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꾼들이 최근 관심을 집중하는 곳이 있다.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맞은편 땅. 부동산 업자들은 이곳 논밭이 4년에서 5년 뒤면 서울 압구정이나 경기도 분당처럼 금싸라기 땅으로 변해 땅값이 폭등할 것이란 광고기사를 내보내며 투기를 유혹하고 있다.

당진 일대에 현대제철, 동부제철, 동국철강 등 대형 철강업체 여섯 곳이 입주해 있다. 당진이 2012년 시로 승격하면서 철강산업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한 이래 공장이 매년 1백여 개씩 몰리고 있다. 부동산업자들은 “대규모 배후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연구와 교육기능까지 갖춘 국내 최대 ‘철강 클러스트’가 된다”는 내용을 반복해 광고하고 있다.

‘폭풍 성장’ 가운데 놓인 충남

투기꾼들이 이곳에 군침을 흘리는 근거는 또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10월 천안과 맞닿은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천안-아산 지역은 기존 삼성전자 천안공장과 함께 전자전기 산업단지가 된다.

충남은 수익률 좋은 현대차 아산공장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고로를 완공한 당진 현대제철을 필두로 철강 제조업이 일어나고 있으며 평택-천안-아산으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연관된 전기‧전자 산업이 성장한다. 20여 년 전 한적한 농어촌이었던 천안, 아산, 당진 일대가 부동산 업자 말처럼 ‘폭풍 성장’ 가운데에 들고 있다.

홍석범 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원이 “과거 한국 제조산업의 메카가 울산이었다면 앞으로 충남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대규모 산업성장과 공단형성은 노동조합에게 기회다. 노조 충남지부(지부장 정원영)는 이미 훌륭한 비단을 가진 셈. 옷을 짓는 일만 남았다.

충남지부는 경주지부와 더불어 가장 왕성히 조직확장을 벌이는 지역지부다. 노조파괴 공작이 벌어진 경주지부는 지역과 산업 특성을 활용해 잃은 조합원만큼 신규조직 성과를 거뒀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인접한 경주에서 신규조직이 뜨면 현대차 아산공장이 있는 충남 지역 동일자본 사업장에서 자연스럽게 노조가입이 이뤄졌다.

▲ 신규조직 설립 현황(2002년부터 2013년)을 분석한 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충남지부는 2008년 이전 이미 상당수(70.6%)를 조직했고 이들 사업장 조합원을 큰 유실 없이 지켜냈다. 아산=이정원

지은 옷을 튼튼하게

충남은 경주와 양상이 조금 다르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신규조직 설립 현황을 분석한 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경주지부 현재 소속 지회 중 2008년 이후 조직한 지회가 과반이(63.2%) 넘는다. 충남지부는 2008년 이전 이미 상당수(70.6%)를 조직했고 이들 사업장 조합원을 큰 유실 없이 지켜냈다. 여기에 최근 현대제철 비정규직과 한국내화조업정비 노동자를 조직하면서 더욱 수를 늘렸다. 

홍석범 연구원은 “지역지부 중 2007년 이전 설립 지회 생존비율은 충남지부가 독보적”이라고 설명한다. 충남지부는 새로 옷을 짓고 지은 옷을 튼튼하게 관리하는 빼어난 기술을 가진 셈이다.

여기에 몇 가지 지역 특성이 작용했다. 충남지부는 ‘충남은 용역깡패의 무덤’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전투 기풍이 강하다. 이에 더해 지부를 중심으로 산업동향을 내다보고 대자본 교섭과 투쟁을 수행했다. 전국을 바라보는 시야로 지부에서 발생할 현안에 우선순위를 따져 사전 대응했다.

‘치고 들어갈 때 들어가고 빠져야 할 때 빠지는’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적 조직 운영을 했다는 뜻이다. 이를 더욱 보강하기 위해 지부는 최근 연구자를 초빙하고 지회 간부가 참가하는 ‘자동차 산업 동향팀’과 ‘철강 산업 동향팀’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로 ‘지역사회’ 역할이 컸다. 충남지부 사업장은 다른 공단처럼 밀집해있지 않고 광활한 지역에 산재해있다. 연쇄 조직화에 걸림돌이지만 일단 조직하면 충청도 특유의 끈끈한 지역 관계로 조직력을 키운다.

이 같은 배경에 힘입어 지역 자본들에 극단적인 반노조주의 성향이 전파되지 않은 점이 세 번째 특성이다. 지부차원의 전략적 조직운영과 선후배로 엮인 지역사회 분위기가 자본이 노사관계를 대결국면으로 몰아가지 않은 토양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비단과 기술만으로는 좋은 옷 지을 수 없어

충남은 다른 지부에 비해 사업장에서 나와 지역 사업에 결합할 젊은 간부 활동가 층이 풍부하다. 충남지부는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가 꾸린 ‘비정규직 없는 충남 운동본부’와 이 사업단 최저임금 캠페인, 아르바이트생 실태조사, 학교비정규직 조직사업 등에서 주요 동력이다.

정원영 충남지부장은 “규모 있는 대부분 사업장을 조직했다. 협약을 금속수준에 맞추기 힘든 중소영세사업장은 지역일반노조에 가입시키고 있다”며 “규모 있는 부품사는 상담을 받아 내부 조직사업을 거쳐 금속으로 편제한다”고 설명했다.

충남지부가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 훌륭한 비단 천과 좋은 기술이 있어도 실과 바늘 없이 옷을 지을 수 없다. 제한적인 상담 중심 사업에서 나아가 ‘폭풍 성장’할 천안, 아산, 당진 일대를 누비며 자동차, 철강, 전기전자 업종 노동자를 엮을 조직활동가가 부족하다. 다시 말해 지역 특성에 맞는 미조직 사업전략과 기획으로 무장하고 미조직 조직화에 나설 기존 지회 간부들의 활동공간을 마련해줄 지부 미조직 사업 간부가 절실하다.

충남지부 미조직 사업 담당 박혜영 부지부장은 “각 지회 부지회장이 모여 미조직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다른 지역 미조직 사업 모델이 충남 실정에 맞지 않다. 지부 독자 사업을 펼치기에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말했다. 선전과 상담 실무역량이 필수인 미조직 사업 방법 부족에 대한 설명이다.

▲ 충남지부 미조직 사업 담당인 박혜영 부지부장은 지부 특성에 맞는 미조직 사업을 독자적으로 펼치기에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산=이정원

박혜영 부지부장은 “지회 간부들은 사업장 단위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미조직 사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편”이라며 “당진 산업단지에 대비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알음알음으로 상담에 응하는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전략조직화, 공단조직화, 지역조직화 등 조직사업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충남지부 사업방식에 비춰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부 자체 계획과 전략을 만들어 지역 노동자를 대규모로 조직하기에 아직 경험이나 기획이 부족하다. 박 부지부장은 “미조직위원회 참석 간부를 중심으로 노동법 강의를 들으며 상담실무를 익히려 하고 있다”며 지부가 벌이는 시도를 소개했다.

“노조와 지부 차원 사업 방안이 필요하다”

지부는 10월16일 8기 들어 다섯 번째 미조직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이날 노조 미조직 사업방향과 기금모금에 대해 토론했다.

지회 간부와 임원들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역지부 차원 미조직 사업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면서 ‘미조직 사업=사업장 비정규직 조직 사업’으로 생각하거나 지역과 공단 조직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떠올리기 힘들어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재경 현대다이모스지회 정책부장이 “솔직히 미조직 사업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조직화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미조직 기금 모금을 하면 돈만 내고 말 것”이라며 “노조와 지부의 분명한 사업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

▲ 10월16일 충남지부 미조직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지회간부들이 노조 미조직 사업방향과 기금모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아산=이정원

이 같은 실태를 추적하면 노조 미조직 사업에 대한 과제를 얻을 수도 있다. 노조 미조직 사업은 ▲사내하청 조직사업 ▲지역·공단 조직사업 ▲지역지회 지원 사업 등이 있다. 비정규직 사업과 함께 묶여 있다 보니 기업지회 조합원들은 미조직 사업을 사업장 사내하청 비정규직 조직사업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대공장 조합원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모순이 비정규직 문제이다 보니 이는 당연한 현상. 박기선 현대제철지회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이 “정규직 세 배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을 위해 비정규직지회 사업을 지원하거나 조합원 고충처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당진 철강사업장 조직사업으로 확장하기에 지회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나를 모르는 모든 나’를 백배 천배로 늘리는 일

지역지부 소속 비정규직지회를 다수 조직한 충남지부로서 광활한 지역에 띄엄띄엄 있는 사업장을 ‘공단 사업’으로 통으로 묶어 조직하기도 힘들고 개별조합원을 확보해 지역지회를 설립하기도 어렵다. 엄태광 현대제철지회 부지회장은 “민주노총과 노조의 미조직 기금이 필요하지만 노조는 조합원에게 ‘이것’이라고 보여줄 확고한 의지와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충남 지역과 산업 특성을 고려한 조직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존 ‘조직 노동자’ 강화와 동시에 조직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특히 충남이나 경주와 같이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지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제철에 이른바 ‘18인의 전사’라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피눈물 흘리며 민주노조를 사수한 옛 한보철강 노동자 얘기다. 이들 ‘18인의 전사’는 끝까지 민주노조를 지켜 현재 현대제철지회를 만들었고 그 중 한 명이 지금 지회장이다.

이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버티며 언젠가 ‘백배 천배’로 되갚아 주리라 맹세했다고 한다. 노동자가 받은 탄압을 온전히 자본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전태일 열사가 유서로 말한 ‘나를 모르는 모든 나’를 백배 천배로 늘리는 조직화다.

백배로 갚는 일은 이미 달성했다.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 조합원이 4천 명이다. ‘18명의 전사’가 천배가 되면 1만 8천명이다. 현재 충남지부 조합원은 8천4백 명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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