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 노조에선 회사를 그만두면 조합원자격도 없어지고, 지금까지 노조와 맺어온 인연은 끝이라고들 한다. 이 말이 금속노조에서도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퇴직을 하면 노조운동에 아무리 관심을 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밖에 없도록 구조적으로 되었던 것이 기업별 노조체계이다. 금속노조라는 산별노조를 만든 이유 중의 하나는 기업별로 해결할 수없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라고들 하지만,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자격은 어쩌면 평생을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되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그렇지 않다. 단지 임금 몇 푼 올리기 위한 도구로 금속노조를 건설하지 않았듯이, 우리사회를 개혁하는 엔진으로 금속노조는 작동하여야 한다. 하지만 금속노조 평조합원이나 간부들의 머릿속에 여전히 ‘회사를 그만두면 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거나 틀린 말이다.

▲ 금속노조 평조합원이나 간부들의 머릿속에 여전히‘회사를 그만두면 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거나 틀린 말이다. 2월19일 금호타이지회 본사 상경 투쟁에 나선 조합원을 경찰기동대원들이 방패로 밀어내고 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누구인가? 현재의 금속노조 조합원은 기존의 기업별 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전환에 대한 조직결의의 방식을 통하여 조합원자격을 얻은 노동자들이다. 물론 이렇게 조직결의의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단기간에 산별노조를 건설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장점, 기업별 노조가 가진 재산과 권리를 조직 이행기적인 혼란 없이 산별노조로 고스란히 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금속노조가 조직을 확대하던 시절은 이런 장점들이 빛을 발하지만, 노조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노조운동이 수세기에 몰릴 때는 흉기가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도 한다. 또한 금속노조가 이후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조합원들의 마음속에 충분히 각인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금속노조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금속노조에서는 이런 반전에 가까운 일들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바로 금속노조를 탈퇴하는 지회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로의 조직전환과 마찬가지로 조직탈퇴를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하는 조직들이 현재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직들에서 금속노조 탈퇴를 거부하는 조합원들도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단위지회가 탈퇴했으니,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게 과연 정당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라고 보는 게 옳다. 왜냐면 비록 지회단위에서 조직탈퇴를 결의했다고 하더라도 조합원 중에서 누군가 자발적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거부하고 금속노조에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있다면, 조합원 자격은 당연히 유지되는 게 정상이다. 게다가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이런 조합원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 문제에 대한 해법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산별노조 조합원은 누구인가?

다른 나라 산별노조를 보면 조합원들 중에는 퇴직자들이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활동가들에게 이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혹은 왜 노조에 남아있는지에 대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고 하면서도 가슴으론 전혀 당연(?)하지 않은 기이한 일이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선 산별노조이니까 퇴직자들이 당연히 있겠지 하면서도, 우리도 이들을 조직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노조가 무슨 수로 퇴직자를 관리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거나, ‘회사를 관두면 그만’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왜 무시하느냐는 말만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서 이른바 ‘죽은 자’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수긍할 수만은 없다. ‘죽은 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산자’로 되돌려 놓아야 할 역할을 산별노조가 하여야 한다. 쉽게 말해 퇴직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을 산별노조가 준비하여야 하는데,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한 기금마련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책은 퇴직노동자들을 산별노조가 자신의 조직원으로 안고 가면서, 이들이 다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고령 노동자와 청년노동자도 산별노조 조합원

한국 노사관계에서 노조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하여 가장 잘 훈련받은 집단이 강제해고자들이다. 어쩔 수없이 자신이 다니던 기업을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은 이후 어떤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노조를 만들거나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준비된 노동자’들이다. 좀 더 우회적으로 말하면 술자리에서라도 ‘대기업 이기주의’와 ‘반 노조주의’에 대하여 적어도 변호는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을 금속노조의 조합원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단순한 조합원 수 불리기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노동자와의 연대이자 산별노조로의 본격적 진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나이든 고령의 노동자가 금속노조에 가지는 자부심은 노동운동의 정신이라고 보이듯이, 비정규의 고통에 빠진 청년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조직의 미래는 존재한다. 탈퇴하는 몇 몇 조직으로 인해 기죽지 않으려면, 금속노조가 쉽게 조직할 수 있는 노동자들부터 금속노조라는 울타리로 모아가는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주위의 노동자들을 평생 담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일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