과 달리 업무협조나 교섭태도에 있어 다소 성실하고 우호적인 신임 공장장이 부임하면서 노사관계가 안정 국면에 들어섰고 단체협약의 내용 또한 일정 수준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지회 내부에서는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유지돼오고 있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내용의 구체적인 정책이나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는 않다.

B사는 한국GM에 제품을 납품하는 자동차부품사이다. 조합원 중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조합원 평균연령은 49.0세, 평균 근속기간은 19년으로 분석대상 중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업장이다. 지회가 설립된 것은 1988년으로 조합원들 다수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를 직접 체험한 세대들이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2001년 금속노조 출범과 함께 곧바로 산별노조로 전환한 초창기 멤버이기도 하다. 구 대우자동차 시절에는 원청의 발주물량 대부분을 B사가 받아왔고 이로 인해 파업의 생산타격 효과가 상당했던 까닭에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의 힘이 더 강했다. 그러나 2004년 공격적인 노무관리 성향을 가진 새로운 자본이 B사를 인수하면서 노사관계는 몇 년 동안 전에 없던 갈등관계에 돌입했다. 발단은 지역에 소재한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조가 설립된 것이었다. 2000년대 중반은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이 분출하던 시기로서 현대자동차, 기륭전자, 현대하이스코 순천, KTX 승무원 등을 중심으로 사내하청 불법파견 투쟁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2005-2006년 B사의 한 지역공장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하게 된다. 회사가 비정규직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북파공작원 출신의 용역을 투입하고 직장폐쇄 및 사내하청업체 폐업을 단행하자 오히려 본사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내걸고 파업을 실시하면서 비정규직 노조설립 투쟁에 꾸준히 힘을 보탰다. 그러나 지역지부 및 본사 정규직 조합원들의 오랜 연대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투쟁이 해를 넘겨 10개월 가까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조에서 상당수의 이탈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회사와 비정규직 노조가 직접고용이 아닌 별도법인을 신설해서 재고용하는 방안에 대해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탈하지 않고 남아있던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상당수는 재고용이 아닌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기를 희망했다. 후술하겠지만 비정규직 연대투쟁이 마무리된 2006년 이후부터 조합원의 집회 참석률이나 파업에 대한 관심이 현격하게 떨어졌다는 것이 B지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노력과 지원이 결국에는 허사로 돌아갔다는 허탈감과 실망감을 반영한 현상이었다. 한편, 2006년 봄 비정규직 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B사는 대표이사 교체를 단행했다. 같은 해 3월에 있었던 지방노동청의 불법파견 판정과 그 이전 직장폐쇄의 정당성 및 용역의 폭력행위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학생운동 경력이 있던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던 것이다. 운동권의 생리를 잘 알고 있던 대표이사는 부임 직후부터 잦은 현장방문, 조합원의 근무태도 강조, 기초질서지키기 운동 등으로 생산현장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고, 반대로 B지회의 현장조직력은 2006년 이후 점차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C사 또한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자동차부품사다. 조합원 평균연령은 42.8세로 분석대상 지회 중 두 번째로 높은데, 오랫동안 채용이 정체되어 있다가 최근에 몇 차례의 신규채용을 하면서 젊은 조합원의 비율이 갑자기 증가했다. C지회가 설립된 것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분석사례들과 달리 한국노총 금속노조 소속 분회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C지회는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의 노무관리를 대신하는 수준의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었는데, 학생운동 출신의 현장 활동가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목격한 몇몇 젊은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노조 집행부에 대항하는 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회사 및 기존 어용노조 집행부에 대한 저항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1993년 선거에서 단독후보로 민주파 집행부가 들어섰고,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조합원의 결의로 1996-97년 노동법개악 저지투쟁(노개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개투가 전개되고 있던 1997년 1월에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96%라는 높은 찬성률로 금속노조의 전신인 민주노총 금속연맹에 가입하기에 이른다. 민주노총 가입 이후 2003년까지는 과거 어용노조 세력 및 회사와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했는데 위원장(지회장) 선거 및 대의원 선거를 경선으로 치르는가 하면 회사의 임금체불이나 상여금 반납 요구 등에 대응하면서 지속적인 현안투쟁을 전개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경영악화에 따른 위기감으로 지회의 활동이나 파업력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뒤이은 자동차업종의 호황 속에서 생산물량이 늘어나면서 지회의 파업력이 다시 높아지기도 했다. 2006년 회사가 수익성이 있는 1공장을 제외한 2공장 업무 대부분을 외주화하는 내용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C지회는 위기를 맞게 된다. 희망퇴직 신청 여부를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조합원들에게 지회는 자연감소 인원 및 전환배치를 통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투쟁을 설득했고, 현장순회 및 선전전, 간담회 등을 통해 조합원의 결의를 점차 끌어 모으면서 석 달 간 수차례의 부분파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회사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퇴직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우려하던 장기근속자 일부를 제외하면 큰 이탈 없이 투쟁이 지속됐고, 결국 2007년 여름 지회와 회사는 임금을 동결하되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에 이른다. 그러나 회사가 합의 후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기습적으로 청산공고를 내자 현장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지회 안에서는 종업원지주회사를 비롯한 여러 대안들이 논의됐으나 최종적으로 C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해외자본의 철수 지분을 C사의 임원, 관리자, 비조합원들이 인수하면서 구조조정 및 청산 국면이 종료됐다. 구조조정 및 청산 국면에서 과거 어용노조 세력들 대부분이 퇴직하고 회사 역시 지회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지 않게 되면서 2007년 이후 현재까지 C지회의 노사관계는 큰 갈등 없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D사는 세 개의 지역에 공장이 있고 그 중 분석대상인 D공장에는 기업노조가 설립돼있다. 따라서 다른 분석사례들과 달리 D지회는 복수노조 상황에 놓여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조합원 평균연령은 36.5세로 다른 사례에 비해 조합원 규모가 작고, 연령대가 가장 젊으며, 다수는 아니지만 여성조합원이 일정 비율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시점 또한 최근이다. D사에서 노동조합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은 동일법인 내 타지역에 소재한 공장이었는데 2008년 해당 공장에서 금속노조 지회가 출범하면서 D공장 또한 들썩이게 된다. 회사가 해당 지역공장에 직장폐쇄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큰 이탈 없이 노조를 지켜내던 모습이 과도한 잔업과 열악한 임금수준에 지친 D공장 노동자들에게도 감흥을 줬기 때문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결국 2009년 가을 D공장에서도 지회가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지회 출범 직후부터 회사는 D지회가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지역공장에 노조가 설립된 것을 본 회사가 2008년 12월 D공장에 조합원 2명의 유령노조를 설립해뒀는데, 법적으로 복수노조가 금지돼있기 때문에 D지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복수노조제도 시행 이전에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금지됐을 뿐 조직대상을 달리하는 산별노조의 하부 지회와 기업노조는 병존가능했다.- 회사는 2009년 12월 용역을 투입하고 2010년 1월에는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직장폐쇄를 단행하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고, 이 과정에서 지회 간부가 용역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반면, 이미 지역공장의 사례를 학습했던 D지회의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하던 때부터 직장폐쇄를 각오하고 있었다. 지회가 속한 지역지부 차원의 생계비 모금 및 채권 발행, 그 밖의 다양한 연대투쟁 또한 D지회가 4개월이 넘는 장기간의 직장폐쇄에도 노동조합이 흔들리지 않았던 배경이었다. 결국 회사는 2010년 5월 아무런 조건 없이 직장폐쇄를 풀고 지회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가 직장폐쇄 기간에 대체인력으로 근무했던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이들 대부분이 기업노조로 들어가면서 D지회는 어렵게 노조를 띄웠음에도 불구하고 소수노조로 바뀌었고, 현재는 교섭대표권이 없는 상황에서 노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산별노조의 현장간부 재생산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산별노조의 조직운영 그 자체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간부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데에 필요한 학습의 계기들이 부족한 까닭에 현장간부를 맡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조합원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부담감을 해소할 계기가 없으며, 산별노조가 하부단위의 일부 대공장이 보이는 원심성을 규율하지 못하다보니 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지회의 조합원들에게까지 산별노조 무용론이 퍼지는 심리적 동형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장의 정서가 반영되지 않은 지침하달식 사업방식과 잦은 집회 동원은 기층 조합원의 공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동시에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피로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것은 모두 작금의 산별노조가 제대로 된 관료제 체계를 아직까지 갖추지 못했거나 혹은 관료제의 일부 부정적 측면만을 내재한 결과들이다.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14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행진중인 조합원들. <자료사진>

사례분석: 현장간부 재생산 위기의 원인과 배경

아래에서는 각 지회별로 진행된 조합원 면접 결과를 통해 현장간부 기피 현상의 배경 및 현장조직력 약화의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이론적 논의에서 검토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저마다 겪어온 투쟁의 경험과 역사 속에서 분석대상 지회들이 서로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분석대상 네 지회의 조합원이 노동조합 간부를 맡기 꺼려하는 이유로 가장 자주 언급한 것은 첫째, 경제적 손실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간부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조합원 대중 앞에 나서서 노동조합의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조합원의 생각을 경청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는 일, 회사의 관리자를 만나 때로는 대화로 때로는 강하게 부딪히며 현장의 불만들을 전달하고 조합원의 요구사항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일, 금속노조 중앙의 여러 수임사업과 현장의 단체교섭을 책임지고 완수하는 일이 곳곳에 녹아있는 현장간부의 일상업무를 자신이 과연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간부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역량을 학습할 수 있는 체계화된 교육프로그램이 부재한 상황에서 각각의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간부 역할을 맡는 데에서 오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전혀 갖지 못하고 있었다.

 “책임감이죠. 조합에 올라가야 되면 일반조합원으로 있을 때 보다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져야 되잖아요. 그 책임감이 제일 두려운 거죠. 그게 첫 번째 인 거 같아요. 조합원을 했을 때는 어느 정도 책임감이 적잖아요. 그냥 현장에서 일만 하면 되고 무슨 문제 있을 때는 위에 집행부에서 하면 그거대로 하면 되지.” (A지회 전직대의원)

 “제가 만약 대의원이든 노조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조합원들이 저를 100% 잘 따라주고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도 있고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A지회 일반조합원)

 “위에서 회사하고 부딪혀야 하는 거잖아요. 일거리로 스트레스 받는데 굳이 내가 잘 하지도 못하는 걸 해야 하니까 귀찮은 게 작용하겠죠.” (B지회 일반조합원)

 “말주변이 없다는 이유가 커요. 매일 아침에 항상 [대의원 구역별로] 조회를 하는데 그게 부담인 사람들도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안 하려고 했어요.” (D지회 현직대의원)

둘째, 지역이나 전국차원에서 이뤄지는 파업, 집회 등의 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대공장 조합원들에 대한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 또한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산별노조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훨씬 더 나은 여건에서 근무하는 혹은 하청부품사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대공장 조합원들이 연대활동을 소극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석대상 지회의 조합원들 또한 지역이나 중앙 차원의 노동조합 활동에 굳이 참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분석대상 사례가 모두 각 지역에서 대기업의 하청부품사이자 상대적으로 조직규모가 크지 않다는 특징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대공장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되는 이 같은 불만은 산별노조라는 조직체계 안에서 대공장을 관장하지 못하는 금속노조 자체에 대한 불만과 경제주의로의 복귀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나아가 연대의 가치와 산별노조에 대한 효능감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노동조합 중앙이나 지역이 대공장 지회를 관리-동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금속노조 내부에 조직체계의 위계적 권한 배치와 관료제가 제대로 정착돼있지도 않으며 하부단위인 지회의 조직규모에 따라 산별노조의 영향력이 불균등하게 행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금속노조의 현장조직력 약화는 중앙집권적 조직구조가 현장의 자생성을 약화시키는 ‘관료제의 역기능’ 때문만이 아니라 애초에 노동조합 상층부의 권한이 하부단위 전체에게 동등하게 관철되지 않는 ‘반쪽짜리 관료제’로부터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우리 지회가 집회에 열성적으로 잘 나가곤 했는데, 예전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시들은 상태에요. 특히 대공장이 동참하지 않아서 문제가 커요. 집회 갔다 오면 다들 ‘인원도 얼마 안 되는데 왜 만날 우리만 그런 데 쫓아다니냐, 큰 공장도 안 나오는데’ 이런 얘기들 많이 해요.” (B지회 일반조합원)

“우리 지역지부에서 파업을 때리면 우리는 [조합원들까지] 다 나가요. 그런데 OO, △△, 이런 데는 상집간부만 딸랑 와요. 우리가 늘 많아요. 동시에 파업을 하자고 해놓고 우리밖에 없는 거죠. 우리는 주야간 다 나와요. 딴 데는 다 자기 이속을 챙기는데 우리만 하냐는 이야기가 나오죠. 근데 또 파업 나오는 회사 중에 우리가 제일 못 버는 회사에요.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 조합원들도 잔업에 더 매몰되고...” (C지회 일반조합원)

 “지회 설립하고 나서는 집회 참가율이 좋았어요. 인원대비 80%까지도 갔었어요. 근데 갈 때마다 느낀 건 우리가 이렇게 많이 왔는데 인원대비로 다른 큰 데는 인원이 너무 적은 거예요. 그러니 다음 집회가 잡히면 우리만 또 많이 가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 하는 거죠.” (D지회 일반조합원)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관료제의 역기능이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한 지회의 간부는 “과거에는 파업을 만들기 위해서 조합원 토론도 하고 요구안에 관해 대화도 나누고 잔업거부나 각종 행사를 통해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산별노조로 전환된 후에는 처음부터 파업 날짜가 딱 정해져 있다 보니 그런 과정들이 다 생략됐고 조합원들이 파업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C지회 현직간부)면서 현재 금속노조의 상명하달식 운동방식이 현장조직력 쇠퇴의 한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장간부가 스스로를 ‘집회 도우미’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잦은 집회 동원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조합원들은 주말마다 집회에 나가는 현장간부들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상층부의 결정에 따라 파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서 노동조합 간부가 되기를 주저하고 노동조합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의원이 되면 주말이든 평일이든 집회 가는 게 참 많으니까요. [집회에] 한번은 빠져도 다음에는 빠지기 힘들고 이러기 때문에 집회가 많은 게 부담이 가요.” (A지회 일반조합원)

“[노조 중앙이나 지부의] 수임사업이 너무 많아요. 그것 좀 내려놨으면 좋겠어요. 노조사업이 심할 때는 일주일에 2개는 있어요. 우리 간부들한테 이야기할 입장이 안 되는 거죠. ... [현장간부들이] 집회도우미가 되고 있어요. 파업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 너무 남발하다보니 효과도 없고 집중력도 떨어지고요.” (B지회 현직간부)

셋째, 가족의 생계부담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 또한 현장간부를 기피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앞선 요인들에 비해 경제적 손실 문제를 지적하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분석대상 지회별로도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가령, A지회 조합원 면접조사에서는 현장간부 활동에 따른 임금손실 문제가 크게 거론되지 않았고, B지회 및 C지회에서는 간부 업무에 필요한 역량에 대한 부담감이나 잦은 집회 및 대공장에 대한 불만 못지않게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높았다. 한편, D지회에서는 간부활동 그 자체의 어려움보다는 경제적 어려움을 꼽는 정도가 매우 강했다. 이는 각 지회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로 이해된다.

“잔업 없으면 세금 다 빼고 130만원 받아요. 지금은 대학교 다니는 자녀들 다 있고 임금에 대한 부분들이 상당해요. 간부를 하고 싶어도 또 막상 하게 되면 특근도 못하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그런 부분이 있으니 돈을 벌어야 하고.” (B지회 현직대의원)

“생계 문제도 있고, 간부로 활동하게 되면 오티도 못하고 어디로 나가야 하니까요. ... 그러니 기피하는 거죠.” (C지회 일반조합원)

“노조 일 자체는 어려운 게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처음 하는 거다 보니 정보나 일이 조금 부족한 게 있을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인 것이 힘들죠. 회의나 집회 이런 게 있으면 빠져야 하니까요.” (D지회 현직간부)

우선 -D지회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경제적 손실에 대한 조합원들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데에는 각 지회가 단체협약을 통해 현장간부의 유급 활동시간을 일정부분 확보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동조합 간부업무로 인해 -더 많은 임금을 받아갈 수 있는- 잔업이나 특근을 하기 어려운 문제는 있었으나 정규근무시간에 이뤄지는 간부활동(예: 각종 회의, 출장, 일부 집회 등)에 대해서는 경제적 손실이 보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D지회는 복수노조-소수노조로서 교섭대표권을 갖고 있지 못한 까닭에 회사로부터 인정받은 유급전임자 수가 1.5명에 불과했고 간부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임금손실이 다른 지회들에 비해 더 큰 조건에 있었다. 한편, B지회와 C지회의 경우에는 조합원의 고령화가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A지회와 D지회는 조합원 평균연령이 각각 38.1세, 36.5세로 청년층 노동자 비율이 비교적 높은 데 반해 B지회와 C지회는 조합원의 고령화 현상이 상당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A지회 조합원들이 현장간부 기피의 원인으로 임금손실 문제를 크게 꼽지 않은 것 또한 이들이 B지회, C지회 조합원들에 비해 아직까지 미혼이거나 자녀가 어리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으로 풀이된다. 조합원의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것이 회사의 고용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장간부 재생산의 위기를 더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한 지회의 간부는 “지금처럼 돌려막기 식으로 간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벗어나야 할 단계인데 가르칠만한 젊은 친구들 자체가 안 들어오는 것”(C지회 현직간부)을 지적했다. 이것은 현장간부 재생산의 어려움과 현장조직력 약화가 기존 조합원의 고령화와 낮은 참여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후속세대로 양성돼야 할 신입사원이 들어오지 않는 객관적인 조건과도 긴밀하게 연관돼있음을 의미한다.

넷째, 각 지회별 투쟁의 역사가 노조활동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노동조합 설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큰 갈등 없이 안정된 노사관계를 구축해온 A지회의 조합원들에게는 지회집행부에 대한 대리주의적 태도가 강하게 퍼져있었다. 비록 2009년 단체교섭 국면에서 두 달 동안 자체적으로 잔업거부나 부분파업을 진행한 경험은 있었지만 물리적 충돌을 동반한 강력한 투쟁의 경험은 없었고, 특히 2010년 노동조합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공장장이 부임하면서 매해 단체교섭은 첨예한 갈등 없이 무난하게 흘러왔다. 이미 지회의 단체교섭에서 많은 불만들이 해소되고 있는 까닭에 조합원들은 스스로가 주체가 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투쟁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A지회의 한 전직대의원은 “실질적인 [노조활동의] 체험 현장에 상집간부들이나 확대간부들 위주로 나가다 보니 일반조합원들은 투쟁의 현장을 전혀 느끼지 못 한다”(A지회 전직대의원)면서 이것이 계속해서 ‘간부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대리주의적 태도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5년 정도 저는 편하게 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회가. 그러다 보니까 굳이 본인이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 줄 것이고. 그런 게 조합원들 사이에서 많이 퍼져 있는 거 같아요. 그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A지회 현직간부)

B지회의 경우에는 2006년 지역공장 비정규직 투쟁 속에서 느낀 실망감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있었다. B지회의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도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문제를 두고 파업을 전개하는 강도 높은 연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스스로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경험 속에서 출발했고, 2001년 금속노조 출범과 동시에 산별노조로 전환했던 곳인 만큼 조합원들 모두 투쟁의 경험과 강한 연대의식을 만들어왔던 까닭이다. 그러나 10개월 가까이 이어진 비정규직 노조 설립투쟁을 정규직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투쟁의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당수가 이탈하고 회사로부터 충분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서 조합원들은 점차 노조활동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B지회의 사례는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조합원의 참여도를 높이는 데 있어 투쟁의 경험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투쟁의 효능감, 즉 싸워서 이긴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B지회의 약화된 현장조직력은 투쟁의 경험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고령화 및 가족주의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규직 동지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지원도 많이 했고, 군산 내려가서 투쟁도 하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성과가 별로 없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외부활동에 불만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같은 노동조합 조합원인데 비정규직도 같은 식구인데 우리가 안 싸우면 누가 싸우냐는 의견이 더 많았어요. 집행부가 결론을 내렸으니 열심히 따라간 거죠. 근데 정리되는 걸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죠. 누구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실망이었어요. ‘아, 이렇게 해도 안 되는구나’ 싶은.” (B지회 일반조합원)

반면, D지회의 사례는 승리한 투쟁의 경험이 현재 노동조합이 처해있는 악조건을 헤쳐 나가는 데 얼마나 귀중한 자원인지를 잘 보여준다. 2009년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직장폐쇄 및 회사와의 물리적 충돌을 강하게 경험하게 된 D지회는 지역지부 차원의 경제적, 조직적 지원과 연대 속에서 4개월이 넘는 직장폐쇄 기간을 큰 이탈 없이 버텨냈다. 결국 회사가 아무 조건 없이 직장폐쇄를 풀고 조합원 복귀를 받아들이면서 D지회는 승리의 경험을 안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2011년 7월 이후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미 기업노조가 다수노조 지위를 확보했던 까닭에 지회의 활동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축된 지회 활동에도 불구하고 D지회 조합원들은 오히려 스스로 활발한 현장투쟁을 전개해왔다. 지회의 한 간부는 “회사 상대로 대응하는 거는 조합원들이 거의 싸움닭이에요. 오히려 집행부가 온순하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D지회 현직간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비록 현장의 열악한 임금수준이 선뜻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 데에 주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직장폐쇄 투쟁 과정에서 겪은 끈끈한 연대의 경험과 승리의 추억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과 현장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추억이죠. 한 번 더 [직장폐쇄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있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 경험이 참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우리 조합원들이 집회나 이런 데 더 열심히 참석하는 것도 그런 경험들 때문인 거 같아요. 다른 곳에 비해서 연대사업이나 집회에 대한 거부감은 없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은 있어요.” (D지회 현직대의원)

한편, C지회의 사례는 조합원 스스로가 참여해서 승리한 투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노동조합의 조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2006-2007년 구조조정 투쟁 국면에서 C지회는 회사로부터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이후 회사가 청산을 시도했던 과정에서도 해외자본의 철수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며 조합원의 고용을 지켜냈다.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및 청산 투쟁 국면을 거쳐 오면서 기존의 어용세력이 대부분 퇴직하면서 안정적인 조직운영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조합원들의 태도는 노조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자신의 삶과 안위에 더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편에서는 지금의 일자리를 지켜냄으로써 노동조합의 투쟁성과에 만족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언제 또 다시 구조조정 상황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노사관계가 큰 잡음 없이 안정적으로 흘러가기를 기대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B지회와 마찬가지로 C지회에서도 조합원의 고령화에 따라 커져가는 가족주의적 태도가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2007년도에 구조조정 해서 싸움을 했었는데 그 전에는 심리적으로나마 안정적으로 느꼈던 조합원들이 한번 구조조정 하면서 정리해고에 대한 부분들을 인식을 하다 보니까 무사안일주의로 가는 정서가 커졌어요.” (C지회 전직간부)

그렇다면, 위와 같은 다양한 제약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은 어떤 이유로 현장간부를 맡게 되는 것일까? 간부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현장간부의 잦은 외부활동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대공장 지회의 소극적인 연대활동과 그것을 제대로 관장하지 못하는 금속노조 중앙과 지역지부에 대한 불만, 투쟁경험의 부재와 투쟁의 실패로 인해 갖게 된 위축감 등을 극복하고 조합원이 노동조합 간부를 맡게 되는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여러 현장간부들은 자신이 간부활동에 나서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동료 간부의 부탁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지회 사무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같이 하자고 하길래 친구 도와준다는 마음으로”(D지회 현직간부),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한 형님이 부서장을 못 꾸렸는데 같이 해보자고 해서”(A지회 현직간부) 간부직을 맡게 됐다는 이들의 답변을 음미해보면 현장의 노동조합 간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는 데에 뭔가 거창한 결의와 신념, 이념적 지향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업장 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면서 신뢰를 쌓아온 동료 간부의 인간적인 부탁이 간부업무를 맡게 되면서 오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드는 계기라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한편, 흔하지는 않지만 과거 노동조합 간부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발적으로 현장간부를 맡겠다고 나선 사례도 있었다. 한 지회의 간부는 “제 전임 간부가 해오셨던 모습이 좀 좋아 보였거든요. 자연스럽고 좋아 보이고 뭘 하려고 노력하고 헌신하시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노조를 한번 배워보고 그 분처럼 해보려고 자발적으로 올라온 것”(A지회 현직간부)이라며 노동조합 간부가 간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조합원으로 하여금 노동조합에 더 가깝게 다가오도록 만든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 간부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조합원은 다시 현장간부를 맡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노동조합 간부를 경험함으로써 일반조합원으로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현장간부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을 쌓기도 하며, 회사의 문제점과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비록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다시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 것에 대해서도 비교적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들은 (새로운) 노동조합 간부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노동조합 간부라는 점을 뜻한다. 즉, 지회 집행부가 현장의 조합원들과 가깝게 소통하고 인간적인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맡고 있는 간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결국 현장간부 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하는 관건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마치며: 요약 및 시사점

정리해보면, 산별노조의 현장간부 재생산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산별노조의 조직운영 그 자체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간부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데에 필요한 학습의 계기들이 부족한 까닭에 현장간부를 맡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조합원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부담감을 해소할 계기가 없으며, 산별노조가 하부단위의 일부 대공장이 보이는 원심성을 규율하지 못하다보니 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지회의 조합원들에게까지 산별노조 무용론이 퍼지는 심리적 동형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장의 정서가 반영되지 않은 지침하달식 사업방식과 잦은 집회 동원은 기층 조합원의 공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동시에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피로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것은 모두 작금의 산별노조가 제대로 된 관료제 체계를 아직까지 갖추지 못했거나 혹은 관료제의 일부 부정적 측면만을 내재한 결과들이다.

뿐만 아니라 현장의 자생성과 생동감을 저해하는 투쟁의 부재 또한 심각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는 현장의 투쟁경험, 투쟁의제, 투쟁성과로부터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즉, 조합원들 스스로가 주인이 된 투쟁을 경험해왔는지, 그러한 투쟁에 승리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효능감과 자신감을 느껴왔는지 등이 현장조직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기제가 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노동조합을 세워 본 경험이 없는 젊은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노동조합을 처음 세우던 때의 경험을 서서히 잊고 보다 안정된 상태를 추구해가는 선배 조합원들에게 투쟁의 경험은 노동조합의 향기를 전해주는 훌륭한 매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산별노조 중앙과 지역지부의 지침에 따른 투쟁만으로도 벅찬 현장간부와 조합원들에게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현장투쟁을 조직화하는 일은 상당히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현장의 자생적 투쟁이 사라지는 문제가 -산별노조의 조직구조와 조직운영과 별개로- 현장간부들 스스로가 빚어낸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투쟁을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의 현장간부들 자신의 역할임을 고려해 볼 때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적어도 조합원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까닭이다. 특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현장간부들이 먼저 기층의 조합원들을 이기적이고 경제주의적인 존재로 재단하면서 조합원들의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특정한 노사현안을 해결하거나 산별노조 중앙 또는 지역 차원의 노동조합활동이 이뤄질 때 굳이 조합원들을 직접 동원하는 집단행동을 조직하기보다는 현장간부들 선에서 정리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현장간부를 맡음으로써 겪게 되는 경제적 손실이 현장간부 기피 현상의 중요한 배경이라는 점도 분명하지만 이것 역시 각각의 지회가 저마다 달리 경험하고 있는 조합원 고령화, 현장의 열악한 임금수준과 노동조건, 타임오프 및 제한된 유급활동시간 등의 조건 아래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고, 결국에 현장투쟁의 시발점은 현장간부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활동가라면 작금의 현장간부 재생산 위기에 있어 산별노조의 조직구조와 조직운영에서 노정되는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순응하고 있는 현장간부들 스스로의 위축감과 관성화도 함께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지적할 문제는 조합원의 고령화 속에서 형성되는 가족주의적 태도와 노동조합에 대한 도구적 태도가 신규채용의 정체라는 보편화된 작업장 고용관계 조건과 맞물리면서 후속 활동가 세대를 생산하는 데에 부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 때 자신들의 손으로 노동조합을 세우고 작업장 민주화를 일궈낸 선배 조합원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노동조합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이탈하고 투쟁의 뒤안길로 걸어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역량과 자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은 침체되고 있는 현장조직력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노동조합이 조직 내부의 운영상의 한계들을 교정해가는 노력과 함께 그 시야를 보다 넓혀 기존 조합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높이기 위한 시도에서 더 나아가 공세적으로 신규채용을 요구하고 작업장 안팎의 미조직된 노동자를 새롭게 조직하는 등 새로운 주체들을 발굴해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끝>

 

 홍석범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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