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경제,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등 경제지들은 경주 발레오전장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전국 최초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노사 상생’, ‘조합원들의 결단과 양보’, ‘5년 무분규가 만든 합의’ 등으로 이 합의를 포장하는데 앞장섰다.

회사의 뜻대로 정기상여금을 통째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데 합의한 노조는  ‘발레오경주노동조합’, 2010년 금속노조 탈퇴 후 다수노조를 점하고 있는 기업노조다.

발레오 경주 현장 분위기는 언론 보도와 달랐다. 정연규 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비상대책위원장(아래 비대위장, 지회는 노조파괴 당시 이름을 지키고 있다)은 “2010년 금속노조를 탈퇴한 뒤 숨죽이고 살았던 현장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회사와 회사가 앞세운 어용노조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회사와 복수노조의 임금체계 개편 등 2014년 임단협 합의 발표 이후 일부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재교섭을 요구하며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윤희용, 여인수 기업노조 조합원[편집자의 말: 지회 조합원과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호칭을 ‘동지’라고 붙입니다.]을 만났다. 이들은 ‘노사상생의 정신을 보여준 합의가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을 철저히 무시한 일방 합의’라며 현장의 반발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4년만의 첫 단체행동

“통상임금은 전 사회 큰 이슈다. 강기봉 사장은 합의 이후 전국 중소기업을 돌아다니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사례를 자랑하고 다닌다. 이대로 그냥 둘 수 없었다”는 것이 여인수 동지가 서명운동에 나선 이유다.

이번 합의에 따르면 회사는 지금까지 발레오만도 현장노동자들에게 지급하던 정기상여금 700%를 모두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 회사는 기존 상여금 중 500%를 성과연동 상여금으로 바꿔 지급하겠다고 한다. S부터 D등급까지 조합원들을 평가해 7개 등급으로 나눠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

S등급을 받은 노동자는  상여금 700%를 받지만 D등급을 받은 노동자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회사는 나머지 200%는 설날과 추석에 각각 100%씩 지급하겠다고 한다. 윤희용 동지는 “기존에 받던 임금을 평가해서 지급한다는 것은 근로조건을 저하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은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7월7일 경주 발레오전장은 어용노조와 회사의 임금체계 개편 합의에 반발해 재교섭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한 노동자들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이 서명에 기업노조 조합원 250여 명, 절반이 넘는 조합원이 참여했다. 평가와 감시 등 회사의 탄압과 불이익을 감수한 현장 노동자들의 첫 입장 표명이다. 경주=강정주

윤 동지는 “복수노조가 생긴 뒤 처음으로 기업노조가 올해 교섭 전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묻고 찬반투표를 한다고 얘기했다. 기업노조는 결국 임단협 교섭을 회사에 백지위임한다고 하더니 바로 회사가 이 내용을 발표했다”고 직권조인 과정을 설명했다. 윤 동지는 “회사가 설명한 자료 외에 기업노조가 단체협약 문구를 어떻게 합의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 번도 단체협약을 본 적이 없다. 실제 성과상여금이라는 것을 어떻게 지급할지, 어떤 별도 합의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평가를 통한 상여금 차등 지급은 지금껏 회사가 복수노조를 앞세운 현장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복수노조 설립 이후 회사는 성과금을 평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상여금과 마찬가지로 7등급으로 나눠 지급하고, D등급을 받으면 기존 단체협약으로 보장하던 학자금 마저 지급하지 않았다.

평가는 관리자가 했고 현장 노동자들은 기준을 알지 못했다. 현장에서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이라고 밝힌 사람은 무조건 D등급이었다. 기존 성과금, 학자금 차등지급에 이번에 변경한 상여금 지급 기준대로라면 S등급과 D등급을 받은 사람은 최고 연 4천7백여 만원의 임금 차이가 난다.

평가성과금, 평가상여금…노동자들 목 조른다

정연규 지회 비대위원장은 “생계비, 연공제 개념이 다 무너졌다. 모든 것은 회사 기준으로 평가하고 일자리, 생계를 가지고 장난친다”며 “조금이라도 회사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탄압한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돈으로 현장을 통제한 것.

여인수 동지는 “재교섭 요구 서명 받기도 쉽지 않다. 서명에 이름을 올리면 회사 눈 밖에 난다. 평가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서명 하나 하는 것도 큰 결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재교섭을 요구하는 서명에 250여 명의 현장 노동자가 동참했다. 기업노조가 조합원이 460명이라고 밝히고 있느니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서명을 한 것이다.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까지 포함하면 3백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합의에 반발하며 재교섭을 하라고 요구했다. 회사와 어용노조의 일방 탄압을 더 두고볼 수 없다는 첫 표현이었다. 현재 상황에 분노한 노동자 1백 여 명이 금속노조 지회에 다시 가입했다.

여인수, 윤희용 동지는 이 서명을 자신들의 기업노조인 ‘발레오경주노동조합’에 전달했다. ‘발레오경주노동조합’은 ‘집행단위 절차가 있음에도 서명을 받은 점, 조합원 서명에 다수의 금속노조 조합원이 포함된 점, 시기적으로 조합원들의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킨 점’ 등을 이유로 재교섭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바로 이어 회사는 점심시간에 서명을 받고 피켓 선전전을 한 행위가 사규를 위반했다며 두 동지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어용노조 본질을 똑똑히 보여줬다”

정연규 지회 비대위장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현장 노동자들이 서명을 하고 금속노조 지회에 다시 가입했다. ‘노조’라는 자들은 조합원의 요구를 묵살하고 회사는 징계 협박을 하며 기업노조에 대한 반발을 차단하고 있다”며 “어용노조와 회사의 관계를 더욱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인수, 윤희용 동지는 회사가 노조 활동에 개입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고소하고 현장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정 지회 비대위장은 “회사가 지회를 파괴하고 어느 정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현장을 만들면 멈출 줄 알았다. 하지만 4년이 지나면서 갈수록 현장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임금체계를 대법원 판결이 나자마자 준비했다. 어용노조는 회사의 의도를 관철하는데 좋은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비대위장은 “이대로 둔다면 무엇을 더 빼앗아갈 지 알 수 없다. 이것을 느꼈기 때문에 현장에서 작지만 저항의 움직임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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