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8일 오전 현대차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의 주인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아 잘됐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의 생각이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분노로 변하는 뉴스가 들렸다. 낙찰금액 ‘10조5,500억원.’ 순간 내 귀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설마 향후 개발비용을 모두 합친 금액을 기자가 잘못 썼을 거야.’ 내 생각은 한참을 지나서 우려로 바뀌었다.

10,550,000,000,000원. 노동자들이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동그라미와 콤마를 그릴일이 있으랴. 혹시 틀렸나 영이 하나 더 붙었는지 몇 번을 다시 세어보게 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현대차의 9월 현재 자본금은 1조4,889억원이다. 현대차 자본금의 7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그것도 지분 5% 가지고 있는 정몽구 회장 혼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5%의 결정권을 가진 정몽구 회장의 이번 결단으로 발표 당일 주식시장에서 현대자동차 주식 시가총액 4조3천억원이 증발했다. 95%의 주주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끼쳤고 이 여파로 투자자들은 ‘망연자실, 아연실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건 “100년 앞을 내다본 투자로 결코 과한액수는 아니다”, “사기업이나 외국기업이 아닌 정부로부터 사는 것이어서 결정하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는 정몽구 회장의 궤변이다.

어디 그뿐인가? 10조5,500억원이 쉽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 전 사원에게 지급된 연봉총액 5조9,700억원 △국내에 연간 30만대 공장 10개를 지을 수 있는 금액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체불금액이 1조7천억원이기 때문이다. 이 돈은 지난해 전 세계 현대차공장에서 발생한 전체 매출액 87조3076억원의 1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매년 임금, 단체교섭에서 회사는 항상 어렵다는 말을 반복한다. 환율이 오르면 올라서 어렵고, 내리면 내려서 어렵고, 국내 경기침체 세계경제 침체 등 어렵다는 이유를 잘도 갖다 붙인다.

현대차 노동자들이 당기순이익의 30% 분배를 요구하고 21조원이나 되는 현금을 국내공장 신설과 증설에 투자하라고 하면 회사는 IMF와 같은 경기침체에 대비해 십년 앞을 내다보고 충분한 현금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이번 한국전력 부지 인수와 관련해서 “지급여력 충분하다”, “100년 앞을 내다 본 투자다”등 정 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현대차그룹이 서울 계동 본사에서 급하게 빠져나오면서 인수한 양재동 농협본사 건물. 이후 십 수 년을 거치면서 현대차그룹은 엄청난 성장을 이뤘고 이로 인해 그룹의 규모로 보나 계열사의 수를 볼 때 양재동 본사가 작은 것은 사실이고 새롭게 본사를 지어야 할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번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에 써낸 시세의 세 배나 되는 10조5,500억원은 너무 과했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만들겠다는 발표로 보면 앞으로 각종 공사비와 세금, 서울시 기부체납 등으로 10조원을 더 투입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내다보고 있다. 설령 GBC가 들어선다 해도 이익을 창출(Cash cow)하는 공장이 아니라 한 해 수 백, 수 천 억원의 유지비가 들어가는 돈 먹은 하마로 변할 것이 자명하다.

정몽구 회장은 정녕 이카루스를 꿈꾸는가? 정몽구 회장에게 요구한다. 현대차는 일인지배 기업이 결코 아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한전 부지 인수를 즉각 중단하고 이 돈을 ▲국내공장 신설과 증설로 신규고용창출 ▲비정규직과 불법파견이 없는 현대차그룹 ▲통상임금 체불임금 즉각 지급 ▲2014년 임금교섭 마무리와 공정분배실현 ▲부품사, 협력사와 동반성장에 나서라.

정몽구 회장, 그렇지 않으면 ‘100년 앞을 내다본’ 투자가 10년도 견디지 못하는 사회적 투쟁에 직면할 것이다.

하영철 / 현대자동차지부 남양위원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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