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0일 김려화씨는 충남 서산 동희오토 정문 앞에 피켓을 들고 섰다. 이제 막 첫 돌이 지난 아들을 등에 업은 채였다. 김려화씨는 동희오토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황재민씨의 부인이다.

김려화씨가 외롭게 시작한 싸움에 이제는 동희오토 노동자들과 노조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11월25일, 어김없이 18개월 된 아들을 안은 김려화씨와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동희오토 정문 앞에서 ‘황재민씨 산재사고 동희오토가 책임져라’라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출근 투쟁을 벌였다.

▲ 11월25일 노조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충남 서산 동희오토 정문 앞에서 황재민씨 산재 사건 해결을 요구하며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서산=강정주

황재민씨는 지난해 7월 공장 안 식당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몸 왼쪽이 마비돼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투병하고 있다. 쓰러질 당시 그는 서른 일곱 살의 젊은 노동자였다. 부인은 산재요양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8월 요양불승인 처분을 했다. 올해 7월 재심사청구를 했지만 이마저도 불승인 결정 했다. 1년 여 시간 동안 회사와 근로복지공단 어느 누구도 황재민씨의 산재 사고에 책임지지 않았다. 결국 부인이 어린 아이를 업고 거리로 나섰다.

“너무 억울하다.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는데 회사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한다. 산재 신청을 하기 위해 회사에 있는 서류를 달라고 해도 남편이 소속된 대신기업과 동희오토는 서로 공 넘기듯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 김려화씨는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눈물을 흘렸다. 회사는 20일 넘게 김려화씨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무시했다. 회사를 찾아가 한번만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약속했던 서류로 주지 않았고 근로복지공단에 거짓 증언만 했다.

공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37세 노동자

김려화씨는 “남편이 3년 동안 동희오토에서 일했다. 작업속도가 빨라진다고 했고 주야 맞교대를 하다보니 잠을 못자서 늘 힘들어했다”며 “여름에 특히 힘들어했다. 늘 옷에 소금기가 가득한 채로 퇴근했다”고 설명했다. 황재민씨가 쓰러진 때는 7월이었다. 현장 온도가 극심하게 높아졌을 것이 분명한데도 회사는 공장이 덥지 않았고 황재민씨 사고에 공장 환경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당사자와 회사의 증언이 엇갈리는데도 회사 입장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요양불승인 처분을 했다.

▲ 11월25일 황재민씨의 부인과 부인의 여동생이 동희오토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황재민씨의 부인은 회사가 사과하고 산재 불승인 취소 행정소송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산=강정주

김려화씨는 “지나가던 개가 차에 치여도 돌아보는 법이다. 3년을 일했던 사람이 쓰러졌는데 회사는 병문안 한 번 오지 않는다. 힘없는 사람이라고 무시한다”며 “회사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김려화씨는 황재민씨에 대한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충남지부 동희오토지회는 지난 7월부터 김려화씨와 함께 출근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지회는 회사에 사과와 생계 문제 해결, 행정소송 적극 협조,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본관 앞 집회와 연좌시위 등도 벌이고 있다. 이백윤 동희오토지회장은 황재민씨 만이 아니라 동희오토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라고 이번 투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기아차 모닝과 레이를 만든다. 1천2백 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 모두 비정규직이다. ‘100% 비정규직 공장, 절망의 공장’으로도 유명한 곳. 이백윤 지회장은 여기에 “동희오토는 노동자들의 무덤”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다.

“동희오토는 노동자들의 무덤”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12시간씩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한다. 이백윤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수면장애는 기본으로 겪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강도도 높다. 이 지회장은 “동희오토 편성률이 90%에 육박한다. 현대차 울산공장 편성률이 55% 정도다. 동희오토 편성률은 완성차 공장 중 가장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 11월25일 선전전에서 충남지부 동희오토지회 조합원이 현장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문제를 알리는 발언을 하고 있다. 서산=강정주

차 한 대를 생산하는데 64초의 시간이 걸린다. 노동자들은 12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컨베이어벨트를 오가는 차량을 조립한다. 장시간 서서 작업을 하지만 의자는 없다. 아니 의자가 있어도 앉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 지회장의 설명이다.

회사는 작업불량 없애기 운동도 한다. 불량이 나면 해당 노동자에게 엄청난 문책이 돌아온다. 이 지회장은 “불량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12시간을 일하는 것도 힘든데 내내 긴장과 억압 속에서 일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지회장은 “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평균 연령이 31세다. 젊은 노동자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고 골병든다. 현장에 들어가면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 일상적인 작업 스트레스 등이 황재민씨가 쓰러진 원인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하지만 회사는 “동희오토에 산재는 없다”고 말한다. 공장 안 게시판에는 ‘무재해 기록 1083일’이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다. 이 지회장은 “황재민씨 사건 전에도 내가 아는 사람만 두 명이 일하다 쓰러졌다. 작업 중 골절사고를 당하거나 물류차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며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이고 드러난 사고도 산재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실상을 전했다.

공상으로라도 처리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회사는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로 치부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한다. 비정규직 사업장,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 지회장은 “회사가 나서서 산재 처리를 못하게 하지 않아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며 “비정규직은 다치면 우선 겁부터 난다.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다보니 사고를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못할까봐 혼자 치료를 받고 아픈 티도 내지 못한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아파도 말 못하는 비정규직 공장

지회는 투쟁을 동희오토 공장 안에서만 진행하지 않고 서산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11월28일 금요일 서산시청 앞에서 진행하는 촛불집회가 첫 자리다. 이 지회장은 “서산에 동희오토와 같은 비정규직 공장이 많다. 이 곳 노동자들 대부분이 우리와 같은 처지로 살고 있다”며 “일하다 다치고 병드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것을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 11월25일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동희오토 황재민씨 산재 사건 해결을 위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서산=강정주

황재민씨는 지난해 쓰러진 이후 아들을 한 번도 안아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밥도 혼자 먹지 못한다. 김려화씨는 “나중에 아이가 크면 ‘왜 아빠는 다른 친구 아빠처럼 자신과 놀아주지 않냐’고 원망할까봐 겁이 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돈을 적게 벌더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 식구 같이 놀러다니고 행복하게 사는게 꿈이예요. 이제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지만요.” 김려화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로 피켓을 꼭 쥐었다. 이들의 소박한 꿈을 빼앗은 절망과 죽음의 공장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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