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 대 독재라고 규정하기도 하고 기존 질서의 변화냐 혹은 유지냐를 기준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차이의 근본을 찾아가 보면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보수는 대부분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본다.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게으르거나 머리가 모자라거나 혹은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된 사람은 부지런하거나 똑똑하게 돈의 흐름을 잘 알아서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라고 본다.

반면 진보는 대부분의 문제를 ‘세상’의 문제로 본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참극은 본분을 망각한 겁쟁이 선장 한 명 때문이 아니라 짐을 하나라도 더 실고 선원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이윤을 극대화 하려는 자본의 속성과 관피아라 불리는 퇴직 관료들의 형식적인 안전점검 등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총체적인 부실이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진보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와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 보수진영은 이런 보육교사의 노동조건에 대해 관심도 없다.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천사 같은 선생님이 되라고 강요하는 짓은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보수진영은 ‘세상의 구조’에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세상을 투영하는 광고도 마찬가지다. 보수의 시각으로 만든 광고는 모든 문제를 ‘개인’으로 돌린다.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을 ‘개인’에게 돌리지 그 개인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관심 없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모르는 척 한다.

최근 TV에서 방송하기 시작한 아시아나항공의 기업PR캠페인 <유치원 선생님 편>과 <슈퍼우먼 아내 편> 광고를 보면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보수의 시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유치원 선생님 편>은 최근 중요한 사회문제인 영유아 보육시설의 아동학대 혹은 아동폭력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광고가 시작되면 천진난만하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종횡 무진하면서 엉망으로 만든다. 간식으로 장난치기는 기본,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의 짜증스러움이 마구 올라올 듯하다. 그런데 광고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부처님 같은 너그러운 미소로 아이들을 대한다. 결국 아이를 찾으러 온 엄마는 “선생님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건네고 선생님은 수줍은 미소로 끝을 맺는 다.

이 광고가 바라보는 ‘보육시설의 아동학대’ 원인은 몇몇 불성실한 선생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선생님들이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직업의식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3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보육교사의 평균 월 급여는 112만원 밖에 되지 않는 저임금이다. 보육교사들은 하루 평균 10.8시간 일하면서 휴식시간이 따로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이런 보육교사의 노동조건에 대해 관심도 없다.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천사 같은 선생님이 되라고 강요하는 짓은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보수진영은 ‘세상의 구조’에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유치원 선생님 편>과 함께 방송을 타고 있는 <슈퍼우먼 아내 편>도 마찬가지다. 최근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여성의 노동조건이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맞벌이 부부의 상황을 그린 광고다. 부인은 남편보다 먼저 퇴근해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은 이런 부인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세상에…… 21세기가 도래한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부부관계를 이렇게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부인이라는 주종관계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맙소사.

결국 아시아나항공의 광고는 이 세상의 모든 맞벌이 부인에게 ‘남편을 위해 조금 더 헌신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왜 이 세상의 수많은 맞벌이 부인들이 집에 돌아와 자신의 저녁도 거른 채, 화장 지울 시간도 없이 뻗어 버리는지, 왜 부인들이 아이들의 숙제조차 봐 주지 못하고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지, 여성 노동자라는 이유로 더 많이 착취당하는 세상이 됐는지 보수진영은 ‘세상의 구조’에 관심도 없다. 오직 모든 문제는 ‘헌신적이지 않은, 그래서 게으른 부인’에게 있다고 본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그의 책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몰락하지 않는 이유는 지배계급이 군대, 경찰과 같은 폭력기관을 보유하고 있고 종교, 교육, 가족, 법, 정치, 조합 등을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를 통해 피지배계급의 정신, 즉 헤게모니를 장악한다고 봤다. 아마도 루이 알튀세르가 요즘 한국사회의 광고를 봤다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TV속 광고를 포함했을 지도 모른다. 진보여, 자본의 물건을 파는 광고라도 그냥 넘어가지 말자.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말자.

김범우 /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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