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토요일 밤마다 하는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 애청자가 됐다. ‘인간의 조건’은 휴대전화 없이 살아보기, 쓰레기 만들지 않기, 원산지 확인하고 먹기, 자동차 타지 않기 등등을 개그맨들이 일주일간 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녹색연합 같은 환경단체들이 지구와 환경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고 늘 주장했던 내용들을 개그맨들의 재치와 유머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물 없이 살기’ 편에서 출연자들은 하루 20리터의 물만 갖고 생활한다. 우리나라 1인당 하루 물소비량이 335리터 정도인데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양으로 하루하루를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엔 부족하다 아우성이었는데, 살아보니 20리터로도 살 만하다며, 물을 남기기까지 한다. 물을 아껴 쓰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공부도 열심이다.

물 절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것. 이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말을 하겠지 했는데, 다행히 물 부족 국가는 잘못된 정보고 물 스트레스 국가라는 식으로 정정을 해준다. 물 스트레스 국가라는 말 역시 여러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하지만 그래도 물 부족 국가 운운하지 않아 다행이다.

유엔이나 유엔 아래의 어떤 기구도 ‘물 부족 국가’ 같은 걸 정한 바가 없다. ‘물 부족 국가’라는 건 인구문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한 사설연구소에서 인구증가와 물이용과의 관계에 관해 연구하면서 우리나라가 꾸준히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걸 가정한 뒤 수년 뒤에 물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인구는 낮은 출산율로 인해 증가는커녕 감소를 걱정해야 한다. 물 사용량도 노후한 수리시설이 현대화하면서 1990년대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400리터가 넘다가 최근 300 리터 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물 절약을 강조하기 위해 ‘물 부족 국가’를 이야기하는 게 뭐가 문제 되냐 싶지만, ‘물 부족 국가’를 강조하는 맥락 속엔 물 절약 보다 물이 부족하니까 물을 가두는 대형 댐을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숨어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며 계속 주장한 것도 ‘물 부족 국가’였다. 물이 부족하니까 흘러가 버리는 강물을 보(댐)로 막아 두자는 것.

우리나라엔 높이 15미터 이상의 대형 댐이 무려 1,200개가 있다. 개수만으로도 세계 7위 규모이지만, 밀도로는 세계 1위의 댐 건설국이다. 이렇게 많은 댐이 있어도 홍수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가뭄이 들 때마다 곤란을 겪는 지역이 또 생기는 걸 보면 댐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이미 오래전에 증명됐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지리산 댐을 비롯해 4대강 수계에 6개 대형 댐과 8개 소형 댐 등 14개를 2021년까지 건설하겠다고 한다. 예산만 3조 5천억 원이다. 1억 8000톤 정도의 부족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데, 이 양은 수도권 시민들이 샤워 한번만 안 해도 줄일 수 있는 양이다.

정말 물이 부족하다면 물을 절약하고 효율적인 사용을 권하는 일에 나서야 할 일이지, 생태와 환경, 문화를 모조리 수장시켜 없애버리는 댐을 하나 더 지어 해결할 일이 아니다. 댐 짓는 일을 계속 해야만 조직이 유지되는 수자원공사를 위해 또다시 세금이, 환경이, 누군가의 고향마을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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