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6일,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은 77일간의 옥쇄 파업을 마치고 공장 문을 나섰다. 그로부터 200여일이 지난 지금 파업 참가 노동자들은, 쌍용 공장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미행美行과 쌍용 파업 참여 노동자, 가족들 그리고 금속노조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 정치, 사회 단체들과 현장 활동가, 르포작가, 교수, 작가, 블로거 등 다양한 주체들은 각각의 관점에서 “파업 그 후”부터 “88만원 세대와 쌍용”을 거쳐, “한국 사회와 노동자 파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현재들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기사의 저작권은 해당 필자에게 있다. / 편집국

세계자동차산업은 유연화, 그리고 글로벌화의 덫에 걸렸다. 도요타 리콜사태는 자동차 산업 스스로 자신이 갇혀버린 덫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실태를 조금 들여다보자. 우선, 노동자들을 숙련과 구상의 기능을 배제한 채 진행된 생산방식의 유연화는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장 대신 하도급과 외주화를 통해 부품조달경로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 결과 완성차 업체와 자본은 부품조달의 관리 기능만 맡고 생산과 품질에 대한 책임은 부품사나 중간 공급업체가 맡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외주화 방식으로 길게 늘어진 하도급체제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어서까지 확장되었고, 결국 품질의 도요타가 급가속을 비롯한 각종 부작용을 낳는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물론 이것은 도요타만의 문제가 아니다. 혼다도 GM도, 그리고 폭스바겐과 현대자동차도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는 부품의 결함에 의한 리콜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80년대만 하더라도 부품을 직접 제작하는 비율이 엔진을 포함하여 60%를 상회하였으나 지금은 40%를 밑도는 수준이다. 엔진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부품을 직접 만드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컴퓨터와 전산망을 통해 자동차 부품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대개의 완성차 업체들은 80점 수준에서 부품을 관리하기 때문에 100점에 미치지 못하는 20점의 격차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자동차 리콜은 이 때문에 어떤 업체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 대신 기계에 의한 생산혁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투자와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제공하기보다 노동자를 줄이고 노동을 배제한 생산방식을 확대하면서 품질은 제품의 소재와 다양한 기능으로 둔갑되어 버린 채 ‘시간당 생산대수’와 ‘대당 조립 시간’으로 생산성을 덧칠해버렸다.

품질의 도요타가 정규직 노동자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기 시작하고, 도요타생산방식을 위해 반드시 자국의 노동자를 해외 공장으로 파견해왔던 관행을 스스로 포기한 결과 도요타는 더 이상 품질의 대명사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물론 도요타의 리콜 사태 이전에 공장 폐쇄와 공장의 해외 이전, 대규모 인원감축을 단행한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의 위기가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도요타 리콜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생산체제를 내재화하거나 부품업체와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이 생산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생산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에만 치우진 나머지 생산에서 반드시 필요한 원하청 협력체제와 일하는 노동자의 지식과 능력을 가볍게 다루어서는 지금과 같은 리콜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쌍용차, 스스로 덫을 향하다

쌍용차는 상하이기차의 부도덕한 철수 전략 속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기차 자본이나 법정관리인들은 인력감축을 우선하고, 기계 중심의 공장재편과 새로운 신차 투입에 의한 판매 확대를 기획했다.

자본이라는 계급적 속성에 걸잠게 노동자 수를 줄여서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개선한 다음, 판매량을 늘리면 향후 2~3년 안에 경영난을 극복하고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유포했다. 그리고는 노동자를 자르는 일에 혈안이 되었고, ‘산 자’와 ‘죽은 자’라는 무시무시한 구별짓기가 자행되었다.

희망퇴직과 정리해고가 단행된 후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물과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법정관리인까지 나서서 협조적 노조를 탄생시켰고, 병영적 노무관리와 강압적 노동통제가 부활되었다. 노동강도는 엄청나게 올랐다.

이렇게 사람을 자르고 사람을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시킨 결과는 어떤가? 다음의 표는 쌍용자동차의 생산 실적이다. 8월 정리해고에 맞선 파업이 마무리되고 민주노총 탈퇴 시도가 있었던 9월에 생산이 반짝 상승했지만 그 효과를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

  ▲ 출처 = 산업노동정책연구소

2009년 9월 이후 생산대수는 다시 점진적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총생산대수는 3만5천대 규모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6월과 7월 두 달 동안 파업 때문에 생산을 못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천 명을 몰아낸 결과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실적이다.

물론 쌍용차만 생산 감소세를 보이는 건 아니다. 2009년 9월 이후 한국 자동차 생산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현대와 기아의 생산 감소폭이 크다. 반면 GM대우와 르노삼성은 보합세 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내 생산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쌍용차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존재감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 

이런 생산실적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경영진, 그리고 협조적이기만 한 노동조합은 쌍용차의 미래를 GM과 도요타가 걸어간 길 속에서 찾고 있다. 기술과 생산체제에서 여전히 자신들이 가는 길이 덫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 출처 =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쌍용차는 인력조정을 단행하기 이전부터 사실 도요타식의 생산재편을 추진해왔다. 공장의 설비를 현대화하고 혼류생산체제를 구축하면서 부품의 조달은 외부화하는 전략, 특히 중국 부품을 값싸게 들여왔다. 그야말로 유연화와 외주화라는 죽음의 길을 따라온 것이다.

쌍용차는 현대차나 도요타, 혹은 GM, 폭스바겐을 따라잡기(Catch-up)하는 태도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SUV 차종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체제를 갖고 있는 쌍용차가 승용차 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 업체들을 따라잡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쌍용차는 자기 생산차종에 걸맞는 생산체제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자금 지원만으로 살릴 수 없는 상태에 직면한 쌍용차

최근 쌍용차는 산업은행에 신차 출시를 긴급 자금 1,000억 원을 요청했다. 정리해고 단행 이후 긴급 경영자금으로 1,300억 원을 빌린데 이어 또 다시 경영자금을 요청한 것이다. 이것으로 공적자금 투입 없이도 쌍용차를 살릴 수 있다고 했던 법정관리인의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아직도 구치소 안에 갇혀 있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쌍용차에 신차 출시를 위해 1,000억원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문제이다. 지금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협조적 노조는 신차가 출시되기만 하면 어떤 돌파구가 생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짓말이거나 최소한 현실과 거리가 먼 희망에 불과하다.

신차 자금이 투입되면 사정은 달라질 것인가? 우선, 세계 자동차 산업 여건이 좋지 않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단순한 리콜 사태를 넘어 북미 시장과 중국 시장에서 일본 업체에 대한 미국 자본의 총공세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본 자본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위기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단지 북미3사와 도요타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신흥시장은 이미 세계 자동차 기업들의 전쟁터가 되어 있으며, 소형차 시장을 둘러싼 전쟁은 2010년 본격화할 것이다.

그리고 친환경 미래형 자동차의 기술과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은 국가간 경쟁으로 펼쳐질 것이다. 2010년에는 원/달러 환율 효과도 거의 사라질 것이고, 각 나라의 자동차 판매 지원책도 대부분 중단될 것이다. 이것은 최근 증가하기 시작한 쌍용차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내 내수 측면에서 쌍용차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거의 상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쏘나 코란도처럼 확실한 마니아층을 가진 차종도 없고, 랙스턴처럼 시장을 선도하는 차종도 없다. 체어맨만이 그나마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엄청난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5년이 넘은 차종에 호감을 느끼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쌍용차는 판매체제와 정비A/S 시스템을 전혀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신차종을 출시한다고 해서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 출처 =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쌍용차여, 진정한 주인을 찾으라

정부와 산업은행은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때부터 사실상 공적자금 지원을 통한 독자생존 방식보다는 매각을 통한 기업처리를 추진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최근에는 매각을 위한 주관사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적 차원에서 매각을 추진 중인 업체에 신차 출시를 위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매각 추진을 중단하고 산업은행이 쌍용차 지배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면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임은 물론이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다.

매각과 공적자금 지원은 병행될 수 없다. 그렇다면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협조적 노조는 이제라도 발상을 바꾸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길 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주인’ 찾기이다.

경총이나 전경련과 같은 자본가 집단들은 입만 열면 ‘주인 없는 기업’의 한계를 역설한다. 이때 그들이 말하는 주인이란 주주들, 그 중에서도 대주주들을 말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왼쪽 그림에서 보듯이 쌍용차의 주가 수익률은 코스피 수익률이나 운수장비 수익률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게다가 영업이익률과 매출액 실적 또한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이런 쌍용차를 M&A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서 선뜻 매수에 나설 자본이나 기업은 거의 없다. 혹시 있다면 기업 사냥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려는 투기적 자본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매각이 진행된다면 쌍용차는 완전히 껍데기만 남을 것이고, 노동자들의 일부 또는 전부는 다시 거리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쌍용차가 장기지속성을 가지려면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지 않는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이미 거대한 초국적 자본이 되어버린 현대기아차나 외국자본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는 GM대우나 르노삼성과는 다른 제3의 길은 바로 국민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국민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소유 측면만이 아니라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도 국민기업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생산적 측면에서는 노동자의 자율적 생산관리를 허용하고, 부품사와 상생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비정규 사내하청, 외주화를 주로 활용하면서 기술혁신에만 의존했던 방식을 정규직 노동자의 학습과 숙련에 기반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특히 쌍용차 노동자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새로운 실험을 요구해야 한다.

이종탁 /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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