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12일 이후 경주 외동공단 시그오토멕 공장에서는 기계 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회사는 이날 오후 3시 무렵 일방적으로 폐업 공고를 내붙였다. 노동자들에게 이날 밤 9시까지 당장 짐을 싸서 공장 밖으로 나가라고 통보했다. 몇 달에 걸쳐 관리자들은 사무실 집기까지 공장 밖으로 뺐다. 120여 명의 노동자는 별다른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공장을 떠났다.

하지만 공장 불이 모두 꺼진 것은 아니다. 노조 경주지부 시그오토멕지회 조합원 아홉 명이 9개월째 공장을 지키고 있다. 멈춘 공장을 다시 돌리겠다는 의지로 공장 사수 철야 농성과 평택 승원공업 상경투쟁 등을 이어가고 있다.

14일에도 시그오토멕지회 조합원들은 평택 승원공업을 찾아왔다. 시그오토멕은 승원그룹 소속으로 승원공업은 시그오토멕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승원그룹과 승원공업 회장인 유홍준 회장에게 폐업 철회와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지회는 매주 화, 수요일 평택을 오가며 7개월째 매주 한 차례 회사와 면담을 진행한다.

▲ 1월15일 경주지부 시그오토멕지회 조합원들이 평택 승원그룹 정문 앞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그오토멕지회는 지난해 5월 공장 폐업 이후 폐업 철회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사수 농성과 평택 승원공업 앞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평택=강정주

지회는 회사 매각을 통한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회사도 매각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아직 지회 요구에 대한 뚜렷한 답은 없다. 지회는 유홍준 승원공업 회장이 직접 면담에 나와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투쟁 수위도 점차 높여나갈 계획이다.

“공장문 닫는다. 모두 나가라”

회사는 공장 폐업에 앞서 2013년 12월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며 희망퇴직을 일방 공고했다. 지회는 즉각 투쟁에 나섰고 회사는 계획을 철회했다.

지회는 지난해 1월11일 회사와 ‘어떠한 경우에도 회사는 지회와 합의없이 정리해고, 희망퇴직, 전출 등 일방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금 출자, 비상경영체제 기간 내 자금 지원 등의 방안도 약속했다. 관계사인 재영웰릭스와 승원공업 대표이사도 공동으로 합의서를 작성했다.

당시 회사는 일방적으로 희망퇴직을 공고한데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회는 유홍준 회장과 시그오토멕, 승원공업, 재영웰릭스 대표이사 등이 작성한 내용과 동일한 합의문을 별도로 체결하기도 했다. 이후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사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노사교섭은 회사의 면피용에 지나지 않았다. 회사는 공장 폐업, 전원 해고 카드를 들이밀었다.

최장춘 지회 사무장은 “노동자들은 경영정상화 위해 노력하고 지회와 논의하겠다는 회사를 믿었다. 회사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며 교섭에 임했는데 회사는 뒤로 노조파괴, 공장 폐업을 준비해왔다”고 지적했다.

당시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면서 연 60억 원 규모로 원가 절감을 요구했다. 원가 절감 방안의 대부분이 노동자 임금과 복지를 축소하고 고용을 위협하는 내용이었다.

김주언 지회장은 “회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지회도 임금 지급 보류, 전환 배치 등 방안을 제시했다. 신규수주도 한 상황에서 이 위기만 넘기면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 지회만큼 회사에 경영 방안을 제시한 곳도 드물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공장 담보로 거액 대출받아 부동산 투기

지회 간부들은 애초 승원그룹이 시그오토멕을 경영할 의지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승원공업은 2009년 재영웰릭스를 인수하고 이어 다음해 4월 시그오토멕을 인수했다. 세 곳을 순환출자 형태로 운영했다. 승원공업은 시그오토멕 인수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시그오토멕을 담보로 다시 거액을 대출받았다.

▲ 김주언 시그오토멕지회장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본 뒤 회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았다. ‘회사 뜻대로 둘 수 없다.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평택=강정주

김주언 지회장은 “회사는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라면서 90억 원을 대출 받아 골프장 건설 예정지 등 부동산에 투기 했다. 대출금에 대한 은행 이자만 1년에 15억 원”이라며 “무분별한 토지매입과 투기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졌는데도 밖으로는 강성노조가 경영에 개입해서 회사가 망했다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지적했다.

최장춘 사무장도 “유홍준 회장은 이전부터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노동자 해고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맞지 않다’고 얘기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 시그오토멕을 경영할 의지도 없었고 하루아침에 우리를 내쫓았다. 먹튀자본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냐”고 강조했다.

경영정상화를 약속하고 교섭을 진행하던 도중 회사는 결국 공장폐업을 통보했다. 폐업 통보 전 지회는 회사가 금형이원화를 진행해 온 것도 확인했다. 최장춘 사무장은 “우연히 경쟁사에서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과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회사에 문의했지만 모르는 일이라고만 했다”고 설명했다. 폐업을 한 뒤에야 회장은 1월 지회와 합의한 이후부터 자신이 지시해 진행해 온 일이라는 것을 실토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뒤통수를 쳤다고 분노했다.

이 모든 과정은 지회가 폐업 공고 이후 회사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S 프로젝트>라는 문서에 담겨있는 내용이다. 2012년 10월자로 작성한 이 문서는 노조파괴를 위한 시나리오였다.

지회에 따르면 문서에는 ‘평가제도 도입해 지회 간부에게 불리한 점수 → 노조 와해, 분열 분위기 조성 → 안될 경우 금형이원화 추진 → 공장 폐업 후 노조 정리한 뒤 공장 재가동’ 등의 시나리오를 적시했다.

프로젝트 S…노조파괴 시나리오

김주언 지회장은 “복수노조 설립으로 노조를 깰 수 없다는 현장 평가를 하며 구체적인 노조파괴 계획을 명시했다”며 “금형이원화와 공장폐업 모두 시나리오 수순 대로였다. 당시 폐업이 위장폐업이라고 볼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지회장은 “<S 프로젝트>를 본 뒤 회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았다. ‘회사 뜻대로 둘 수 없다.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처음 투쟁을 결심한 이유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최장춘 사무장은 “10년 가까이 일했다. 믿고 교섭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니 억울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주찬혁 지회 선전부장도 “단협도 위반하고 무조건 나가라는 말만 했다. 우리를 쓰다 버리는 쓰레기 취급했다. 그냥 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수의 조합원이 작년 5월12일 이후 회사를 떠났다. 아홉 명이 남았고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싸움을 포기할까 흔들린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생계 어려움은 기본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라는 불안감도 조합원들을 힘들게 한다.

김주언 지회장은 “긴 병에 효자 없듯 싸움이 길어질수록 무엇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 시그오토멕지회 싸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연대를 조직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아홉 명 조합원부터 고용승계라는 하나의 뜻 가지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회가 싸우는 과정에 노조도 투쟁사업장과 더 긴밀히 소통하고 투쟁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 1월15일 시그오토멕지회 조합원들이 평택 승원공업 앞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평택=강정주

지회의 든든한 버팀목은 경주지부다. 지부와 지부 소속 지회 간부들은 돌아가며 공장 철농을 같이 한다. 지부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전체 조합원이 매 달 1만원씩 지부 투쟁사업장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든든한 버팀목 경주지부의 연대

주찬혁 선전부장은 “경주지부는 물론이고 민주노총 경주지역 사업장 조합원들도 공장 농성장을 찾아온다”며 “지역 동지들이 같이 철농을 하니 우리가 외로운 투쟁을 하지 않고 같이 공장을 사수할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고 설명했다.

김주언 지회장은 “투쟁할 때 재정적 어려움이 무엇보다 크다. 경주지부는 투쟁사업장의 어려움을 지역에서 당연히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같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라며 “지역 동지들의 이런 연대가 있어서 투쟁도 할만하다”고 전했다.

시그오토멕 노동자들의 바람은 하나뿐이다. 다시 공장을 돌리겠다는 것. 주찬혁 선전부장은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같이 싸우고 있는 아홉 명이 다시 예전처럼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며 “시그오토멕지회가 승리하고 공장을 다시 돌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를 쓰레기 취급하고 하루아침에 폐업하는 사업주가 없어지지 않겠냐”는 바람을 얘기한다. 최장춘 사무장도 “잘못은 회사와 회장이 했다.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며 “올해는 아홉 명 모두 공장에서 일하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그오토멕지회는 다시 공장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동료들과 웃으며 일할 수 있는 승리의 그날을 위해 하루가 헛되지 않도록 투쟁하겠다는 결의로 오늘도 공장을 사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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