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3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일부 개정안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법 개정안이 “도급사업에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보건조치 대상이 확대되고, 작업 중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근로자가 사업주에게 작업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작업중지 요청권’이 강화된다”고 자랑했다. 세월호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는 16일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법 개정안이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작업중지요청권’ 강화시켜주겠다는 노동부

개정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사회단체들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중 작업중지권과 관련한 실질적인 개정 내용은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한 노동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 것 뿐이다.

덧붙여 노동부는 사업주가 산재 예방조치를 했음에도 부족하다면 추가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고 말한다. 산안법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는 사업주를 신고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권리다.

그 동안 현행 산안법 26조는 작업을 중지할 조건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로 제한하고 있어 문제가 돼 왔다. 노동자 스스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작업을 중지하면 사업주가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 않았기 때문에 ‘급박한 위험’이 아니었다며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고소·고발하는 사태가 발생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당장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 조항의 개정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제기됐으나 이번 개정안은 이런 논의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맺을 때 사업주에게 안전배려의무를 부여한다.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전제라는 의미다. 따라서 사업주가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킨다면 노동자는 노동을 거절, 거부할 수 있다. 이것이 독일 법조계에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민법상의 권리로서 작업중지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자료사진>

‘작업중지요청권’이라는 모호하고 복잡한 법 조항 대신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스스로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은 불가능한가?

중국, 명확한 작업중지권 규정

“종사자는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위험작업을 강제적으로 명령하는 경우에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산안법에 해당하는 중국 ‘안전생산법’ 51조는 작업중지권을 이렇게 쉽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는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 위험작업의 강제적인 명령을 거절한 것을 이유로 임금, 복리 등 대우를 낮추거나 해고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명문화하고 있다.

이것은 ‘신체안전에 직접 위험을 미치는 긴급 상황을 발견한 경우’ 작업을 멈추거나, 작업장소를 이탈하는 권리와는 별도의 권리다. 이렇게 긴급 상황에서 작업을 정지하거나 긴급히 몸을 피하는 최소한의 대피권은 안전생산법 52조에 따로 규정하고 있으며, 역시 노동자가 긴급 상황 하에서 작업을 정지하거나 긴급 이탈 조치를 취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중국 안전생산법과 비교하면 우리 산안법 26조는 작업중지나 거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노동자의 ‘긴급대피권’을 보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긴급대피권’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시도에 대해 우리느 ‘긴급대피권’을 보장하라는 주장을 넘어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강제적인 위험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답해야 한다.

미국, 안전 위한 단체행동 우선 보호

미국 연방법도 몇 가지 조항을 통해 유해위험업무에 대한 작업거절권,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급박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노동자의 판단이 악의적이지 않은 경우, 노동자가 작업 수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미국법에서의 일반적 견해다. 미국 산업안전보건법은 우리나라 산안법처럼 작업중지권 행사를 위해 몇 가지 기준을 요구한다. 위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합리적이야 하고, 작업 거절 전에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연방노동관계법은 이런 제한이 없이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의 작업 거절과 거부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은 안전 문제 때문에 작업장을 이탈하거나 작업을 거절하는 행위를 단체로 하는 경우, 이를 노동자 상호 구조 또는 상호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한 단합 행위로 보고 있다. 직접 위험 상황에 노출되지 않은 노동자도 동료 노동자와 공동 행위를 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보호받을 수 있다.

미국 노동자 일곱 명이 작업장 기온이 너무 낮아 이에 항의하기 위해 작업장을 이탈한 사건이 있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징계하자 미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노동자들의 상호 부조, 상호 보호를 위한 공동행위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판단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는가, 그 위험이 얼마나 급박하고 큰 것이었는가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1962년의 일이다.

공장 천장에 달린 엔진 이송기의 쇠사슬이 끊어지면서 300kg 짜리 엔진이 바닥에 떨어지는 사건이 2014년 한국 굴지의 자동차 공장에서 발생했다. 다행히 그 아래 작업자가 없어 인명 피해는 없었다. 회사는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이해할만한 사고 설명이나 조치 없이 작업 재개를 강행하려 했다. 이에 작업을 중지하고 항의한 노동자에게 징계, 고소·고발로 답한 사업주. 이것은 부당한 행위가 아닌가?

위험 작업 거부했다면 임금 지급하라

미국에서 노동자 두 명이 허공에 높이 매달린 안전망 위에서 작업하는 것을 거절한 일이 발생했다. 이전에 여러 명의 노동자가 그 안전망 위에서 작업하다 추락했고, 열흘 전에도 한 명의 노동자가 추락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이 노동자들에게 징계와 감봉 처분을 했다. 미국 법원은 징계가 무효이며 이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한 기간의 임금도 소급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동자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안전한 작업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맺을 때 사업주에게 안전배려의무를 부여한다.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전제라는 의미다. 따라서 사업주가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킨다면 노동자는 노동을 거절, 거부할 수 있다. 이것이 독일 법조계에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민법상의 권리로서 작업중지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폭스바겐 골프 생산공장. <자료사진>

작업중지권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 얘기가 떠오른다. 조선소 정규직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잘 활용하고 있지만 더 위험한 일을 맡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이 보전되지 않기 때문에 작업중지권을 쓸 수가 없다.

특정한 작업 구역에서 작업을 중지시키려는 노동조합 간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보기가 미안하고 불편하지만 지금은 뾰족한 수가 없다. 특히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하고 일터가 자주 바뀌어 산업재해 발생에 취약한 돌관팀 일용 노동자들은 작업이 중지되면 바로 며칠동안의 일당이 날아가 버린다. 이쯤되니 ‘위험해도 일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 사업주들이 말하는 ‘안전의식 없는 노동자’의 처지다.

위험 작업을 거절하는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 조차 비정규직이 절반을 차지하는 현재의 불안정한 노사관계에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위험 작업에 대한 작업 중지를 노동자들의 권리로 명시하고 이에 따른 사업주의 의무와 부담 역시 법적, 행정적으로 강제한다면 임금 손실 위협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독일, 안전한 일터 제공은 사업주 의무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맺을 때 사업주에게 안전배려의무를 부여한다.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전제라는 의미다. 따라서 사업주가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킨다면 노동자는 노동을 거절, 거부할 수 있다. 이것이 독일 법조계에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민법상의 권리로서 작업중지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경우 산안법 상의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사업주의 최소한의 안전배려의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이 규정하는 최소한의 안전배려의무도 하지 않은 채 위험 상황에 노동자를 내모는 것은 균형 있는 계약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근로 계약이 아니니 작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사업주들이 산안법을 준수하고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변호사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산안법에 안전보건상 사업주 의무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노동자가 작업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용자들이 산안법을 지키도록 하는데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큰 규모의 과태료 등의 대안은 사업주들이 빠져나갈 여지가 많고 사후 조치라는 근본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면 실제로 산재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작업중지권’에 대한 독일의 해석은 현재 우리 사회의 근로계약이 얼마나 불균형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을 때 기본적인 전제로 본인에게 안전배려의무가 있다는 의식을 하는 사업주는 얼마나 될까. 법과 사회는 이들에게 안전배려의무를 얼마나 따져 묻고 있나.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 지급 의무마저 회피하는 사업주가 길에 널린 마당에 말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

외국에서도 작업 중지는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에 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현장에서 항의와 집단행동, 이에 맞서는 징계와 감봉이 이어지고 법정 투쟁도 계속 된다. 파업이 노동자의 가장 큰 무기인 것과 같은 이유로 작업중지는 곧바로 자본가의 이윤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중지권을 얼마나 폭넓게 인정하고 이를 통해 실제로 노동자가 얼마나 안전해질 수 있는지는 현장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투쟁의 결과로 결정된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한 건설회사 조사에 따르면 100%의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 권한을 실제로 사용하겠다고 답한 것은 75%에 불과했다. 권리가 있다는 것과 이를 실제 쓸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최소한 법 규정과 법 적용은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다. 특히 모호한 법이 사업주 편을 들고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제하는 한국사회 현실에서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법 개정은 중요한 과제다. 노동인권 탄압으로 지탄받는 중국에서도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권리가 아닌가.

*이 글의 독일, 미국 사례는 『산업안전보건법론(정진우, 2014, 한국학술정보)』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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