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6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 입사해 8년째 몸담고 있습니다. 같은 센터에서 일했던 최종범 열사와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최종범 열사는 노동조합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저보다 먼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열의와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금속노조에 가입한 후 교육을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최종범 열사는 이것 것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는 ‘종범이 형은 쓸데없이 궁금한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 26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최종범열사1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최종범 열사정신계승 사업회 발족식을 갖고 열사의 뜻을 이어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마석=이정원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몸소 느끼고 생각했던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당시 열사가 했던 질문이 계속 떠오릅니다. 노동조합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노동조합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말입니다.

끝나지 않는 근무 시간, 노동강도는 더 세지지만 계속되는 임금 하락,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강제 휴일근무, 달성하기 힘든 각종 실적 목표, 만족도 조사점수가 낮을 때마다 작성해야하는 자아비판 대책서 등. 우리는 왜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실적의 노예, 회사의 노예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최종범 열사가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못했던, 누구보다 열심히 피켓을 들고 노동조합의 요구를 외쳤던 이유일 것입니다.

노조에 가입한 후 회사의 압박이 심했습니다. 회사는 갑자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했습니다. 기존에는 1년에 두 차례, 전반기와 후반기 업무데이터를 토대로 감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노조 가입 당시에 조합원들만 찍어서 4년 치 업무데이터를 근거로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4년 전 수리했던 내용을 기억해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센터 사장은 “니가 했던 일인데 왜 모르냐. 기억을 더듬어서 답변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조합원이 증명하지 못하면 징계를 당한다고 협박했습니다.

징계는 곧 퇴사를 의미합니다. 최종범 열사도 당시 표적감사 대상자였습니다. 감사 대상인 최종범 열사와 조합원들은 심적 부담이 컸습니다. 억울함은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대로 해고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 26일 최종범 열사 1주기에 맞춰 새로 단장한 묘석에 최종범 열사가 웃고 있다. 마석=이정원

최종범 열사는 어머니가 투병 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원비 등으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열사는 항상 밤늦게 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열사에게 회사는 밤늦게 전화를 해 “왜 고객이 불만 전화를 했냐. 이런 식으로 업무 하면 안 된다”고 질책 했습니다.

회사는 실적압박과 노조 와해 공작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열사는 “전태일처럼 그렇겐 못해도 결심했습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10월31일 최종범 열사의 첫 번째 기일입니다.

딱 이런 날씨였습니다. 최종범 열사는 자동차 히터를 켜지 않으면 몸이 오싹해 지는 날씨에 시동도 끈 채 차가운 차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어쩌면 많이 무서웠을지 모릅니다.

그 무서움보다도 점점 힘들게 사는 노동자들의 가난한 삶,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의 탄압에 대한 무서움과 분노가 더 컸을 것입니다.

무엇이 자기 심장보다도 소중했을 한 살 딸과 부인, 가족과 이별보다 더 중요했을지. 아직도 열사의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습니다. 최종범 열사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뿐인 목숨을 버려서라도 증명하고 했던 것, 어쩌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것을 버려야만 알릴 수 있는 것, 하나뿐인 삶을 포기했을 때에야 세상이 조금 관심을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최종범열사묘 옆에 놓인 추모함에 고인이 생전에 입던 조끼, 머리띠와 함께 별이 사진이 놓여있다. 마석=이정원

열사는 죽음으로 세상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알렸습니다. 열사를 보내며 이제 우리가 그 유지를 이어받아 한 노동자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억울함이 무엇인지 세상에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뒤로 1년,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 줄 몰랐습니다. 돌이켜보면 지킬 것 투성이인 우리들이 여전히 현실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저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아직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종범 열사가 외쳤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또 한 명의 동료이자 동지를 떠나보내야 했고 여전히 우리의 삶은 힘듭니다.

하지만 최종범 열사의 뜻을 기억하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깃발을 당당히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은 갈 길 멀고 험난하겠지만 열사의 희생과 정신을 이어받아 당당하고 인간다운 노동자의 삶을 만들겠습니다. 최종범 열사의 큰 희생이 있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 알았습니다. 열사의 외침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예전처럼 피하지 않겠습니다. 동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동료들이 억울하게 일터를 떠나게 하지 않겠습니다. 부당한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노예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나약하고 비굴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최종범 열사 보낸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열사 앞에 당당히 외치고 싸우겠다고 다시 약속하겠습니다.

종범이 형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내가 이 나라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하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권리를 찾고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해 노동조합을 한다.”

이태한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 교육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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