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국회 앞 일인 시위를 하는 것은 보통 입법과 관련한 청원이나 의정 기간 동안 특정이슈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일인 시위는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향해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시작했다. 아무리 만나자고 해도 약속을 안 잡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 의원을 상대하기 위해, 결국 아침마다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섰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의원의 태도는 그대로다.

강원도 홍천에 구만리라는 마을이 있다. ‘구만 가지’라는 재미난 상표의 가지를 재배하고 오이 농사, 인삼 농사도 짓는 4백 년 가까이 된 집성촌 마을이다. 십여 년 전 이 마을 뒷산 구만산에 가시오가피 농장을 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나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땅의 용도가 농장이 아닌, 골프장 부지였다는 것이 들통 났다. 당연히 주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번엔 마을 어르신들에게 천만 원을 안겨주며 골프장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땅과 뒷산을 천만 원에 팔아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어르신 몇 분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이 사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또한 인허가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서, 입목축적조사, 사전환경성검토 등 대부분이 문제가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강원도엔 이런 식으로 골프장 사업이 진행된 곳이 여러 곳이라 도 차원에서 골프장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2년 가까이 구만리 골프장 인허가 절차에 대해 세세한 검토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초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십여 년 끌어온 이 사안에 대해 건설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다.

도청 앞에서 어르신들이 노구를 이끌고 천막잠을 자며 농성을 벌이고 주말마다 집회를 하는 등 길고 긴 10여 년의 싸움 끝에 이제사 발 뻗고 자게 됐다고, 언론에서도 긴 골프장 싸움이 승리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등 기뻐하던 것도 잠깐. 골프장 업체는 곧바로 사업 취소 처분에 불복해 ‘환경영향평가 부실을 이유로 사업계획 승인 처분을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며 강원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어쩌면 예정된 절차였을 지도 모른다. 쉽게 결과에 승복했다면 십여 년을 끌어오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것은 이 골프장 업체의 대주주이며 실 소유자라는 이가 국회의원‘박덕흠’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라면 조금은 주민들의 입장이나 자신에 대한 평판을 고려해 다른 판단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 것이 얼마나 섣부른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이 갖는 가치나 명예보다도 더 중요한 게 돈 일테고,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그 돈을 더 잘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도덕이나 명예나 가치, 윤리 같은 말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주민들이 또 길고 긴 법정 싸움에 시달리기 전에, 또다시 법정으로, 도청 앞으로 다니며 고생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박덕흠 국회의원을 향해 골프장 소송을 취소하라고 일인 시위을 하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요청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게 현재 상황이다. 돈벌이가 된다면 뭐라도 하는 파렴치한이 아니라 그래도 금 뱃지를 단 자로서 최소한의 윤리를 지니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윤리가 뭔지, 도덕이 뭔지 알고 있는 자인지 모르겠지만.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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