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리잉(Li-Ying)은 서툰 한국말로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선 외국으로 투쟁하러 나가는 일이 자주 있어요?”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몇 년 전 경기 지역에 있는 독일자본 기업 승림카본 노동자들이 독일 원정투쟁을 준비하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 하이디스 대만 원정투쟁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스카니아코리아 노동자들은 2013년 12월 본사가 있는 스웨덴으로 원정을 떠났다.

▲ 3월23일 하이디스 먹튀문제 해결을 위한 2차 대만원정 투쟁단 조합원들이 2일차 원정투쟁 선전전 도중 일정을 공유하고 있다.

리잉의 질문은 이어졌다.

“쌍용차(노동자들)도?”

“아마 언젠간 한 번쯤은 가야 되겠죠. 어차피 외국자본이니까. 그런데 노동조합이 매번 비행기 타고 투쟁하러 나가기엔, 우리가 돈이 없네요.”

경기도 이천에 있는 LCD 생산업체 하이디스가 지난 1월 7일 공장폐쇄를 결정한 이후, 지난달 전체 직원 377명 중 재무회계·설비부문 노동자 42명을 제외한 33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정리해고 실시일은 4월 1일이다.

하이디스는 대만 이잉크(E-ink)가 최대주주로, 지난 한 해에만 1,000억 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는데도 하이디스의 FFS(광시야각) 특허기술만 ‘먹고 튀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외국자본의 먹튀, 하이디스에서 끝장내자’는 마음으로 투쟁하고 있다.

1000억 흑자 남겨놓고 직원 90% ‘정리해고’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실질적 소유주인 대만 이잉크(YFY그룹) 사장을 만나러 지난 2월 8일부터 닷새간 대만으로 1차 원정투쟁을 떠났다. 나 역시 그들의 원정투쟁에 함께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간 YFY그룹 본사 앞에 섰을 때의 기분은 한마디로 “참 서럽다”는 것이었다. 뭐 대단한 것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밥그릇 지켜보자고 이역만리 타국 땅에 건너와서 이방인이 되어 서 있는 기분. 더럽고, 서럽고, 외로웠다.

▲ 3월24일 하이디스 먹튀문제 해결을 위한 2차 대만원정 투쟁단 조합원들이 3일차 원정투쟁 일정으로 진행한 대만 노동부 앞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만 자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에 찾아온 ‘미운’ 대만 땅이었지만, 대만에서 연대해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하이디스 노동자들에게 참 따뜻하게 대해줬다. 단 여섯 명이었던 우리를 위해 십수 명이 모여 함께 투쟁계획을 짜주고, 매일매일 번갈아가면서 가이드 역할도 해주고, 선뜻 자신들의 사무실을 내어주고, 말이 통하지 않는 경찰과 매번 대신 싸워줬다.

웹자보를 만들어주고, 자신들의 집회에 연사로 세워주었으며, 기자들을 모아주었고, 단 여섯 명이 하는 조촐한 촛불집회에 전국의 노동조합, 진보정당, 인권단체들이 달려와 주었다. 우리는 짧은 닷새간, 매일매일 일정에 늘 놀라고, 늘 감사했다.

“우리는 같은 조직이라도 이렇게 하지 못하는데, 타국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정말 대단하다.”

대만은 아직 산별노조가 구성되어 있지 못해 한국의 산별노조, 특히 금속노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같이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왔다.

▲ 3월24일 하이디스 먹튀문제 해결을 위한 2차 대만원정 투쟁단 조합원들이 3일차 원정투쟁 일정으로 진행한 대만 노동부 앞 기자회견에서 율동을 하고 있다.

1차 대만 원정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한국의 산별노조 투쟁에 감명받은 대만 노동자들이 그 짧은 기간 동안 ‘하이디스 노동자를 지지하는 대만 연대’를 만든 일은 물론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더 크게 얻고 돌아온 것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몸집만 커지면서 한국의 산별노조 운동이 잃어버린 ‘첫 마음’과, 형식과 실리를 뛰어넘는 ‘헌신’과 ‘연대’를 그들에게 배웠다.

대만으로 떠나는 두 번째 원정투쟁… “이 비참함 끝내자”

그리고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지난 22일, 또 다시 대만으로 향했다. 이번 2차 대만 원정투쟁단은 하이디스 여성 노동자 아홉 명을 포함해 모두 스물아홉 명.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들과 한국노총 소속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함께한다. 출국하는 날이 아내 생일인 가장도 있고, 아이 셋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속울음 울며 떠나는 여성 노동자도 있다.

그리고 하이디스 노동자와 더불어 하이디스지회가 소속한 금속노조 경기지부 에스제이엠지회, 현대케피코지회, 두원정공지회 조합원들도 함께한다. 성공회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리잉이 기꺼이 이번 원정단 합류를 결정해주었다.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 서러운 걸음이지만, 스물아홉 명의 노동자들이 웃으면서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는 일자리를 스스로 되찾기 위해. 하지만 하이디스에서 이 비참함을 끝내보자는 마음으로 고생길에 나섰다. 이국 땅에서 내딛는 그들의 걸음걸음에 지지와 연대 부탁드린다.

엄미야 / 경기지부 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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