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예전의 아빠들은 가정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남녀가 유별하여 부엌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기 시 했던 시절, 아빠라는 이름의 남자들은 오직 공장과 회사에서 조국의 근대화와 소득향상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했다.

계속되는 야근과 잔업 후 목에 걸린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 잔을 걸치고 거나하게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시장에서 산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들어오시던 모습은 우리가 거쳐 온 산업화 시대의 아빠의 전형이었다.

커가는 아이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었던 그 시절, 아이들의 양육이나 교육은 엄마의 몫이었다. 극성스러운 교육열을 일컬을 때 ‘치맛바람’ 이라고 했으니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미미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아빠와 가족사이 대화와 교류는 단절한 채 오직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키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오느라 온 청춘을 다 바쳤다.

▲ 최근 출시된 신형 카니발은 광고 컨셉이 ‘아빠가 가르쳐준 세상’이다. 캠핑이나 여행 등 아빠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를 컨셉화해서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카니발을 사서 여행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세상은 ‘프랜대디 Friend+Daddy’의 시대다. 이제 아빠들은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있다. 양육의 보조자가 아니라 주역으로 등장해 육아시장과 교육시장의 주요 소비자로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비누 등 생활용품으로 유명한 ‘Dove’라는 글로벌 회사는 최근 ‘Call for Dadd’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다. 늘 여성과 주부만을 중심으로 광고를 집행하다 이제 ‘아빠’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사실은 그 만큼 생활용품 시장에서 남자들, 특히 아이와 함께 사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예전 자동차회사들은 SUV나 RV 차량 광고할 때 근육질의 남자들을 내보내 거침없이 오프로드를 달리는 ‘남자다움’을 강조했다. 최근 출시된 신형 카니발은 광고 컨셉이 ‘아빠가 가르쳐준 세상’이다. 캠핑이나 여행 등 아빠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를 컨셉화해서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카니발을 사서 여행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실제 카니발은 판매 첫 달 8천7백대를 팔고 대기고객이 1만명에 달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하니 아이들에 대한 아빠들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나 의지만 있다고 프랜대디가 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어설프게 가족과 함께 한다고 의지만 앞서다가 아빠가 아니라 우리 집 짐꾼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 최근 방송을 타고 있는 KCC건설의 ‘아빠의 투잡’이라는 광고를 보면 피곤에 지쳐 꾸뻑꾸뻑 조는 아빠, 분리수거를 위해 온갖 애를 쓰는 아빠의 모습이 정훈희의 ‘꽃밭에서’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나온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토록 행복한 집에서, 가족 속에서, 꽃밭에서 아빠들은 꾸뻑꾸뻑 졸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프랜대디’ 현상은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 상대적으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가시간을 늘려야 가능하다. 지난 대선에서 손학규 민주당 후보 캠프의 슬로건처럼 ‘저녁 있는 삶’과 ‘주말 있는 삶’을 전제해야, 즉 절대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강도가 줄어야 아빠들은 공장에서, 회사에서 집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 36개 회원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연평균 근무시간이 OECD 평균 1,765시간보다 훨씬 높은 2,090시간으로 회원국 최고 근로시간국가로 기록됐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항목에서는 34위를 기록,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지수가 낮은 국가는 멕시코와 터키뿐이었다. 놀라운 것은 조사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인의 실제 노동시간은 훨씬 더 길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노동현실 속에서 우리 아빠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은 공장과 회사에서 눈치보고, “왜 다른 집 아빠들처럼 놀아주지 못하느냐”는 아이들의 구박에 집에서도 눈치를 보니 이리저리 처량하고 불쌍할 뿐이다.

김범우 / 광고회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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