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공사가 다시 시작된 지 여러 날이 지났다. 밀양 어르신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경찰의 호위 아래 52개 공사현장 중 14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어르신들이 논밭을 돌보지 못하고 투사가 되어 계절을 보낸 지도 8년 째다.

며칠 전 신문에 실린, 추위를 피하느라 얼굴 전체를 덮는 모자를 쓰고 눈만 내놓은 밀양 할머니들의 사진에서 십여 년 전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원주민 반군 ‘사파티스타’가 떠올랐다.

사파티스타의 상징인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을 가리고 스키마스크를 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지를 지키며 살아온 토착민,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봉기까지 감행했던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농민들의 이야기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내용마저도 밀양의 농민들과 닮아있다.

그저 내 땅에서 농사짓고, 선조 때부터 지켜왔던 산천을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바람, 평생 일궈온 땅에 대한 대가가 돈 몇 푼의 흥정거리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그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숨을 던져야 했던 아픔은 먼 나라 멕시코에서 십 수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자 바로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사파티스타가 세계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던 것처럼 밀양의 어르신들도 자연과 생명, 땅을 지키려는 이들의 상징이 되고 있다.

정부는 ’정말 송전선로를 거기다 지어야 하는 걸까’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조차 변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장 송전선로 공사를 끝내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사태라도 날 것처럼 시민들을 겁박한다.

물론 답은 아니다. 전기를 생산할 신고리 원전 3,4호기를 완공하려면 아직 몇 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안전이 생명인 핵발전소에서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통과된 부품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 공사가 중단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고 부품 성능시험을 다시 했지만 역시 불합격되어 부품을 모두 교체하려면 2017년이 되어야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한다.

당장 내년 여름철 전기수급을 걱정하며 송전탑공사를 강행해야 한다던 정부의 말은 이미 명분을 잃었다. 게다가 핵발전소를 완성하더라도 기존의 송전선로를 이용해 전기를 송전할 수있다.

지금 정부는 2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MB 정부 때 세웠던 50여 기 넘는 핵발전소 추가건설 계획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핵발전소 추가건설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 세계가 탈핵을 선언하고 핵발전소 전력비율이 75퍼센나 되는 프랑스조차 2025년까지 50퍼센트로 줄이겠다는 마당에 유독 한국은 핵발전소 추가건설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핵발전소 추가건설이 예정되어 있는 한 제2, 제3의 밀양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처럼 발전소가 한 곳에 집중되어 대단지화 되고, 전력소비지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구조에선 전력공급의 안전성 역시 담보하기 힘들다.

제2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참여한 이들은 분산형 발전시스템을 권고하고 있다. 지금처럼 서해안, 인천, 울진 강원, 고리 등 몇 곳에 발전소가 집중되는 구조가 아니라 각 소비지 근처에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 이용요금도 차등화해 발전소 가까운 지역에선 조금 더 저렴한 전기를, 먼 지역에선 더 비싼 전기를 사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기의 혜택은 먼 대도시 사람들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산간 마을의 어르신들이 당하는 지금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며 또한 생산된 전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님비(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영어 문장의 약자. 공공시설이 필요해도 내가 사는 곳에 짓는 것은 반대한다는 뜻)는 송전탑 건설을 막아서는 밀양 어르신들에게 할 말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을 거부하는 도시의 정책결정자들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닐까.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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