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2003년 1월 9일 새벽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한 故배달호 열사가 유서에 남긴 말이다. 동시에 현재 두산의 탄압에 맞서 힘겹게 노동조합 깃발을 지켜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이기도 하다. 배달호 열사가 사망한지 7년이 지난 지금, 두산의 노조무력화 공작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완성도’ 높게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2월 26일 경남의 두산DST지회가 총회를 열고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얼마 후 3월 5일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창원지회가 ‘조직형태 변경’을 총회에서 가결시켰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했다는 얘기다. 이날 동명모트롤지회(회사명은 두산모트롤) 33명도 개별 탈퇴서를 제출했다. 물론 단일노조인 금속노조는 규약 규정에 사업장별 총회를 통한 집단탈퇴를 허용하고 있지 않아 두산DST와 창원 두산인프라코어지회의 집단 탈퇴는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대법원 판례에도 나와 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두산그룹 소속 사업장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 과연 두산 그룹 사업장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져 왔고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2009년 8월21일 임단투 과정에서 열린 출근집회. 두산인프라코어지회는 출근시간 불시에 집회를 열곤 한다. 중식집회를 예고하면 회사가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17일 인천의 두산인프라코어지회(지회장 염창훈) 사무실에서 진기석 부지회장을 만났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5년 대우종합기계를 두산이 인수하면서 출범한 회사다. 당시 지회는 두산으로의 매각을 반대하며 파업을 포함한 격렬한 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진 부지회장은 “두산으로 인수된 지 5년간 대우시절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두산의 노조 무력화 공작이 어떻게 벌어져 왔는지 소개했다.

두산이 제일 먼저 추진한 것은 ‘친 회사 세력’의 육성이었다. 이를 위해 두산이 주목한 것은 현장관리자들이다. 두산은 이들에게 인사, 근태관리 권한을 부여하고 법인카드까지 쥐어줬다고 한다. 현장관리자들을 친 회사 세력 육성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것. 진 부지회장은 “관리자들 주된 역할이 현장생산 관리가 아닌 노조활동 관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 관리자들 생산관리보다 노조관리자”

현장관리자인 직장들도 원래는 조합원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포섭돼 반노동자적 행위가 심해지자 지회는 2005년 임단투 과정에서 이들의 징계를 추진했다. 그러자 인천공장 직장 108명이 집단으로 노동조합을 탈퇴했다. 그 뒤에도 회사는 이들에게 직장 때 그대로의 일정 수준의 수당을 보존해 줬다.

진 부지회장은 “회사는 이들을 통해 조합원 성향을 파악, 자기들 입맛에 맞는 조합원들에게는 외식과 술자리를 만들어 주는데 반해 조합 활동이 활발한 조합원은 잔업 특근통제 및 부서 이동 등에서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포섭이 힘든 열성적인 조합원들은 한 부서로 몰아넣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차단시키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회가 조합원 단결을 위해 체육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면 회사가 다른 체육대회를 잡는다. 토요일 등반대회를 하면 이를 방해하기 위해 일이 많지 않음에도 특근을 요구하기도 한다. 중식집회가 열리는 날에는 현장 관리자들이 외식을 사주겠다고 하며 조합원들을 밖으로 빼돌리거나 심지어 파업집회를 잡으면 일찍 퇴근시키기는 일도 벌어진다. 진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이 머뭇거리면 관리자들이 ‘나 좀 봐달’라며 하소연하기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은 20년 넘게 부대끼며 일한 관리자들의 하소연을 쉽게 외면하기 힘들다.

신입사원에 대한 관리도 철저하다. 진 부지회장은 “회사는 2006년 입사자들에게 노조 탈퇴서를 쓰라고 강요하고 지속적으로 충성심을 강요하는 교육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또 “식당에 밥 먹으러 갈 때도 관리자들이 붙어 다니며 ‘물들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군산공장에서 일하게 된 신입직원 96명에 대한 통제도 가관이다. 근무시간 전 청소와 체조를 의무화하고 심지어 핸드폰도 현장에는 못가지고 들어가게 하는 등 마치 군대식 통제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다른 기업들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두산처럼 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 하지만 두산그룹 정도의 지불 능력이 있는 자본이라면 해볼 만한 것. 진 부지회장은 “회사는 금속노조 탈퇴하면 원하는 것 다 들어주겠다고 말한다”며 임단협 과정에서 현장에 이 같은 이야기를 공공연히 퍼뜨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두산의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경남 동명모트롤지회에 따르면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를 탈퇴하면 상여금을 보장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창원 두산인프라코어지회도 우리사주 지급 등 금속노조 탈퇴에 대한 보상이 약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속노조 탈퇴에 대한 보상까지 약속?

“금속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요구를 들어준다면 애초부터 회사가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진 부지회장은 “두산은 금속노조의 ‘금’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며 이 같이 말했다.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비용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두산이 가진 원칙이란 얘기다.

2000년 12월 29일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장관회의에서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었던 두산의 박용성 회장은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회사의 가치를 나누어 가지자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두산그룹은 10년전부터 고비용을 무릅쓰고 노조 무력화에 나선 셈. 민주노조를 없애는 것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를 더 쥐어짤 수 있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쥐어짜기가 시작되기도 했다. 진 부지회장은 “이미 현장은 대우 시절에 비해 노동강도가 많이 강화됐다”며 “몸이 아파도 불이익이 두려워 제대로 말도 못하고 일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대로 두산의 노조 무력화 공작에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진 부지회장은 “조합원들도 마음은 있는데 회사의 회유와 압박 때문에 몸이 안 움직일 뿐”이라며 “조합원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간부들이 무조건 현장에 자주 가야합니다. 조합원들 열심히 만나 대화 나누고 함께 문제 찾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현장의 단결력을 지켜내고 강화하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리 복잡한 대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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