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만도지회(아래 지회)는 경주지역의 대표적인 장기투쟁사업장이다. 2010년, 회사가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한 후 기업노조가 들어서면서 금속노조 조합원은 소수가 됐고, 끊임없는 회사의 차별과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와 기업노조를 비판하며 금속노조로 돌아온 조합원들이 있다. 이강식 대의원도 이 조합원들 중 한 명이다.

오랜 투쟁의 시작은 한 통의 문자였다. 2010년 2월16일, 회사는 직장폐쇄를 한다는 문자를 조합원들에게 보냈다. 회사는 99일 동안 직장폐쇄를 하면서 ‘회사로 들어와서 일하라’고 조합원들을 회유했다. 끝까지 버틴 58명의 지회 조합원들을 제외하고 모두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로 들어온 조합원들에게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금속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교육을 부서별로 했습니다. ‘금속노조 시절 너무나 잘못한 게 많으니 반성하라’는 명목으로 봉사활동도 시켰어요. 그런 식으로 조합원 길들이기를 한 거죠.”

▲ 이강식 대의원이 5월 6일 발레오만도지회 농성장에서 인터뷰하며 “현장에서는 ‘금속노조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 나는 그런 마음이 희망이라고 본다"고 말하고 있다. 김경훈

2010년 6월, 기업노조의 전신인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들의 모임’이 총회를 열어 산별노조인 지회의 조직형태를 기업노조인 발레오전장노조로 전환했다. 당시 97.5%가 기업노조 전환에 합의했고, 이강식 대의원도 이 과정에서 기업노조 소속이 됐다.

“서른 세 걸음 떨어진 농성장을 회사 무서워서 못 온다”

기업노조가 들어선 뒤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회사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골라서 TFT팀을 만들었다. TFT팀에게 페인트칠, 거미줄 제거, 화장실 청소, 풀 뽑기, 전지 작업 등 잡일을 시켰다. 이강식 대의원은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까 봐 무서워서 회사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직원들이 금속노조 조합원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았다. “금속노조 조합원 집에 가도 안 되고, 같이 담배 피면서 이야기해도 안 되고, 상이 나도 가면 안 돼요. 해고자 농성장이 회사에서 서른 세 걸음 떨어져있는데 거기 가지 못 해요. 갔다가는 해고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현장 분위기는 삭막했다. 이강식 대의원은 “기업노조가 들어선 뒤 조합원들이 서로 감시하고 회사에 밀고하는 분위기가 됐다. 누구도 믿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업노조를 욕했다가 관리자에게 불려가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 추궁당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강식 대의원도 관리자에게 열일곱 번이나 불려갔다.

이런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이강식 대의원은 2013년 5월, 뜻을 함께 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나는 금속노조 조합원이다’라고 선언하며 금속노조로 복귀했다. 차별과 탄압을 감수하고 금속노조로 돌아가는 게 두렵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차별이나 탄압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보다 금속노조를 재건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고 대답했다. “내가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입사해서 금속노조가 땀 흘려 쟁취한 것들의 혜택을 다 봤어요. 그래서 ‘당연히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어요. 금속노조를 재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죠.”

“기업노조 조합원도 금속노조가 필요한 사실 인정한다”

이강식 대의원은 마음을 함께 하는 조합원들과 통상임금 소송 투쟁을 시작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회사와 기업노조의 합의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처음 서른세 명이 소송을 시작했지만 100여 명으로 소송 참여 노동자가 늘었다.

이강식 대의원은 “기업노조 조합원들도 금속노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많아지면서 기업노조 조합원의 노동 강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강식 대의원은 “회사는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돈도 주지 않고 무료봉사하라고 했다. 이제 금속노조 신경 쓴다고 그나마 잘해준다”고 말했다.

이강식 대의원은 “현장에서는 ‘금속노조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며 “나는 이런 마음이 희망이라고 본다”고 낙관했다.

발레오만도지회의 투쟁은 중요한 고비를 남겨두고 있다. 발레오만도 조직형태 변경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였던 발레오만도지회를 기업노조로 바꾼 것이 법적으로 정당했는지 따지는 판결이다. 1, 2심은 발레오만도지회가 승소했지만, 조합원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조직형태변경 총회는 불법총회”

이강식 대의원은 “회사가 ‘최고 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우리는 절대지지 않는다. 지면 헌법 소원까지 하겠다’는 대자보를 붙였다”고 말했다. 강기봉 대표이사는 “법정싸움에 지면 회사를 청산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이강식 대의원은 “조직형태 변경을 결정했던 총회는 명백히 잘못된 총회, 불법총회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는 자율적으로 총회를 열어 97.5% 동의를 얻었다고 하지만, 자율이 아니라 강압이었어요. CCTV 달아서 감시하고, 반대표 나오면 해고시키겠다고 위협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못 들어오게 몸으로 막고. 그때 직접 몸으로 막았던 사람들이 ‘강기봉 대표이사 지시를 받았다’고 양심선언하고, 금속노조로 돌아왔어요. 어떻게 이게 자율입니까. 사법부는 이 부분을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이강식 대의원은 인터뷰 막바지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금속노조의 소중함을 느꼈다”면서도 한편으로 “금속노조가 아직 완전한 하나는 아닌 것 같다”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노조 간부를 수차례 했지만, 나이 50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금속노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금속노조가 완전히 하나로 단결하지는 못한 거 같습니다. 발레오만도가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데 현대자동차지부가 ‘부도덕하게 노조 파괴한 협력사는 납품 못 하게 하겠다’면서 며칠만 파업했으면 이 문제는 해결됐을 겁니다. 발레오만도가 탄압받으면 금속노조 전체가 탄압받는 겁니다. 금속노조는 행동과 실천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