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대공장 접경지역, 선후배로 엮인 오랜 지역사회, 금속노조 중심 전투적 노동조합 기풍 등 여러모로 충남과 비슷한 조건이다. 왕성한 조직확장 시기 조건을 따질 겨를이 없겠지만 요즘과 같이 파쇼에 가까운 탄압 시기 꼼꼼히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다. 같은 조건은 같은 결과를 낳을까. 두 지역 금속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독일까, 약일까.

국내 최대 완성차 조립공장인 현대차가 울산과 아산에 들어서있다. 중소자본은 울산에 인접한 경주에 이어 충남에 완성차 부품 제조공장을 세웠다. 완성차 공장과 맞붙은 지역인 만큼 이른바 ‘직서열 업체’라는 부품사 공장이 다수 생겼다. 이들 공장은 장소만 따로 떨어져 있을 뿐 완성차 생산라인과 완전히 맞물려 부품을 생산한다.

이 같은 생산방식 공장 노조 조직은 완성차 노조 조직과 거의 같은 교섭력이 있다. 조합원이 소수일지라도 일단 전면 파업에 들어가면 부품을 공급받지 못한 완성차 라인을 끊을 수 있는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다.

강한 교섭력은 강한 조직력을 동반한다. 더구나 조직 구성원이 선후배로 엮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이들이 지역연대와 정당한 투쟁에 주저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에 어느 하나 유리한 제도가 없는 한국이지만 이 같은 조건을 바탕으로 노조 지역조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금속노조에서 지역 총파업이 가능한 대표적인 지부로 경주지부와 충남지부를 꼽는 이유다.

“무조건 승리해야한다"

경주지부(지부장 직무대행 정진홍)는 충남지부와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 경주지부는 위기를 공세적인 신규조직 확대로 극복했다. 처절히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조직 사업으로 몸집을 다시 불렸다. 경주지부 정진홍 지부장 직무대행은 “복수노조 이전 조직화 방식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이정원

경주지부는 이명박 정부 때 2010년 복수노조 시행과 동시에 홍역을 앓았다. 경주지부 주력 사업장인 발레오만도지회를 시작으로 노조파괴와 복수노조 공격을 당한 것. 복수노조 시행 직전까지만 해도 23개 지회 3천3백여 명 조합원을 거느린 탄탄한 조직이었던 경주지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경주지부는 이러한 위기를 공세적인 신규조직 확대로 극복했다. 처절히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조직 사업으로 몸집을 다시 불렸다. 지부는 잃은 만큼 다시 조직했다. 경주지부로는 미조직 사업이 일상사업이고 일상사업이 조직확대 사업인 셈이다.

경주 금속노동자들은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이들은 가진 조건을 어떻게 활용할까. 정진홍 경주지부 지부장 직무대행(아래 정 대행)은 “복수노조 이전 조직화 방식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정 대행은 “복수노조 시행 이전만 해도 사업장 인원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지회를 설립했다”며 “사업장에서 다수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지부 힘으로 지회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자본이 노동자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복수노조 제도를 오히려 노조를 공격하는데 악용하자 양상이 달라졌다고 한다. 정 대행은 “무조건 승리해야한다. 지회설립에 실패하면 그 일대에서 적어도 3년 동안은 민주노조가 자리 잡기 힘들다고 봐야한다”고 달라진 양상을 표현한다.

“노조가 장난이가? 목숨 걸어야 된데이”

▲ ‘무조건’ 승리하기 위해서 간부들은 더욱 집요해졌고 지회설립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만든 지회를 안착시키기 위한 지역차원 연대투쟁은 필수가 됐다. 정 대행은 “기존 노조가 있는지, 노조 상급단체가 있는지, 다른 지역에 공장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정원

‘무조건’ 승리하기 위해서 간부들은 더욱 집요해졌고 지회설립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만든 지회를 안착시키기 위한 지역차원 연대투쟁은 필수가 됐다. 복수노조 반격은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들어오기 때문이다.

정 대행이 꼽는 미조직 사업 성공요인 첫 번째는 주체 의지와 역량이다. 경주지부는 조직상담이 들어오면 초동 주체를 대상으로 장기간 교육과 훈련을 실시한다. 민주노조가 얼마나 필요한 조직인 지, 노조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 지 철저히 확인하고 교육한다. 때론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정 대행이 하는 농담아닌 농담이 있다. “노조가 장난이가? 목숨 걸어야 된데이.” 지회 설립에 실패하면 얼마나 혹독한 댓가를 치르는지 경고해준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주체가 노조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본격적인 조직단계로 넘어간다.

두 번째 요인은 조직활동가인 노조 간부의 관장력이다. 초동 주체가 조직사업을 통해 현장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노조 간부 지원이 절대적이다. 경주지부 간부들이 집요하게 현장 분석과 조사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 대행은 “기존 노조가 있는지, 노조 상급단체가 있는지, 다른 지역에 공장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에 경주지역 공장에 우선 지회를 설립해도 큰 탈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른 지역에 있는 동일자본 사업장도 동시에 조직하지 않으면 반격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이 긴장이고 전쟁”

▲ 경주지부 상황은 “일상이 전쟁”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존재는 부품사에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처럼 보이지만 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대행은 “시그오토멕 복수노조 공격은 현대차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원

세 번째 요인이 가장 결정적인 지부와 지역 역량이다. 장기간의 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친 초동주체가 본격적인 조직사업을 벌여 현장에서 다수를 확보했다고 판단하면 지회를 설립한다. 지회 설립은 보통 일주일 만에 승부가 판가름 난다. 지역 역량을 집중하는 시기가 이때다. 경주지부는 필요할 경우 확대간부 파업 지침을 내려 지역간부를 동원한다. 2백 명이 넘는 간부들이 현장을 장악해 불안해하는 신규 조합원을 응원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현재 경주지부 3천2백여 명 조합원 중 78%가 넘는 2천5백여 명이 2001년 이후에 조직한 조합원이다. 정진홍 대행은 지부가 세 박자를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워낙 신규조직 사업이 왕성한 지부인 만큼 지부 간부와 조합원이 미조직 사업에 우호적이다. 지부 조합원들에게 별도로 말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아도 간부들이 일단 지회설립 상황이 벌어지면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는다.

끝으로 신생조직이 많다보니 신규지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정 대행은 “아무래도 조합 경험이 20~30년 되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때로 통제가 힘들 정도이기도 하지만 신생조직 간부들은 누구보다 연대 투쟁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동지들”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를 놓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진홍 대행이 표현하는 지부 상황은 “일상이 전쟁”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존재는 부품사에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처럼 보이지만 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대행은 “현대차는 라인을 끊을 수 있는 경주지부를 손보고 싶었을 것”이라며 “시그오토멕 공장폐업 공격은 현대차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주지부 20개 지회 중 10개 지회에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지부간부에게 일상이 긴장이고 전쟁인 이유다.

“가장 파괴력 있는 선전은 좋은 단체협약이다”

▲ 경주지부는 대공장에 욕심내지 않는다. 정 대행은 “큰 공장을 조직하면 주위에 있는 조그만 공장 노동자들이 위축하고 만다”며 “30명 있는 공장을 조직해 좋은 단체협약을 맺으면 3백 명짜리 공장 노동자들이 자극받아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원

그럼에도 정 대행은 미조직 사업이 유일한 활로라고 말한다. 정 대행은 “아직 조직할 사업장이 많다. 우린 이들을 ‘산토끼’라 부른다”고 말한다. 집토끼인 조직 노동자를 지키는 방법을 산토끼에서 찾은 셈이다.

경주지부는 산토끼를 늘리는 방법을 선전전이나 공단사업에서 찾지 않았다. 지부가 선전전을 하면 자본도 뛰기 때문이다. 정 직무대행은 “가장 파괴력 있는 선전은 좋은 단체협약”이라고 말한다. 제조공장이 띄엄띄엄 산재해 있지 않고 몰려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경주지부는 대공장에 욕심내지 않는다. 정 대행은 “큰 공장을 조직하면 주위에 있는 조그만 공장 노동자들이 위축하고 만다”며 “30명 있는 공장을 조직해 좋은 단체협약을 맺으면 3백 명짜리 공장 노동자들이 자극받아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행이 생각하는 미조직 사업 주체는 지역이다. 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무직에서 사내하청, 1사 1조직, 이주노동자까지 금속노조가 조직할 수 있는 대부분을 조직해 본 정진홍 직무대행이 노조에 바라는 유일한 사업은 ‘활동가 키우기’다.

정 대행은 “미조직 사업은 노조에서 일률적인 지침을 내릴 수 없다”라며 “간부 경험과 실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노조에서 양성한 활동가가 지역과 현장 사이 경험을 공유해 지역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정진홍 대행이 화두 한 가지를 털어놨다. “단체협약은 독배다. 놓치면 노조가 죽고 쟁취하면 기득권이 된다”며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른바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고민이다. 복수노조 공격을 맞아 일상이 전쟁이라는 경주지부가 끊임없이 완강한 지역 연대 투쟁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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