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연 노조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 여성부장은 5월25일 생애 두 번째 대만 땅을 밟았다. 아홉 명의 동지들, 그리고 배재형 열사의 부인과 함께.

이번 원정은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정하지 않았다. 배재형 열사가 죽고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김서연 지회 여성부장은 “배재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원정투쟁, 대만에 도착한 다음날 부터 영풍위그룹 호쇼우추안 회장 집 앞에서 대만의 비와 무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노숙하고 있다. 어려움이 뻔한 길을 택하게 한 이유는 ‘배재형’ 때문이었다.

▲ 5월25일 김서연 하이디스지회 여성부장을 비롯한 지회 조합원과 경기지부 간부들이 대만으로 출발하기 전 공항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정주

“사람이 죽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뭐가 있는가. 하이디스가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면, 앞서 두 번 대만을 찾아왔을 때 영풍위 그룹이 우리를 만나고 요구를 수용했다면 그는 죽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

지난 3월 김서연 여성부장과 배재형 열사를 포함한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은 2차 대만 원정 투쟁을 벌였다. 당시 배재형 열사와 같이 행진했던 길, 점거농성을 했던 영풍은행을 이번 원정 때도 다시 찾았다. 배재형 대신 ‘유족’이라는 이름을 단 열사 부인과 함께. 김서연 여성부장은 “대만에서 같이 투쟁하던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마다 생각이 많이 난다. 보고싶다”고 그리워했다.

하이디스는 지난 1월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을 중단했다. 3월31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김서연 여성부장은 이때 해고됐다. 2003년 김서연 여성부장이 입사했을 때 하이디스에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12년 동안 중국 BOE가 운영하다 법정관리를 거쳐 대만 이잉크가 하이디스를 인수했다. 그 사이 2천 명이 32명으로 줄었다. 회사는 이 마저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거나 희망퇴직 시키고 한국 공장을 정리하려 한다.

▲ 6월3일 대만 총통부 앞에서 대만 정부가 하이디스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던 한국 원정단과 대만 시민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타이페이=강정주

김서연 여성부장은 “이 곳 저 곳으로 회사 넘어가면서 하루도 편할 날 없었다. 중국 회사, 대만 회사에서 월급 받다가 결국 노동부 실업급여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고 허탈해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권고사직,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공장을 떠났다. 회사는 아직도 ‘법으로 정한 것 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해줬다. 법적으로 위반한 것이 없다’는 말만 하고 있다. 해고 투쟁을 하는 79명, 현장에 남은 30명의 조합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멀쩡한 회사 두고 어딜 가느냐

회사는 공장을 20% 밖에 가동하지 않았다. 수 백, 수 천 억원의 이익을 내면서 기술 개발,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았다. 고객이 미리 주문한 제품량이 있고 생산할 모든 조건을 갖췄는데 회사는 공장을 닫았고, 고객사에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2024년까지 공장을 운영하면최소 5천억원, 많게 1조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료가 있음에도 회사가 매번 한 말은 ‘공장폐쇄 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었다.

김서연 여성부장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른 살 넘은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나. 다 비정규직이고 그마저도 찾기 힘들다”며 “2013년 희망퇴직 하고 나간 사람 중에 제대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고 싶지 않다. 회사는 거액의 위로금이라고 얘기하지만 우리에게 그 돈은 위로가 아니다”라며, 정리해고를 반드시 철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연 여성부장은 “우리는 이런 저런 제안을 하고 제대로 공장을 돌려보자고 하는데도 회사는 무조건 공장폐쇄만 얘기했다”라며 “차라리 기술, 특허 다 정리하고 문 닫는다면 모르겠다. 자기들은 계속 특허 수익을 올리고 우리는 나가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다 우리가 만든 기술인데”라고 공장폐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 6월4일부터 정규전 경기지부장과 이상목 하이디스지회장이 영풍위그룹에 대화에 응할 것과 3대 요구안 수용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타이페이=강정주

영풍위그룹 회장을 만나야 한다

김서연 여성부장은 “부인까지 비를 맞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비 맞고 땀 흘리면서 길거리에서 자는데 호 회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호의호식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분노했다. 영풍위그룹을 찾아갔지만 그룹의 대답은 늘 외면이었다.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면서 이잉크를 통해 꾸준히 협상하고 있다는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다.

“영풍위그룹은 대만에서 이미지가 좋은 기업이라더라. 유독 하이디스 노동자들에게 이리 가혹하고 귀를 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서연 여성부장은 호쇼우추안 회장을 만날 때 까지 이 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5천만원. 11년 하이디스 공장을 다닌 김서연 여성부장이 희망퇴직을 선택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돈이 필요했으면 진작 내 발로 나갔다. 돈 필요없다. 우리는 하이디스에서 일하고 싶다.” 희망퇴직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돌아온 김서연 여성부장의 명확한 대답이다.

영풍위그룹이 배재형 열사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날 다시 하이디스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은 오늘도 호쇼우추안 회장 집 앞에서 배재형 열사의 영정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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