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방송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방송에서 ‘맛집’이라고 소개한 집은 다음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룬다. 방송에서 한 번 소개한 특효약이나 민간 처방, 의사나 한의사가 나와서 “어디어디에 좋다”라는 한마디 하면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된다.

모케이블TV의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다소 낯설었던 ‘크로아티아’가 소개하자 갑자기 크로아티아 여행 붐이 불었다. 여행사들이 없던 여행상품을 만들고 없던 항공편 특별기를 투입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귀가 얇다’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그 만큼 방송이 만들어낸 공신력이 높다고 이해하는 것이 쉽다.

▲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까지 MBC를 필두로 공중파 방송사 소속 방송인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언론의 자유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갖춘 집단으로 ‘방송인’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1992년 당시 MBC파업을 주도했던 혐의로 수의를 입었던 손석희 Jtbc 보도부문사장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짧은 시간 동안 방송이 얻은 높은 공신력은 방송 산업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의 많은 희생과 피땀으로 커졌다. 시작은 인쇄매체였다. 일제시대 민족언론들의 활약이야 말할 것도 없고 1975년 동아일보 광고투쟁부터 시작해서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태어난 한겨레신문의 창간까지. 펜 하나를 무기로 삼아 시대정신의 맨 앞에 언론노동자들이 있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까지 MBC를 필두로 공중파 방송사 소속 방송인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언론의 자유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갖춘 집단으로 ‘방송인’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1992년 당시 MBC파업을 주도했던 혐의로 수의를 입었던 손석희 Jtbc 보도부문사장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정권의 노골적인 방송 길들이기는 이제 박근혜 정부 들어 거의 성공한 듯하다. 어느덧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던 PD들을 좌천과 축출로 솎아냈다. 정부는 중간광고와 PPL(제품 간접광고)을 허용하는 등 방송의 상업화를 꾀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방송이 쌓아온 ‘공신력’을 한 순간에 무너트리려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것이 방송국의 프로그램인지, 기업의 광고방송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시절이 왔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tvN의 드라마 ‘미생’을 기억할 것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주연배우는 방송에 계속 나온다. 드라마 방송화면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맥주가 등장한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장면으로 광고를 만드는 PPL 형태의 광고들이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광고도 나오고 있다. 광고에서 주인공 둘이 앉아 하는 이야기 소재는 통신사 LTE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라 광고.

이제 방송 프로그램인지 광고인지 소비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야 하는 시대다. 방송이 갖고 있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잘 보고 기억해야 한다. 이런 걸 ‘역사가 후퇴한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범우 /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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