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 조합원 102명은 회사가 해고 날이라고 일방 통보한 3월31일 이후 매일 아침 9시30분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공장 시설유지보수를 위해 회사가 남긴 24명과 정리해고자인 78명의 조합원들이 지회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분임조를 나누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조별 토론과 철야농성도 진행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비껴간 24명의 조합원도 근무를 마무리하면 바로 농성에 함께하며 공장을 지키고 있다.

▲ 4월9일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 이천 하이닉스 공장 대운동장에서 연습한 플래시몹의 마무리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천=성민규

조합원들은 하루 종일 공장을 지키고 있지만 공장 안 식당 이용은 4월1일부터 중단된 상태다. 공장 식당은 하루 한 끼를 무료로 제공하고 나머지 두 끼도 500원에 이용할 수 있었지만 해고자 신분으로 바뀌면서 한 끼에 4800원을 지불해야한다. 조합원들은 세끼 식사를 다 지회 사무실에서 만들어 먹고 있다.

하이디스는 지회에 기숙사, 식당, 통근버스, 복지시설, 사원서비스센터, 예비군자원관리, 부속의원, 주차장 등 각종 부대시설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다며 공문을 보냈다. 지회는 부대시설 서비스 제공 중단은 단협위반이라고 지적하며 노동지청에 고발했다.

▲ 4월9일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4월1일부터 식당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조합원들은 밑반찬과 재료를 준비해 지회 사무실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이천=성민규

대만인인 제이슨 리 사장은 전인수 부사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주고 대만으로 떠났다. 후임 사장과 관리직 직원들은 4월1일 이후 출근하지 않아 지회는 회사 측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지회의 요구는 명확하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철회 ▲특허료 수입과 주식매각 대금 공장 재투자 ▲공장 운영 의사 없으면 특허권 포함 회사매각 등이다.

기술 먹튀를 위한 정리해고

이잉크의 무리한 정리해고 추진 뒤에는 LCD 광시야각 기술인 FFS((Fringe Field Switching) 특허라는 원천기술과 이 기술이 벌어들이는 이익을 독차지 하겠다는 욕심이 깔려있다. 이잉크는 1월7일 정리해고와 공장폐쇄를 통보하면서 FFS기술 특허권과 영업망을 유지하는 법인으로 하이디스의 사업목적을 변경하려 시도했다.

▲ 4월9일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 현장에 설치할 투쟁현황판을 만들고 있다. 이천=성민규

회사는 기술료로 한해에 일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지만 설비투자는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하이디스는 LCD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다. 하이디스는 특허권을 경쟁업체인 샤프, AOU 등 대부분 LCD업체에 팔아먹고 공유하고 있다. 설비를 늘리고 제품을 생산해 다른 회사와 경쟁하기보다 쉽게 돈 벌 수 있는 특허권 대여에 집중했다.

하이디스가 장부에 기록한 FFS 특허권의 가치는 15억원에 불과하다. FFS 특허권은 특허공유를 통해 향후 10년간 최소 5천억원 이상 로열티를 벌어들일 기술이다. 회사는 특허권을 이용해 이미 수천억원의 이익을 벌어들였고 앞으로도 그 이상 벌어들일 기술을 터무니없이 적은 가치로 평가했다.

지회는 2008년 노사합의 통해 비오이하이디스 소유의 기술을 다른 곳으로 매각하지 못하게 했다. 회사는 기술유출방지 조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합의서 폐기를 줄기차게 요구got다. 이잉크는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아예 노사합의 주체인 노동조합을 없애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대만 자본을 감시하고 실질적으로 기술유출을 막을 방패를 갖고 있는 노동조합을 정리해고로 없애면 이잉크는 특허로 나오는 수익을 고스란히 대만으로 빼돌리거나 아예 특허권을 헐값에 이잉크로 이전할 수 있다.

해맑은 해고자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24명의 조합원들 역시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정리해고 대상자에서 제외된 김홍일 하이디스지회 사무장은 “하이디스 이천공장은 하이디스 혼자 쓰기에 크다. 공장 일부를 다른 회사에 임대를 주고 있다”며 “회사가 24명의 직원을 남긴 이유는 시설관리직까지 해고해 공장의 시설가동이 중단되면 임대계약에 의해 법적인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임대문제만 해결되면 회사가 남은 인원도 정리할 것이다”이라고 내다봤다.

▲ 4월9일 이천 하이닉스 대운동장에서 세월호 추모 플래시몹을 연습하는 조합원들이 웃으며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이천=성민규

김홍일 사무장은 “시설관리 부서에 남성이 많고 공장 안에서도 가장 강성 조합원들이었기 때문에 지회 간부도 많고 지회장도 많이 배출했는데 해고되지 않고 남은 사람이 가장 많은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겸연쩍어 했다.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절반의 동료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현장을 떠났지만 남은 조합원들은 공장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기로 결정했다.

지회에 찾아간 4월9일 조합원들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플래쉬몹을 연습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웃으면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조합원들이 연습하는 플래쉬몹은 4월10일 광화문 결의대회와 16일 이천 시민 세월호 추모문화제에 선보일 예정이다. 윤영준 대의원은 “해고 열흘째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 조합원들의 힘이 넘친다”고 말을 보탰다.

은율리 대의원은 “해고당한 조합원들이 해고자답지 않게 밝고 해맑다. 하지만 속내는 답답할 것이다”라며 “조합원들이 철야농성 프로그램으로 자화상 그리기를 했다. 그림 속 표정들이 대부분 어둡다. 마음속 답답함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하이디스 공장 철야농성을 맡은 조합원들이 철농프로그램으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조합원들은 분임조를 이뤄 활동하고 있다. 지회제공

지회는 향후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이잉크와 모기업인 영풍그룹이 대만기업인 만큼 국내투쟁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두 차례 걸친 대만 원정투쟁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며 “대만공영방송에 하이디스 이야기가 나가는 등 조합원들의 투쟁이 대만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풍그룹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방법을 찾아 3차 원정투쟁을 진행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지회는 정치권과 정부에 기술먹튀를 위한 정리해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외국투자자본의 투자와 기술유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소송도 진행한다. 우부기 수석 부지회장은 “지회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전부 진행한다. 일단 부대시설 제공위반을 비롯한 단협위반으로 고발을 진행한다”며 “해고무효 민사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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