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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위험을 인지했다면 멈춰야 한다[당장 멈춰 4]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 현행 ‘작업중지권’의 ‘급박한 위험’ 한계를 넘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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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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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는 ‘중대재해 근절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이하 당장멈춰)을 구성해 작업중지권 복원을 위한 실태연구와 이론 축적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한노보연은 올 하반기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의 협조를 얻어 금속노조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실행 경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작업중지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고찰, 작업중지권 복원과 확장에 대한 한노보연 당장멈춰팀의 기획 연재를 열 차례에 걸쳐 싣는다.

<연재 기획>

① 작업중지권이 일상인 현장, 어떻게 활용하고 지켜나고 있는가.

②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③ 징계 및 손배로 작업중지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사업장

④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⑤ 임금 손실로 직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⑥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 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과제

⑦ ‘위험’이란 무엇인가, ‘급박한 위험’이란 무엇인가.

⑧ 해외의 작업중지권 사례 비교

⑨ 작업중지권의 확장 : 유해위험작업중지권, 작업거부권, 작업거절권, 작업회피권

⑩ 현장의 조직력 강화 측면에서의 작업중지권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작업중지 등)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그날 백화점 식당가의 절반쯤만 조명이 켜 있었다. 백화점 건물 벽과 천장,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한 부분은 장사를 하지 않고, 나머지 절반만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 직원이 이 상황을 ‘급박한 위험’이라고 판단해 사람들을 백화점 밖으로 대피시켰다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502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회사는 건물이 붕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직원을 징계하고, 매출 손실과 이미지 손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청해진해운은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배가 위험하다. 더 실으면 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승무원의 경고, ‘세월호의 복원력이 낮아 화물 적재를 자제해야 한다’는 세월호 선장의 경고, 조타기가 고장 났으니 고쳐달라‘는 조타수의 요구를 모두 무시했다. 승무원 중 누군가가 승객을 포함해 자신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출항을 거부할 수 있었다면 배는 침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침몰하지 않았다면, 304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가정한 삼풍백화점 직원과 마찬가지로 세월호 승무원도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작업중지권 도입과 한계

산업안전보건법 제 26조 작업중지권은 1990년 도입 당시 ‘사업주의 지시가 있어야만’ 대피할 수 있었으므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 이후 운동 진영과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로 2항과 3항이 차례로 신설됐다. 2항은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것이고, 3항은 작업 중지로 인해 회사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생명에 위협을 느껴 작업 중지를 실시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판명나면 회사가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민형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형국이다.

사람들을 대피시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승무원의 출항 거부로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의 판단은 틀린 것이 된다. 현행법은 회사가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작업중지 손해는 노동자가 책임져라?

2011년 3월, 한국지엠 부평공장 조립2부에서 산재가 발생했다. 보전작업자가 설비 고장 원인을 파악하던 중 조립라인이 가동돼 손가락이 협착됐다. 재해자는 병원으로 후송돼 8바늘을 꿰매는 처치를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아무런 조치없이 20분간 라인을 정상 가동했다. 사고 후 안전보건교육은 고사하고 고장원인이나 재해발생 원인에 대한 조사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라인을 돌린 것이다. 쉬는 시간에서야 2차 점검과 보수작업을 진행했다.

   
▲ 회사는 위험 원인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작업을 강행하는 비상식적인 조치를 했다. 사고 당시 이 대의원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정당했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사건 발생 20여일 뒤 인사위원회를 열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에 해당한다며 이 대의원에게 정직 2개월 징계를 내렸다. 사진=신동준

이미 퇴근했던 해당부서의 한 대의원은 이런 상황을 조합원에게 전해 듣고 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고현장을 찾아 설비가동을 중단시키고 회사에 재해 발생 원인, 재발 방지 대책, 안전보건 교육을 요구했다. 노조 당직자와 회사 관계자들이 대책회의를 진행했고 ‘앞으로 유사한 보전작업은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진행한다’고 합의한 후 라인을 가동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설비 수리를 할 때 라인을 세우지 않고 보전작업을 해 보전작업자가 상시적으로 산재 위험에 노출된다. 그리고 설비 고장 원인을 밝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체적 위험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회사가 위험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작업을 강행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조치였다. 대의원의 작업중지권은 정당한 행사였다.

그러나 사건 발생 20여일 후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에 해당한다며 이 대의원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회사는 보전작업자가 사내 안전규정을 안지켜서 사고가 났다고 주장한다. 사고가 기계와 상관없으니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작업 중지 요건이 안된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근거’로 작업 중지를 무리하게 강행했고, 27분 작업 중단으로 3억 3천만 원이나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징계를 한다는 주장이다. 회사의 이해할 수 없는 부당징계에 대해 해당 대의원은 법정소송을 벌였으나 결국 대법원에서도 기각됐다.

‘급박한 위험’으로 위협하는 안전

노동계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중지권을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명시하지 않은 채 ‘급박한 위험’에만 한정하고 있어 해석에 많은 논란이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한 용역연구 보고서(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실태 조사, 조흠학)에서는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행사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급박한 위험의 정의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 ‘급박한 위험이라는 용어를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한 경우로 수정’, ‘사업장 안전관리규정에 급박한 위험에 대한 정의를 포함하도록 강제할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즉 ‘급박한 위험’이라는 한정은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한 상황을 매우 협소하게 제한한다는 지적이다.

진짜 노동자의 권리로서 ‘작업중지권’을

한국지엠 사고는 중대재해는 아니지만 이미 사고가 발생한 경우다. 재발 방지를 위해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이런 조치 없이 라인을 다시 가동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경우다.

삼풍백화점 붕괴나 세월호 참사도 노동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할만한 상황이었다. 이들이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명실상부하게 보장받았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가능한 작업중지권이 될 수 있도록 권리로 명시하고, 그 권리행사 요건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법조문에 좀 더 자세한 규정을 포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은 노사관계에서 충분한 힘을 가진 노동조합이 주로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중지권이 의미를 가지려면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가능한 법제도 정비뿐 아니라 조직화된 노동자의 힘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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