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떠나는 동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북 군산의 케이엠 노동자들은 지난 9월 이러한 바람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10월5일 전북지부 군산지역금속지회 케이엠분회는 조합원 총회를 거쳐 간부를 선출하고 본격 활동에 나섰다.

(주)케이엠은 풍력발전기용 대형 블레이드 등을 생산해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에 납품하는 회사다. 12월10일 만난 최영진 케이엠분회장과 최재희 분회 사무장은 2008년 군산공장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일했다. 두 노동자는 일곱 해 동안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봐야 했다.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이들도 있었다.

최재희 사무장은 “일곱 해 동안 대략 삼천 명의 노동자가 다른 공장으로 이직하는 등 공장을 떠났다”고 말했다. 열악한 작업환경, 수년째 반복하는 임금 체불 등으로 노동자들은 원치 않게 회사를 그만뒀다.

▲ 노조 전북지부 군산지역금속지회 케이엠분회 최영진 분회장과 최재희 사무장이 팔뚝질을 하며 웃고 있다. 분회는 12월12일 첫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고 체불임금 지급, 작업환경 개선, 노조활동 인정을 위한 본격 투쟁에 나섰다. 군산=강정주

회사는 여러 해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했다. 최영진 분회장은 “지난 세 해 동안 한 해에 두세 달씩 임금이 밀렸다. 올해도 벌써 넉 달 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회사는 올해 추석과 설에 지급해야 할 상여금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2011년과 2013년 조합원들의 연말정산 환급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넉 달째 임금체불

언제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 어느 달 임금이 안 나올지도 알 수 없는 불안한 생활이었다. 한 달이라도 임금이 밀리면 당장 생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다. 최영진 분회장은 “조합원들은 이미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받았다. 생계가 막막하다”며 “아기 기저귀, 분유 값, 애들 학원비가 없는 조합원 얘기를 들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회사는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대표이사와 그 부인은 1억 원이 넘는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최영진 분회장은 “대표이사 부인은 운전기사가 모시고 다닌다”며 “조합원들은 당장 살길이 막막해 주변 사람에게 돈을 빌리면서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해 울고 있다. 이대로 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분회를 설립하고 조합원들은 회사에 작업환경 개선도 요구했다. 케이엠 노동자들은 유리섬유와 접착제 등을 사용해 작업한다. 현장에 분진가루와 유리섬유가 많이 날린다. 접착제를 가열해 사용하는데 유해 연기가 심하게 난다. 여러 유독성 화학물질도 사용한다.

일곱 해 동안 작업환경 개선은 모르쇠

일곱 해 동안 회사에 작업환경 개선을 얘기해도 늘 ‘검토 중’이라는 답변뿐이다. 회사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집진기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최영진 분회장은 “현장에 햇빛이 비치면 유리섬유가 떠다니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라고 말한다. 최영진 분회장은 “마스크를 써도 별 소용이 없다. 병에 걸려 공장을 떠날까 두렵다”며 “회사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니 상관없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최재희 사무장은 “처음 이 공장에 왔을 때 회사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라고 했다.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나고, 몇 번을 참고 기다려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혼자 답답해하지 말고 동료들과 같이 공장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금속노조를 찾아왔다.

분회는 지회, 지부와 같이 11월12일부터 회사와 교섭을 시작했다. 교섭은 여섯 번 만에 결렬했다. 회사는 노조가 제시한 단체협약 요구안 대부분에 ‘수용불가’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최영진 분회장은 “회사는 노조활동, 체불임금 지급, 고용안정, 작업환경 개선 등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며 “회사는 강제잔업과 이에 따른 수당 지급 등 조합원들을 더 옥죄는 수정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 최영진 분회장은 “이탈자 없이 조합원들이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며 “빠르게 단체협약을 쟁취해서 조합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체불임금 해결해서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웃는다. 군산=강정주

회사는 형식적으로 교섭에 나오면서 현장 탄압을 진행했다. 최재희 사무장은 “지금 한창 일이 많은 품목이 있다. 회사는 이 부서에서 일하던 조합원을 포함해 모든 조합원을 한 부서로 전환 배치했다”고 비판했다.

조합원이 일하던 곳에 비정규직과 사무직을 투입했다. 회사는 설립 뒤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노사협의회를 ‘회사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새롭게 만든다고 했다. 노사협의회 위원 선출 과정에 회사가 개입했다는 것이 분회의 설명이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같이 한다

분회 간부들은 노조 가입 이후에 회사 취업규칙을 알았다는 웃지 못 할 얘기도 한다. 최재희 사무장은 “입사하고 취업규칙을 본 적이 없다. 최근 회사가 노동부에 제출한 내용을 보니 취업규칙을 수정할 때 노동자들 동의가 필요한데 우리 서명을 다 날조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취업규칙을 근거로 분회 간부, 조합원들의 노조 조끼 착용에 대해 경고장을 보냈다. 분회장과 사무장은 최근 ‘폭언, 지시불이행, 조회장 무단이탈’ 등을 근거로 한 달간 대기발령과 1개월 정직 징계를 당했다.

회사의 탄압은 케이엠분회 조합원들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공장 앞에서 처음으로 중식집회를 진행했다. 최재희 사무장은 “뒤에 서서 펄럭이는 분회 깃발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 나라 국기나 다른 깃발을 봐도 그냥 천 조각 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속한 분회, 지부의 깃발을 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분회 조합원들은 매일 점심을 먹고 한 곳에 모인다. 그날의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분회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가입 대상으로 했다. 현재 비정규직 네 명, 이주노동자 일곱 명이 조합원이다. 분회는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이 조합원들이 따로 모이는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 최재희 사무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고,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어렵다. 이제 걸음마 단계니 노조가 더 관심 가져달라”고 당부한다. 군산=강정주

분회 설립 세 달. 공장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회사는 정해진 날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공문이나 공고문을 게시해 사실을 알린다. 당연한 일이지만 분회 설립 전 상상할 수 없었다. 최영진 분회장은 “회사가 체불임금 지급 장기계획을 냈다. 당장 체불임금을 해결할 수 있는 안은 아니지만 노조가 없었다면 회사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좋은 노조를 왜 안 합니까”

조합원들도 달라졌다. 최재희 사무장은 “조합원들이 언론에 나는 사회문제에 분회, 회사를 대입해 생각한다고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며 스스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말한다”고 변화를 말한다. 분회 조합원들은 얼마 전 삼성전자서비스 진주센터 폐업 철회 집회에 참여하고 진도 팽목항에 방문했다. “노조 하니까 정말 좋다.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는지 후회한다. 진작 할 걸.” 최재희 사무장은 노조 가입, 분회 설립이 조합원들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분회는 12월12일 첫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했다. 본격 투쟁에 나선다. 최영진 분회장은 “이탈자 없이 조합원들이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며 “빠르게 단체협약을 쟁취해서 조합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체불임금 해결해서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웃는다.

최재희 사무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고,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어렵다. 이제 걸음마 단계니 노조가 더 관심 가져달라”고 당부한다.

케이엠분회 조합원들은 노조활동 인정, 체불임금 지급,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가 원치 않게 떠나지 않는 공장, 조합원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것. 케이엠 노동자들이 금속 푸른 깃발을 손에 움켜 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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