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부산양산지부 르노삼성자동차지회는 올해 지회 설립 4년째다. 설립 1년 만에 복수노조가 생겼고 현재 기업노조 조합원 10분의 1 수준 조합원이 있는 소수노조다. 아직 지회 사무실도, 회사와 합의서 한 장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르노삼성자동차지회 간부들은 “현장에 변화가 생겼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들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힘은 지난 3년 동안 쏟은 헌신과 열정, 이것을 통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 조합원들의 신뢰다.

김병도 지회 수석부지회장(지회장 직무대행)은 2011년 8월 겁 없이 노조에 가입했다. 르노삼성자동차에 노동자 대표라 주장하는 사원대표자위원회(아래 사대위)가 있었다. 사대위 임원과 대의원은 늘 시간할애를 받았다. 회사도 사대위에 우호적이었다. 노조에 가입해도 사대위처럼 어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은 복수노조 상황에서 금속노조, 민주노조를 경험하기 전에 기업노조 한계를 먼저 알았다”며 “금속노조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있다. 그 기대를 채우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이 지회의 숙제다.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김 수석부지회장은 각오를 밝혔다. “공장 정문 앞에 국기게양대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르노삼성자동차지회’ 깃발을 꽂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부산=신동준

회사 반응은 김병도 수석부지회장 생각과 정반대였다. 교섭을 요구했지만 3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교섭을 열 수 있었다. 1년 동안 20차례 교섭을 했지만 회사는 지회 요구안 문구를 꼬투리 잡을 뿐 안을 내지 않았다. 이상민 대외협력1부장은 “당시 조합원 수가 많지 않았다. 회사는 조합원이 적다고 지회를 무시했고 형식적인 교섭만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1년 만에 소수노조로

공장 안에서 교섭 한 번 열지 못한 상황. 회사의 탄압으로 조합원이 60여 명까지 줄었다.  2012년 10월 회사에 기업노조가 생겼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사대위가 총회를 열고 기업노조로 전환했다. 기업노조 만들고 나흘만에 2,400여 명이 가입했다. 사대위 사원 대부분이 기업노조 조합원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기업노조 설립 뒤 현장에 금속노조 탈퇴서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회사는 조합원을 고과, 전환배치 등으로 차별했다. 지회간부들은 경고장을 수십 장 받을 만큼 수도 없이 징계 협박을 받았다. 금속노조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이어졌다. 기업노조는 창구단일화를 거쳐 대표노조가 됐다.

노동조합 사무실이 없어 2011년 만든 지회 현판은 부산양산지부 사무실 구석에 놓여있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노동부에서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대표노조에 대한 강제 규정이 하나도 없다. 노동부는 자신들은 관여할 수 없다고 너희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 그대로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지회는 기업노조보다 잘 할 수 있는 것, 현장을 발로 뛰는 방법을 택했다.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조합원 수가 140여 명으로, 더 이상 늘지도 줄지도 않는 정체 시기에 현장을 뛰면서 조직을 확대해야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지회는 현장순회를 시작했다. 주간조 간부들은 야간에 현장순회를 했다. 야간조 간부는 일을 마친 뒤 주간에 현장순회를 했다. 금속노조, 기업노조 가리지 않고 조합원을 만났다. 소식지를 나눠주고 기업노조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 노동조합 사무실이 없어 2011년 만든 지회 현판은 부산양산지부 사무실 구석에 놓여있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노동부에서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대표노조에 대한 강제 규정이 하나도 없다. 노동부는 자신들은 관여할 수 없다고 너희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 그대로였다. 부산=신동준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기업노조 조합원들의 불만을 듣고 지회 소식지에 썼다. 기업노조 대의원들이 하지 않는 일, 조합원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지회가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회 간부들을 붙잡고 질문을 하는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늘어났다.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기업노조는 조합원들에게 회사 돌아가는 내용을 알리거나 교육하지 않는다. 조합원 귀를 막으려고만 했다”며 “현장 조합원들이 궁금증을 풀 곳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퇴근하면 다시 현장순회. 휴일이 없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선전전을 한다. 김종욱 사무장은 “조합원과 간부들이 식당에서 중식 선동을 한다. 조합원의 단결을 보여주고 회사와 기업노조가 잘못하는 내용도 알린다”고 소개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지난해 생애 첫 파업을 했다.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파업을 즐겁게 했다. 주차장에 모여 소원을 적은 풍선을 날리고 물풍선을 던졌다. 파업에 기업노조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기업노조는 껍데기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체행동을 이렇게 할 수 있다, 간부는 이렇게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라고 지회의 실천의지를 밝혔다.

지회 설립 이후 꾸준히 해 온 활동 중 하나가 소식지 발행이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현장은 넓고 간부들이 일상 시간에 조합원을 만나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회사의 시선 때문에 지회 간부들을 만나기 부담스러워했다. 우리 내용을 알리고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소식지였다”고 강조했다.

지회는 일주일에 한 번은 기본이고 많게는 서너 차례 소식지를 발행했다. 노조의 역할, 대의원의 자세, 조합비를 내는 이유, 기업노조 교섭의 문제점,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등 회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을 꾸준히 실었다.

▲ 지회 설립 이후 꾸준히 해 온 활동 중 하나가 소식지 발행이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현장은 넓고 간부들이 일상 시간에 조합원을 만나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회사의 시선 때문에 지회 간부들을 만나기 부담스러워했다. 우리 내용을 알리고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소식지였다”고 강조했다. 이상민 대협부장이 소식지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신동준

지회간부들이 소식지 한 번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근무조가 다르기 때문에 지회 간부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은 주말 뿐이다. 매주 주말 회의에서 소식지 내용을 논의한다. 더 큰 일인 소식지 작성은 주간조 근무를 마친 간부들이 지부 사무실에 모여 한다. 1천8백여 장 소식지 복사는 야간조를 마친 간부가 한다. 지회 간부들은 지부 복사기가 본인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며 미안한 미소를 짓는다.

밤이 새고 날이 새도록 소식지 만들다

주간조 간부들은 소식지 복사가 끝난 다음날 새벽 4시 지부 사무실에서 소식지를 챙겨 출근한다.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조합원들에게 배포하고 현장순회를 하며 소식지를 나눠준다. 이 일을 3년 동안 꾸준히 했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금속노조 지회와 현장 조합원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금속노조와 기업노조가 무엇이 다른지, 선명한 금속노조를 확실히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년이 지회에 대한 신뢰 토대를 만든 시간이었다면 기업노조에 대한 불신이 커진 시간이기도 했다.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사대위 시절 단협이 있었다. 기업노조가 생기고 2년 동안 단체협약 교섭을 하면서 오히려 단협이 후퇴했다”고 말했다. 김 수석부지회장은 “2012년부터 연달아 연월차를 반납했고 지난해에 임금도 동결했다. 회사는 미래 발전전망을 제시하지 않고 희망퇴직을 진행한다”며 “그런데도 기업노조 단협에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이나 완성차 최고 수준이라는 노동강도를 완화할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종욱 사무장은 “현장 조합원들이 기업노조가 이전 사대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금속노조가 하는 얘기가 맞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아직 금속노조로 가입하는 실천까지 이어지지 않지만 천천히, 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르노삼성자동차에 소위 삼성식 노무관리가 팽배했다. 금속노조에 처음 가입했을 때 회사가 ‘금속노조는 회사를 망하게 한다’는 교육을 했다.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노동자들은 회사가 잘못한 것을 알아도 회사가 망할까봐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이제 말해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며 “인식을 바꾸는 데 2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올해 기업노조 임단협 교섭 잠정합의안은 두 번의 부결 끝에 3차 투표에서 가결됐다. 그마저도 세 번째 투표는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들의 표를 배제하고 집계한 결과다. 임단협 이후 지회에 가입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고 있다.

기업노조의 한계를 먼저 알았다

이상민 대협부장은 “지금까지 금속노조 조합원이 한 명도 없던 부서 사람이 최근 지회에 가입했다. 우리는 그 부서를 조직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현장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 김종욱 사무장은 “현장 조합원들이 기업노조가 이전 사대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금속노조가 하는 얘기가 맞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아직 금속노조로 가입하는 실천까지 이어지지 않지만 천천히, 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신동준

“르노삼성자동차에 노조가 없었다. 우리는 노조를 몰랐다. 갈라졌던 현장이 이제 지회를 중심으로 뭉치는 과정이다.” 김종욱 사무장은 현재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자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병도 수석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은 복수노조 상황에서 금속노조, 민주노조를 경험하기 전에 기업노조 한계를 먼저 알았다”며 “금속노조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있다. 그 기대를 채우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이 지회의 숙제다.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 간부들은 3년 활동으로 이제야 견고한 울타리를 조금 열었다고 말한다. 고용 안정, 노동강도 완화, 회사 발전전망 수립, 회사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현장에서 노동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말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이들 목표다. 그 날을 위해 더 많은 조합원을 모으고 현장 노동자들의 인식을 키우겠다고 말한다.

오는 11월 지회는 직무대행 체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집행부를 뽑는 선거를 한다. 선거를 한 발 더 나가는 계기로 만들 생각인 한 지회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공장 정문 앞에 국기게양대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르노삼성자동차지회’ 깃발을 꽂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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