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의 상징인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모든 공정에 투입된 사내하청 노동자는 ‘도급’이 아닌 ‘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제품 양산에서 출고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기업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일해 왔다면, 해당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원청기업의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지휘·명령권 행사한 기아차가 '진짜 사용자'=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정창근)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499명이 기아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468명에 대해 “기아차 근로자 지위가 인정되고, 기아차에 고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기아차에 신규 임용된 28명의 소는 각하하고, 고용기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한 원고 1명의 소는 기각했다.

이날 판결은 지난 18~19일 잇따라 나온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과 일맥상통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아차 자동차 생산공정 중 차체·도장·의장 및 소재제작 공정은 대부분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이용한 자동흐름 생산방식으로 진행됐는데, 해당 공정의 경우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과 기아차 소속 근로자가 인접한 공간에서 컨베이어벨트의 전후좌우나 동일한 생산라인에 배치되기도 했고, 그 밖의 공정에서도 일련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자동차 생산공정의 특성상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담당업무는 기아차 소속 근로자들의 담당업무와 밀접하게 연동돼 이뤄졌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들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이는 기아차가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기아차에 의해 통제돼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이날 판결에서 주목할 대목은 두 가지다. 재판부는 먼저 컨베이어벨트로 대표되는 흐름공정을 채택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원청기업의 정규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내하청 인력 투입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해고의 유연성을 확보해 온 제조업계의 경영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다. 자동차처럼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흐름공정을 채택한 제조업 전반에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재판부가 이번 판결에서 생산공정 전반을 누가 기획하고 통제하느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령 철광석의 파쇄부터 쇳물을 끓이는 전반의 과정을 통제하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같은 철강업체의 경우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은회 기자 /  <매일노동뉴스> 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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