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인천은 또 다른 의미로 노동운동의 메카였다. 인접한 수도권의 수많은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이 인천의 대규모 공업단지와 공장을 찾아 취업했다. 인천지역 노동자는 이들과 결합해 일찍이 민주노조 건설운동을 벌였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시기를 맞아 폭발하듯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기풍을 만들었다.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권아래 이 노동자들은 인천지역의 굵직한 투쟁을 뒷받침하며 언제라도 서울로 진입해 투쟁할 수 있는 상비군이었다. 남동공단 대우중공업, 부평공단 삼익악기, 주안공단 영창악기와 경동산업 등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대공장 노동자들은 금속산별노조 건설의 초석이었다. 1990년대 들어 노동운동과 더불어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더욱 풍부한 역량을 갖췄다. 이 역량은 현재 인천 노동운동, 지역운동과 정당운동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 이 같은 활력을 찾기 힘들다. 지역 주력 사업장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잇따라 위축돼 동력을 잃고 말았다.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중공업)는 두산자본이 인수한 이래 끈질긴 공격을 받아 노조 조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다른 주력 사업장 역시 회사 부도나 공장 해외이전 등으로 명맥을 잃었다.

수도권 공장 지방이전으로 인한 공단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유성기업, 동양엘리베이터, 대원강업, 한국분말야금 등 인천에서 터를 닦은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들이 충남으로 내려갔다. 최근 KM&I와 더불어 인천지부를 지탱하던 동광기연이 전북으로 이전 중이다. 2013년 현대제철 인천공장이 산별전환에 성공하면서 지부의 든든한 식구가 됐지만 도심 확장으로 인한 공장이전 문제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소속 사업장이 줄면 인천지부가 독자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간부, 조합원 동력과 예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조짐마저 보인다. 이같은 사면초가 상황에서 인천지부(지부장 두대선)는 고민이 깊다. 이대우 지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조직확대로 악조건을 돌파하기 위해 2010년부터 안간힘을 써왔다.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조합원으로 출발한 이대우 부장이 2010년 미조직비정규사업을 맡으며 추진한 사업은 각 지회가 사업장 하청노동자를 끌어안자며 벌인 1사1조직 사업이었다. 이어 이 부장은 2012년 ‘공단지도 그리기’ 사업을 벌였다. 지역 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인천지역 공단 실태조사를 벌이며 공단 노동자의 고용형태와 업종, 주요 관심사 등을 파악했다. 2014년 들어 민주노총 인천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노동단체와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을 꾸렸다.

▲ 제조업 공동화와 자본의 공격이라는 사면초가 상황에서 인천지부는 고민이 깊다. 인천지부는 지부가 처한 조건을 조직확대로 돌파하기 위해 2010년부터 안간힘을 써왔다. 이대우 지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이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 인천=김형석

이대우 부장은 숱하게 걸려오는 노동 상담 전화를 받으며 중소사업장이 흔히 저지르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법, 파견법 등 법위반 사항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 노동자 상담과 노동부 고소·고발을 병행한다. 지부가 시내버스에 노동상담 광고를 낸 효과다. 지부 소속 사업장 조합원들에게 지역 연고자 찾기 사업이나 캠페인 사업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고 한국지엠 납품 회사를 조사하기도 했다.아직 중장기 계획 아래 본격 전략 조직사업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시도와 모색으로 가능성을 타진한 셈.

이대우 부장은 “지부 독자 전략 조직사업을 수립하고 추진하기에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여러해 동안 꾸준히 미조직 노동자 조직사업을 벌여온 수도권 다른 지부에 비해 활동가 층이나 사업 경험과 지혜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 부장은 “무엇보다 인천에 조직활동가나 개별 조합원을 담을 그릇인 지역지회가 없다. 조직틀도 문제지만 이를 가동할 프로그램 개발도 과제”라며 “마음이 급하다고 될 일은 아니고 어느 정도 사업 축적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인천지부는 다양한 미조직 사업 중 한 가지 방향을 정해 추진하기보다 공단 조직사업과 업종 조직사업 등을 함께 벌이고 있다.

지부는 한국지엠지부와 지역공동운영위원회를 열어 미조직 사업 재정을 확보했다. 열악한 인력 조건을 만회하기 위해 지부 소속 사업장 참여를 설득했다. 노조와 지부사업에 헌신적인 지회 간부들이 큰 도움이 됐다.

지부는 ‘인천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을 출범시키면서 지역을 부평공단과 남동공단으로 나눠 사업단을 꾸렸다. 각 공단은 거점 역할을 할 지회가 맡았다. 부평공단은 KM&I지회, 남동공단은 TRW지회와 창성지회가 맡는 식이다. 노동·사회단체는 주안과 서구 공단을 맡고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지원사격을 하기로 했다. 인천지역 주요거점에 사업단을 구성해 조직사업 채비를 갖춘 셈이다. 이들 사업단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휴업수당 지급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최근 부평공단에 밀집한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조직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전략조직화사업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부장은 “공단이요? 아직 유효하죠”라고 말한다. 제조업 공동화니, 도심확장이니 해서 공단 규모가 작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근로기준법이나 파견법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이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에 많다는 얘기다.

노조에 바라는 점을 묻자 망설임 없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아픔이라고 아세요? 서울에 수시로 집회가 잡히면 자주 참석합니다. 노조가 지역대오를 상경시키기 부담스러운 경우 수도권 동력을 당기는 거죠. 인천지역 간부들이 서울 집회에 참여하면 일이 겹치고 몰려요.”

이부장은 “노조가 지침으로 내리는 미조직사업 관련 계획이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아요. 지부는 시간과 돈, 사람이 부족한데 노조 계획을 현장에 접목시키려다 보면 괴리감이 커서 억지로 같다 붙이는 경향이 생기죠. 노조가 실효성 있는 전략을 세워 그림을 그려줘야 해요. 두루뭉수리하고 진부한 분석이 아니라 좀 더 면밀하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말이죠.”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 지역에서 자본과 세월의 공격을 받아 축소하고 있지만 인천은 여전히 노조의 주요 거점이다. 싸울 의지가 있는 동지에게 전망과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노조의 중요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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