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사업장 D-49일’. 11월13일 찾은 인천 두산인프라코어 정문 앞 안내문이다. 노조 인천지부 두산인프라코어지회 간부들은 이러한 캠페인도 복수노조가 생긴 뒤 바뀐 모습 중 하나라고 말한다. 회사가 원하는 바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공장. 민주노조가 소수인 사업장 현주소다.

2011년 10월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에 기업노조가 생겼다. 앞서 진행한 7기 지회 임원선거에는 세 개 조가 출마했다. 결선투표에 이어 다득표한 후보조에 대한 찬반투표까지 세 차례 투표를 진행했지만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선거가 무산됐다. 다시 선거를 진행해야 할 상황에 당시 다득표 후보자가 주도해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기업노조가 생겼지만 지회는 다수의 조합원이 이탈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지회와 회사 어느 쪽으로도 확고히 기울지 않은 중간층이 많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절반 가까이 기업노조로 넘어갔다. 한 번 분위기가 기울자 1천 여 명 조합원 중 20%가 안되는 인원만 지회에 남았다.

▲ 지회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지만 강한 지회가 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회는 우선 당장의 조직 확대에 욕심내기보다 두산인프라코어지회 내부 조직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을 생각이다. 지회 사무실 칸막이에 '단결 투쟁' 머리띠가 걸려 있다. 김형석

돈, 인력 모든 것을 투입한 노무전략

손원영 두산인프라코어지회장은 회사의 치밀한 노무전략을 이유로 꼽았다. 2005년 두산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는 이때부터 돈과 인력 등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물량공세를 시작했다. 목표는 ‘두산은 좋은 회사’라는 분위기를 만들어 친회사 세력을 만드는 것. 김윤철 부지회장은 “두산이 인수한 후부터 지회 조직력이 점차 약해졌다. 파업 찬반투표를 하면 찬성률은 높지만 실제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점점 줄었다”고 말한다.

회사는 관리자들이 조합원들과 두산그룹 술을 마시고 제출하는 수많은 영수증을 두 말 없이 처리해줬다. 초중고 자녀가 있는 전직원에게는 두산동아 전과와 참고서를 선물했다. 조합원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면 집으로 케이크도 보낸다.

▲ 두산인프라코어지회 손원영 지회장은 “지회 내부에 젊은 조합원 중심으로 학습팀을 꾸렸다. 이들이 지금 지회 간부를 맡고 있다”며 “젊은 조합원들이 지회에 많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형석

손원영 지회장은 “회사가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직장, 반장 체계를 만들었다. 반장이 현장에서 갖는 힘이 있다. 이 직책에서 금속노조 조합원을 배제하는 것은 금속노조 탄압 방법이기도 하다. 현재 반장을 맡은 금속노조 조합원은 한 명도 없다. 손 지회장은 “기업노조 설립 전 반장이었던 조합원이 두 명 있다. 이들도 기업노조가 생기고 반장 직책을 내려놔야 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회사는 ‘테마리더’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기존에 진행하던 부서 분임토론 대표를 일컫는 말이다. 김윤철 부지회장은 “회사는 신입사원 교육을 많이 한다. 입사 당시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차별로 집단교육을 한다”며 “테마리더도 젊은 사람을 시킨다. 이들에게 회사의 논리를 꾸준히 교육하고 혜택을 주며 관리 체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교육받은 회사논리를 주장할 젊은 노동자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조합원 자녀 채용에도 회사 전략이 숨어 있다. 손 지회장은 “신규채용할 때부터 기존 조합원 자녀를 많이 뽑는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회사 반대편에 서지 못하도록 설득하게 만든다. 회사 입장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회사는 한편 금속노조 성향이 강한 조합원들을 한 부서로 모는 작업을 진행했다. 김윤철 부지회장은 “회사는 다기능화를 추진한다며 부서 순환배치를 실시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한 곳으로 몰아 탄압할 수 있는 사전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노무관리 인원도 대폭 늘렸다. ‘노사상생팀’이란 부서를 만들고 단일노조일 때보다 세 배 넘는 인원을 배치했다. 직반장에게는 현장 탄압이 실적이다. 담당 부서에 금속노조 조합원이 몇 명인지, 몇 명을 탈퇴시켰는지가 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니 앞다퉈 현장 통제와 금속노조 탈퇴 작업에 나선다.

“회사가 하고 싶은 것 다 한다”

회사가 7년간 공들인 노조파괴 공세는 제대로 먹혔다. 그리고 공장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김윤철 부지회장은 “회사는 기업노조 묵인과 협조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한다”며 “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외주화와 기간제 채용도 마음껏 한다. 관리자들은 조합원을 권력으로 짓누른다”고 지적했다.

단체협약을 개악하거나 단체협약에 있는 내용을 위반하기도 한다. 단협에 ‘사용외출’이라고 해서 최대 세 시간 동안 외출 후 현장에 복귀하는 제도가 있다. 회사는 최근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조퇴를 강요하고 있다. 명백한 단협 위반이지만 기업노조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금연사업장 시행 등 현장 통제 강화도 탄압 일환이다.

▲ 정수환 사무장은 “지회가 일상적으로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고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했다”고 반성했다. 회사 노무전략이 치밀하고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만큼 지회 대응력도 더 완강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형석

손원영 지회장은 기업노조가 교섭권을 갖고 있어 지회가 대응할 방안이 많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손 지회장은 “회사는 지회를 노사협의회에서도 배제한다. 지회가 문제를 제기해도 회사는 ‘대표노조와 합의했다’고 하니 면죄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회는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과정에서 복수노조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고 말한다. 찬반투표에 인천과 안산공장 금속노조 조합원 표를 포함하면 결과는 부결이다. 하지만 기업노조는 금속노조 조합원 표를 제외한 채 ‘가결’로 발표했다.

조합원들은 위축됐다. 지회로 뭉쳐 회사에 맞서는 것이 오히려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측으로 넘어가는 조합원도 생겼다. 소속 노조에 따라 현장 노동자들은 갈라졌다. 정수환 사무장은 “하나의 노조일 때는 친근했다. 이제는 적이 됐다. 경조사가 있어도 가지 않는다”며 “살려면 내 자리라도 잘 지키자는 식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현장 변화를 말한다.

자본보다 한 발 더 움직일 터

이전 두산인프라코어지회는 이른바 '잘나가는' 지회였다. 손원영 지회장은 “대우중공업 시절부터 금속연맹과 지역에 간부를 몇 명씩 파견 했다. 그것이 사업장 힘이고 조직력이었다”고 설명했다. 중앙과 지역 각종 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손 지회장은 “지금은 ‘아 옛날이여, 좋은 시절이었지’라고 떠올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회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지만 강한 지회가 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복수노조 설립과 소수노조가 되는 과정, 소수노조로 노조 활동 기반을 뺏긴 채 지낸 3년은 지회 간부들에게 이전 활동을 뼈저리게 되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 김윤철 부지회장은 “지회 조직도를 만들 계획이다. 간부들이 전체 조합원을 나눠 맡아 꾸준히 만나고 소통하겠다"며 "한 번 하고 말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진행하면서 내부를 탄탄히 만들어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김형석

정수환 사무장은 “지회가 일상적으로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고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했다”고 반성했다. 회사 노무전략이 치밀하고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만큼 지회 대응력도 더 완강했어야 한다는 것. 손원영 지회장은 "창원과 안산 공장 변화에 면밀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실패 요인"이라며 “하나의 자본이기 때문에 다른 공장 노사관계 변화가 인천공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지회는 우선 당장의 조직 확대에 욕심내기보다 두산인프라코어지회 내부 조직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을 생각이다. 지회 간부들은 "회사가 더 많은 물량과 인력을 투여한다면 간부들도 더 많이 현장을 뛰고 만나야만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손 지회장은 현장순회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회장으로서 당연한 노조 활동이자 권리지만 관리자들이 막아서면서 마찰이 생겼다. 지회장이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자 기업노조 조합원까지 모여들어 웅성거렸고 관리자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지회는 꾸준히 현장순회를  강행할 예정이다.

▲ 회사는 젊은 조합원 사내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노조활동에 열성인 젊은 조합원은 금속 지회에 더 많다. '젊은 조합원' 중의 하나인 손환식 편집부장은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면서도 퇴근길에 지회사무실에 들러 소식지를 만든다. 손 부장이 활동 얘기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 김형석

조직쟁의 담당자들도 자발적으로 회의를 열어 조직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윤철 부지회장은 “지회 조직도를 만들 계획이다. 간부들이 전체 조합원을 나눠 맡아 꾸준히 만나고 소통하겠다"며 "한 번 하고 말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진행하면서 내부를 탄탄히 만들어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지회는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 회사는 젊은 조합원 사내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노조활동에 열성인 젊은 조합원은 금속 지회에 더 많다. 손원영 지회장은 “소수노조 이후 지회 내부에 젊은 조합원 중심으로 학습팀을 꾸렸다. 이들이 간부직을 맡으면서 지회 허리역할을 하고 있다”며 “젊은 조합원들이 지회에 많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손 지회장은 “숙제가 많다. 우리 한계도 컸다. 하지만 소수노조 경험이 의미 없지 않다”며 “계기를 만들겠다. 소수노조지만 자신감을 갖고 깃발을 지키는 일 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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