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에서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리해고를 당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삶 자체가 파괴될 것이며,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숨죽여 살다가 돌연사로 죽어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1999년 말 녹색병원에서는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하였다. 1997년 삼미특수강분할매각 이후 고용승계를 거부당한 해고노동자 중 115명을 검진한 결과 해고 후 노동자들은 복직투쟁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담배를 새로이 배웠거나 전보다 피우는 양이 늘어난 사람이 48.8 %, 음주량이 늘어난 사람이 65 %, 불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사람이 72.1 %. 115명 중에서 정상인 사람은 겨우 24명(19%)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1999년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 검진결과

질병 종류

빈도(명)

비율(%)

비고

위장관계 질환

48

41.7

 

간장질환

31

27.0

B형 간염 바이러스 양성자 11명(9.6%). 해고 이후 9명 증가.

근골격계질환

15

13

 

호흡기계질환

2

1.7

 

비뇨기계질환

23

20.0

 

순환기 질환

2

1.7

심방세동 1명, 고혈압 1명

소음성 난청 의심

21

18.3

 

그러나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들에게 진정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몸에 닥친 질병이 아니었다. 더 이상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예전과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것은 평생을 부정당하는 가장 끔찍한 고통이었다. 필자는 1999년 당시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의 변화를 정리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빈곤화가 급격히 진행되었으며, 대책으로 소비를 극소화시키거나 기존의 저축을 소진하거나 또는 빚을 지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아내들이 부업을 나섰지만, 그것으로는 기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부부관계와 자녀양육과 교육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부 노동자는 이혼을 하였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꺼려지기 시작하였다. 자신감이 없었다. 갈수록 고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위장질환, 고혈압, 두통, 치질 같은 증상 외에도 심리 불안이 나타났다.

분노, 사기저하, 자아 상실감, 우울 등. 장기간에 걸친 농성과정에서의 불규칙적이고 질 낮은 식사, 찬 잠자리와 숙면을 취할 수 없었던 환경, 경제적 빈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감, 가족을 위한 사회적 지원의 부재, 해고투쟁의 과정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로 인한 장기간의 인생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필자 역시 인터뷰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그런데,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만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는 아니지만, 해외의 연구가 있다. 핀란드는 1991년과 1996년 사이에 심각한 경제불황이 닥쳤으며, 1991년에 6.6 %였던 실업률이 1993년 16.6 %로 증가하였다.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총 22,430명의 노동자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대규모로 구조조정을 경험한 사업장(전체 노동자중 18 % 이상의 인원이 감축된 경우)의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경험하지 않은 사업장 노동자들에 비해 심혈관계질환에 의한 사망이 4년간 5.1배나 높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은 해고의 시기에 겪은 스트레스와 함께 해고 이후 부족한 인원에 의해 증가된 업무량에 의한 스트레스가 중첩되면서 노동자들이 사망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결론내렸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나라에도 딱 들어맞는다. 두산중공업이 바로 이러한 대표적 사업장이었다. 2003년 배달호 열사의 분신을 전후하여 두산중공업에서는 과로사와 자살, 그리고 중대재해가 끊이지를 않았다. 지금도 검색창에 두산중공업 과로사라고만 치면, 당시의 서러운 이야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살아남은 것이 살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리해고는 분명한 살인이다.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살아남은 노동자 모두에게 정리해고는 살인이다. 제발 노동자와 그 가족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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