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21일 15시50분 무렵. 현대차 전주공장 안 소재공장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두꺼운 철제 뚜껑이 날아갔고 쇳물이 튀기면서 날카로운 철조각과 화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폭발음은 소재공장에서 500미터 떨어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도 들렸다. 이 사고로 화상을 입은 조합원 3명과 폭발음으로 두통을 호소한 1명을 병원으로 호송했다. 사람이 더 가까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사망사고로 이어졌을 큰 폭발이었다.

사고는 뜨거운 쇳물을 옮기는 용기에 구멍이 뚫리면서 발생했다. 구멍은 용해로에서 받은 10톤에 가까운 쇳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더욱 커졌다. 조합원들은 비상시에 쇳물을 버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덩이로 쇳물이 든 용기를 옮겼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안전을 위해 파둔 비상용 구덩이에 고여 있던 물이 문제였다. 비상용 구덩이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쇳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곳이지만 보수하거나 점검한 적은 없었다. 1천도가 넘는 뜨거운 쇳물이 고여 있던 물과 만나면서 수소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 올해 4월21일 현대차 전주공장 안 소재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는 조합원 4명이 부상을 입은 큰 사고였다. 사고 당일 봉동119 안전센터에서 출동해 화재진압에 나서고 있다. 사진=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당시 현장에서 일했던 배종호 조합원은 “20년 이상 근무한 경험 많은 조합원들이라 다행이지 경험이 부족하거나 사고를 수습해 보겠다고 시간을 끌었다면 큰 사고가 됐을 겁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합원들은 사고 발생도 문제지만 사고 발생 이후 회사의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현장관리자는 화재진압보다 현장 자재 등을 수습해 나머지 라인이라도 정상가동 시키려 하는데 힘을 쏟았다.

8월19일 만난 박성철 현대자동차지부 전주위원회 노동안전부장은 “회사에서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얘기하지만 진짜 가족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일하라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당시 회사의 대응을 비판했다.

정윤규 대의원은 “당시 폭발의 여파로 크레인도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자재보다 다친 사람을 수습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라며 “공장 안에는 커다란 장비와 고열의 시설이 널려 있고 도시가스관이 지나고 있어 2차, 3차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라고 당시 위태로운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 현대차 전주공장 안 소재공장은 엔진 등 부품을 주조하기 위해 쇳물을 녹이고 옮기는 작업을 반복한다. 조합원들은 위험한 작업장이고 용해로 특성상 한시도 쉴 수 없어 안전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주=성민규

사고가 터지자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즉시 현장점검을 나왔다. 대형폭발로 엉망이 된 작업장 상태를 보고 근로감독관은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회사 관리자와 식사를 마치고 온 근로감독관은 말을 바꿨다. 회사와 노동청은 다음날인 22일부터 폭발한 4호기를 제외한 1, 2 ,3호 용해로를 다시 가동시키라고 지시했다. 조합원들에게 일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이 현장에 붙었다. 조합원들은 근로감독관 태도가 돌변해 아무런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회사 주장을 대신 전달하는 것에 경악했다.

사고당일 저녁에 열린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조합원들은 작업재개를 요구하는 회사에 “안전 확보가 되지 않았는데 대형사고 발생 직후 곧장 라인을 다시 돌린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정윤규 대의원은 “미친 소리다. 1, 2, 3호기 모두 4호기와 같은 상황인데 직원들 안전은 아랑곳없이 생산만 하면 그만이라는 얘기 아니냐”며 회사를 비판했다.

회사는 구사대 50명을 동원하고 작업에 나서지 않는 조합원을 지시불이행과 무단이탈로 징계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윤규 대의원은 “간부들이야 징계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평조합원은 회사가 징계하겠다면 일단 위축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조합원이 일부 위축됐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대형 폭발 사고가 터진 현장에선 아무도 감히 작업재개에 나서지 않았다. 배종호 조합원은 “회사가 징계를 하겠다고 나서니 위축됐던 건 사실이지만 자기 안전이 중요한데 먼저 나서서 생산하자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덕분에 현대차 전주공장 노사는 3일 동안 현장을 점검할 수 있었다. 박 노안부장은 “조합원들이 징계위협에도 조합 지침에 따라 작업에 나서지 않은 게 큰 힘이 됐습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점검결과 1, 2, 3호기의 비상구덩이에서 모두 물이 나왔다.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회사가 강요하는 대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면 또 다른 대형폭발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합원들은 3일 동안 비상구덩이 물을 퍼내고 모래를 채워 안전을 확보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협의 결과에 따라 용기보수, 비상벨 설치, 안전시설 추가설치와 외부기관 안전실사까지 시행했다.

▲ 정윤규 대의원은 "위험한 현장이기에 안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유리창을 두들겼다. 지난번 폭발사고때 산산조각난 유리창을 대신해 사고 수습후 소재공장에 깨지지 않는 안전유리를 새로 설치했다. 전주=성민규

조합원들은 “회사는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쳐야만 큰 사고라고 인식합니다. 안전을 위한 작업정지를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라며 회사의 안전 불감증을 꼬집었다.

회사는 현재 다른 작업중지건을 이유로 박성철 노동안전부장과 대의원 3명에게 손해배상 등 법적조치를 취하고 있다.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회사가 오히려 안전을 위한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셈이다.

노동청도 회사도 조합원들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행동하며 지킬 수밖에 없다. 사고 이후 조합원들이 얻어낸 교훈이다. 현대자동차지부 전주위원회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단결로 만들어낸 보다 안전한 현장을 보여주며 돈 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맞서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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