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 노사관계에서 노조의 힘이 얼마나 센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조 조직규모나 조직률이 얼마나 높고 큰지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원들 간의 결집성과 조직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는 것인데, 전자가 노동조합 역량의 양적 측면이라면 후자는 질적 측면을 뜻한다. 물론 조직규모가 크고 조직률이 높더라도 구성원들 간에 조직력이 약하다면, 혹은 반대로 조직력이 강하지만 조직률이 낮고 규모가 크지 않다면 노사 역관계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둘이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2010년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케이이씨(KEC), 2011년 유성기업, 2012년 만도와 에스제이엠(SJM) 등에서 진행된 자본의 공격적 직장폐쇄와 기획된 노조탄압, 그리고 2011년 7월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복수노조-기업노조 등 최근 수 년 간의 일련의 투쟁을 거치면서 금속노조가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자본의 노조 무력화 시도나 법제도적 환경 변화보다 우리 내부의 조직력이 투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변수라는 점이다. 특히,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 직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된 기업노조 설립과 기존 조합원들의 이탈, 우리 지회의 약화는 많은 노조 간부들에게 당혹감을 주는 한편 내부 조직력 상태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금속노조는 우리의 현장조직력을 스스로 진단․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3년부터 주요 지회(사업장)를 대상으로 조직진단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그동안 진행된 7개 사업장의 조직진단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현상들을 짚어봄으로써 현재 금속노조의 현장조직력 상태를 정리․이해하고, 현장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강의 방안들을 제언하고자 한다.

조직진단은 기본적으로 <환경인식과 리더십>(지회는 회사의 노무관리전략 및 사업장 밖의 사회제도적 환경 변화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리더십을 발휘해서 잘 대응하고 있는가?), <조직체계와 조직운영>(지회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사업집행 및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하고 있는가?), <조직문화와 소통>(지회 구성원들은 활발하게 소통하며 서로 신뢰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가?), <조직몰입>(조합원들은 지회에 소속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노사관계 인식>(회사는 노동조합을 존중하며 서로 대등한 노사관계를 꾸려가고 있는가?) 5개 영역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전 조합원 설문조사와 집단심층면접(Focused Group Interview)을 활용했음을 밝혀둔다.

 

 

먼저 <환경인식과 리더십>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현상은 조합원들이 ‘지회의 리더십이나 지회가 회사의 경영상황이나 혹은 사회제도적 변화들을 잘 인식하고 대응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지회의 환경인식’(지회는 회사의 노무전략 및 경영상황,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한 E지회 조합원들의 평가는 3.49점(3점=보통을 기준으로 5점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인 평가)으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보였다.

 

문제는 지회 집행부의 환경인식과 리더십에 대한 평가와 달리 조합원들 스스로가 현재 지회 상황이나 지회의 활동목표를 인식하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예를 들어, E지회의 경우 조합원의 지회에 대한 인식 점수는 3.05점에 불과했다). 근속기간이 길거나 지회 간부․대의원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조합원들의 평가점수가 비교적 높은 경우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지회 집행부의 리더십이나 환경인식에 대한 평가들에 비해 조합원 스스로 지회의 상황을 알고 있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참고 | 면접 사례

 “회사 사정은 들려오는 이야기들, 관리직들 얘기하는 것으로 알아요. 회사가 (회사 상황을)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지회를 통해서도 크게 정보를 얻지 않는 편이에요.”

 “[지회가 나서서] 여러 가지 교육이나 활동을 해야죠. 옛날에는 회사에서 하는 게 10% 먹혔다면 지금은 50%, 70% 더 먹혀요.”

 “조합원들이 계속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하니깐 경영진에서 계속 어렵다 어렵다 하니 위축돼요. 지회 할당 교육시간도 있는데 이걸 통해서 조합원들에게 반박할 게 아니라, 회사 경영상태가 잘못된 것을 짚어줘야죠.”

이 같은 현상에는 다양한 배경들이 있겠으나 유의해야 할 점은 적어도 지회-조합원 간 인식의 간극이 발생하는 원인을 지회에 대한 조합원의 무관심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면접과정에서 많은 조합원들은 회사의 경영상황이나 각종 현황 정보를 지회보다는 회사로부터 접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지적했다. 특히, 과거에 매각을 경험한 적이 있거나 회사 경영상황이 불안정한 지회의 조합원들은 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으며, 지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합원들에게 회사의 상황을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피력했다. 이상의 결과는 지회가 회사와의 노사관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현안을 둘러싼 정보와 진행과정들을 조합원에게 알리는 것, 즉 노조 내부의 소통에까지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한편, 지회의 <조직체계와 조직운영> 영역에 있어서는 조합원들의 평가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그림 2]의 C지회 사례에서 보듯이, ‘지회의 업무가 절차와 원칙에 맞게 잘 수행되고 있는지,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잘 집행되고 있는지, 지회 집행부가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사업이 계획대로 집행되고 충실하게 평가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점수는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3점=보통을 기준으로 5점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인 평가). 앞서 환경인식과 리더십 영역에 대한 평가들까지 감안하면 지회의 업무체계나 의사결정, 조직운영 등과 같은 노동조합의 ‘조직형식적 측면’, ‘조직구조적 측면’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형식과 체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조직을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닌 조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유의미한 상호작용과 관계맺음, 즉 ‘조직문화적 측면’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면, <조직문화와 소통> 영역에 있어 모든 지회의 조합원들이 공통적으로 ‘조합원들 간의 개방적이고 일상적인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고 답한 것은 매우 뼈아픈 지적이다.

 

[그림 3]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지회에서 조합원들은 ‘조합원 간의 신뢰와 개방적 소통’(지회 조합원들이 서로 신뢰하며 노조 내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가?), ‘일상적인 의사소통’(공식적인 회의기구 외에 일상적으로도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점수를 매기고 있었다(3점=보통을 기준으로 5점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인 평가). 앞서 ‘조직형식적 측면’, ‘조직구조적 측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과 상당히 대조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노동조합 내에 형식과 문화의 괴리, 체계와 소통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참고 | 면접 사례

“젊은 사람들이 우리와 생각이 전혀 달라요. 자기중심적이에요. 자기한테 이익이 되면 이야기 하고 관계없으면 말고.”

“아쉽다고 하면 집행부가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합원이 이야기 하는 방식의 소통관계(쌍방향 소통)는 아직 부족해요.”

“회사 안에서 노조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재미가 없으니까 삼천포로 가죠. 동아리나 낚시나 다른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조합 얘기는 10분을 못 가요.”

“대부분 질문을 많이 안 해요. 설명해줘도 용어가 어려워서 몰라서 못할 수도 있고, 소수의견을 수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여기에는 다양한 배경들이 자리 잡고 있다. 면접조사 결과,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내부의 세대 차이에서부터 현장조직 또는 계파 간 갈등과 내부의 편가르기, 반대의견들에 대한 집행부의 강압적인 태도와 의문이나 비판을 곧바로 집행부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딱딱한 토론문화, 일상적인 재미를 찾기 어려운 투쟁과 지침중심의 군사주의적 소통문화 및 사업활동, 집행부-조합원 간 정보격차와 조합원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방식의 부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소들을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조 내부의 신뢰와 소통 문제가 비단 지회 집행부의 역할과 노력에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작금의 조직된 노동운동의 구성원 전체가 고민해야 할 과제임을 잘 보여준다.

일시적으로,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노동조합의 활동력과 운영상태가 반드시 조직 내부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잘 짜인 조직체계와 리더-집행부의 헌신과 역량만으로도 어떻게든 노동조합은 굴러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조의 활동력이 집행부에만 집중돼있을 경우, 리더십이 한계를 보이는 그 순간부터 조직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노조는 -그동안 잘 가꿔온 조직체계와 조직운영의 토대 위에서- 전 조합원의 조직일체감과 결합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의 조직문화 혁신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의 현장조직력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조직몰입>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현상들을 짚어보자. 우선, ‘정서적 몰입’(지회에 깊은 소속감을 갖고 있으며 지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이나 ‘지속적 몰입’(지회를 탈퇴하기보다는 조합원으로 계속 남아있고 싶은가?)은 대부분의 지회에서 3.5점 이상의 매우 높은 평가점수를 보였다(3점=보통을 기준으로 5점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인 평가). 즉, 지회에 대한 조합원들의 정서적 공감이나 소속감이 매우 강하고, 노동조합 탈퇴의사도 매우 낮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러 조직몰입 요소 중에서도 가장 강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노동조합 간부 수임의사’즉, 지회를 위해서 노조 간부나 다른 어떤 어려운 일도 맡을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든 지회의 조합원들이 부정적으로 응답했다([그림 4] 참조). 주목할 점은 단순히 노조 간부를 맡으려는 의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맡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응답을 보였다는 점인데, 이것은 현재 노동조합 운동이 간부 재생산과 지속가능성에 있어 얼마나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원인도 다양하다. 면접조사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노조활동에 따른 개인시간 할애나 금전적인 손해, -노동조합이 쟁취해내는 경제적인 성과에 대한 조합원 개인들의 기대감과는 별개로- 노조활동 그 자체에 대한 우리 사회와 조합원 본인들의 부정적인 시각, 간부로서의 리더십이나 역량을 쌓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잘해도

참고 | 면접 사례

“임단협 준비하면서 소위원 구성을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요. 거의 안 할라고 해요. 웃자는 소리로 ‘모범조합원 추천해줄게’ 꼬시는 단계까지 왔어요.”

“금전적인 이유와 개인시간이 줄어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을 추진할 때 조합원들이 따라와주면 수월한데 생각들이 다 다르니까요.”

“사측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조합원들한테 많이 해당돼요. 노조활동 하면 일단 안 좋게 보는 거죠. 빨갱이처럼 보고. 대의원으로서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을 하는지 관심도 없어요.”

“지회 간부를 맡으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일하면서 그런 걸 익히기에 부담이 많이 가요. 스스로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자리’라는 인식 등을 노조 간부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다. 즉,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간부는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그 헌신에 대해 적절하게 보상받는 자리가 아니라 득 될 것도 전혀 없고 마냥 귀찮기만 한 자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지회 임원이나 집행간부가 새로 선출되지 않고 수차례 연임하거나 단순히 업무만을 바꾸는 식으로 간부 활동을 지속하는 회전문 현상은 금속노조 전반에 이미 일반화돼있다. 문제는 한편으로 계속 깊어져가는 조합원들의 대리주의적 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역량을 소진해가면서 점차 관료화‧관성화돼가고 있는 현장간부들의 운동성 약화에 대한 해법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구성원들 모두가 간부 재생산이 야기할 위험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하게 꺼내놓고 논의해본 적이 없으며 선거 때나 공석이 생길 때마다 임시처방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데 급급해왔다는 데 있다. 정년을 얼마 앞두지 않은 고령의 선배세대들이 보이는 노조에 대한 무관심이나 민주노조를 직접 설립해본 경험이 없는 젊은 조합원들의 또래문화와 자유분방함을 지적하기에 앞서 노동조합이 처해있는 현실을 남김없이 드러내 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공감하는 노력이 우선돼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노사관계 인식> 영역에서는 많은 지회에서 조합원들의 무사안일주의와 보신주의, 대리주의적 태도가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림 5]에서 보듯이, 현재 워크아웃이나 복수노조 설립 등과 같은 투쟁 현안이 없는 지회(B지회, E지회)의 조합원들은 -집행부나 대의원들과는 달리- 지회 노사관계가 원만하며 갈등적이거나 적대적이지 않다는 느슨한 노사관계 인식을 보였고, 면접조사에서도 무사안일주의와 보신주의적 태도가 존재한다고 자평했다.

 

눈여겨 볼 점은 -지금 현재 투쟁이 진행 중이지는 않지만- B지회의 경우 과거 몇 차례 구조조정을 경험했고 E지회 역시 과거에 비정규직 노조 설립 투쟁을 벌이면서 회사와 격렬하게 싸웠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투쟁들이 조합원들에게 부정적인 경험으로 각인돼있을 경우, 이를테면 투쟁에 크게 패배하면서 투여한 역량에 비해 적절한 성과를 얻지 못했거나 혹은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투쟁과정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 경우에는 이후 노사관계가 안정되는 국면에서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와 같은 반(半)이탈적 경향이 나타나기 쉬우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회 집행부에 대한 대리주의가 훨씬 더 심화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참고 | 면접 사례

 “노사관계가 나쁜 편은 아니에요. 감정적인 대립은 초창기부터 상당히 없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구조조정 해서 싸움을 했었는데 그 이전에는 조합원들이 심리적으로나마 안정적으로 느끼고 있다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정리해고에 대한 부분들을 인식을 하다 보니 무사안일주의가 … 생각들이 그렇게 가는 정서가 있더라구요.”

“예전에는 항상 붙었죠. 그때는 젊고 패기도 있고. 항상 임투 때만 되면 ‘몇 달은 싸워야 하는구나’ 하는 각오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 계신 분들 평균연령이 높아요. 46살, 47살이 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위축된 측면이 있죠. 그러니 타협의 여지가 많아요.”

“요즘에는 회사가 지회를 파트너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요. 경영상 의사결정 할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하는 것 봐서는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것 같아요.”

아울러, 조합원의 고령화 현상 또한 노사관계 인식에 있어 무사안일주의와 보신주의가 확산되는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제조업 전반에 신규채용이 점차 줄어들고 청년층의 젊은 조합원들이 유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이를 먹어가고, 결혼을 하며, 책임져야 할 가족이 늘어나고, 자녀들이 커가면서 함께 늘어나는 생계비 부담의 무게만큼 기존 조합원들이 노조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부담감 역시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의 노사관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겉으로 드러나는’ 사용자의 태도가 노조친화적으로 변화하는 것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면접조사 결과, 과거에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던 사용자가 어느 순간부터 교섭이나 조합원들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유화적이고 온화한 제스처를 취한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 -지회 집행부가 그 의도를 경계하는 것과 달리- 조합원들은 회사에 대해 보다 쉽게 우호적인 태도를 형성하곤 했다. 노사관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 사용자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직접적으로 조합원들의 무사안일주의나 보신주의를 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층에서부터 노사관계의 대립적 성격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언제든 복수노조가 설립될 수 있는 작금의 제도적 국면에서는 조합원들의 노사관계 인식 및 사용자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노사 역관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측할 수 없는 까닭에 이에 대한 지회 집행부의 대비가 필요하다.

현장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우리의 과제, 끊임없는 혁신

그렇다면, 위와 같이 금속노조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조직력 약화 현상들, 즉 지회-조합원 간 인식의 간극, 상호신뢰 문화와 일상적인 소통의 부재, 간부․대의원 기피 현상, 느슨한 노사관계 인식과 무사안일주의 및 대리주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각각의 지회가 처한 상황들에 따라 구체적인 해법은 다를 수 있겠으나 큰 틀에서 대략 네 가지 방향을 제시해볼 수 있겠다.

첫째, 변화해가는 작업장 노사관계 지형에 대응하는 지회 나름의 중장기적 전망과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있어 임단협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노조활동이 여기에만 치우칠 경우 단기성과주의에 매몰될 위험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모두가 공감하는 비전이 명확하게 수립돼있지 않은 조직에서는 집단주의가 약화되고 개인주의가 횡행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회는 구성원들의 상황인식과 의지들을 하나로 모으는 단일한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고민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점은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노조활동의 비전과 과제가 쉽게 변경되지 않고 지속돼야 한다는 점인데, 이를 위해서는 -지회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사업목표나 계획을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회 간부부터 기층의 조합원까지 구성원 모두가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제 도출 과정이 필수적이다.

둘째, 공식적인 회의체계를 넘어서는 일상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현장의 노동조합운동은 형식과 문화의 괴리, 체계와 소통의 괴리를 경험하고 있다. 조직체계나 조직운영은 잘 굴러가고 있으나 정작 구성원들 간의 일상적인 신뢰와 소통은 부족하고 집행부와 조합원들 간에는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분열의 원인은 소통의 부재로부터 비롯되며, 연대의 계기 또한 친밀한 소통으로부터 마련된다. 따라서 지회는 한편으로는 조합원들 간의 수평적 소통이, 다른 한편으로는 집행부-조합원 간의 수직적 소통이 일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끔 하는 방안들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조직구성원들의 결집력과 연대감은 결코 공식적인 회의를 열거나 소식지를 많이 낼 때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의사소통(small communication)과 관계맺음을 통해 형성된다. 도시락 간담회나 막걸리 간담회, 중식티타임, 연령별․세대별 모임과 간담회, 가족한마당 행사, 영화․연극 관람을 비롯한 집단적 문화체험, 현장조직 간 정례회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지회 소식지 제작 등 지회 상황에 맞게 공식적인 회의체계 밖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밀착형 소통방식을 구상해볼 것을 제언한다.

셋째, 신규 간부 및 젊은 활동가를 발굴․육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활동가 재생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회사가 끊임없이 노조 무력화를 시도해오고 있는 것과 달리 노조는 새로운 활동가 세대를 양성하거나 기존에 구축된 현장조직력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늙어가고만 있다. 노조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조합원이 고령화되고 있다는 물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노조운동이 관성화되고 활동가들이 관료화돼가고 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기에 급급하다고 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를 꺼린다면 노조는 회복할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노조민주화의 경험이 있는 선배세대들이 대규모로 정년퇴직하는 시점을 고려해본다면 그 시기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금전적인 손해가 문제라면 보전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조합원들이 노조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교육선전 활동과 함께 금속노조에게 조합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투쟁을 주문해야 한다. 간부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데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에 맞는 단계적인 현장훈련 과정을 마련해야 하고, 젊은 조합원들이 접근하고 성장해가기 어려운 권위적인 현장문화 또한 바꿔야만 한다. 노조 간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선후배모임 조직, 신규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의식교육 강화, 지회 간부체계 확대 및 작은 것이라도 조합원들이 노조활동을 체험․참여해볼 수 있는 역할 및 동기부여, 권위적인 조직분위기를 극복하고 조직일체감을 강화하기 위한 소통 프로그램 구상 등 지회 상황에 맞는 다양한 시도들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 노동조합운동이 처해있는 현실을 남김없이 드러내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고 공감하는 노력이 선행돼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에게 혁신이란 위기가 눈앞에 와서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과업이라는 점을 공유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넷째, 기존 간부들의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위에서 제언하고 있는 현장조직력 강화 방안은 사실 현직 지회 간부와 활동가들의 역량과 전문성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지회의 중장기적 비전과 목표 수립은 회사의 동향 및 법제도적 환경의 변화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부터 비롯되며, 일상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젊은 간부를 육성하는 데에는 조합원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간관계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존의 운동 관성과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은 지회의 상황전반을 꿰뚫는 관찰력과 참신한 아이디어, 기획력과 집행력 위에서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장조직력 강화의 시작은 기존 간부와 활동가들의 역량과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노조 간부 및 활동가에게 있어 책임감과 헌신, 성실함은 기본이지만 오늘날 위기의 노동조합운동은 ‘열심히 하는 간부’를 넘어 ‘잘 하는 간부’를 요구하고 있다. <끝>

 

홍석범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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