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노란봉투 캠페인 홈페이지(www.socialants.org)에 접속해 4만7000원의 후원금을 결제했다. 이 캠페인은 파업 이후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쌍용자동차 노조와 철도노조 등을 돕기 위해 1만 명이 4만7000원씩 내 4억7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으자는 운동이다.

1차 모금을 시작했을 때부터 내용은 알고 있었다. 멋진 아이디어라고, 월급을 받으면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당장 취재해야 하는 현안들과 쌓이는 기사들을 처리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났고, 4만7000원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기억의 밑바닥 어딘가로 밀렸다.

그러던 중 이효리의 4만7000원을 알게 됐다. 한 주간지에 실린 어느 주부의 사연을 접한 이효리가 직접 꾹꾹 눌러쓴 편지와 함께 꼬깃한 4만7000원을 노란봉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 앞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어딘가로 밀렸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곧바로 노란봉투 캠페인 홈페이지에 접속해 4만7000원을 보냈다. 믿음직하지 않은 기억을 더 이상 믿을 순 없었다.

공개된 편지에서 이효리는 한 주간지에서 실린 어느 주부의 사연에 울었다고 말했다.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이 주부는 해고자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자 자녀 학원비를 아낀 4만7000원을 편집부에 보냈다. 이효리는 “그 편지가 너무나 선하고 순수해서 눈물이 났다. 그 편지는 너무나 큰 액수라, 또는 내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모른 척 등 돌리던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한 한 주부의 공감이 이효리의 공감을 부른 것이다. 사회적 사건에 대한 참여를 꺼리는 연예계 분위기에도 용기를 낸 이효리의 공감의 힘은 엄청났다. 모금 시작 보름 만에 목표했던 4억7000만원이 모였고, 2월 25일부터 2차 모금이 시작됐다. 해고로 이미 죽음과도 같은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국가와 회사가 평생 벌어도 모으기 어려운 47억원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결국 이들에게 또 한 번의 죽음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의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흔히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편에서, 그들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보다 크게 전하는 데서 언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법원이 정리해고에 반대해 농성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조에 4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회사와 경찰에 물도록 판결했을 당시, 다수의 방송 뉴스들은 법원 판결의 문제를 짚기는커녕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보도를 한 쪽도 법원 판결을 단순하게 전달했을 뿐, 쌍용자동차 노조의, 해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 판결을 바라보지 않았다.

사실, 이런 모습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하며 170일 파업을 벌인 MBC노조에 대해 사측은 노조와 집행부를 상대로 19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이 지난 1월 공정방송 또한 근로조건이라고 인정하며 원고 패소 판결을, 즉 MBC노조의 파업이 정당하다고 밝혔지만 MBC 사측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항소를 선택했다.

노동자로서,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이들에게 불감당의 돈을 내놓으라고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는 언론사에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철도노동자들의 아픔에 왜 공감하지 못하냐고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처럼 ‘공감력’이 떨어지는 언론이 언론으로 존재해도 좋은 걸까. 당장의 내 일이 아닌 누군가에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건 삶에 바쁜 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얘기를 접한 한 순간의 일일지 모른다. 예민한 촉수로 잊히는 아픔을, 기억을 상기시키는 존재가 필요한 이유다. 그 역할을 언론이 아닌 한 주부가, 그리고 이효리가 했다. 도대체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 사회의 공기(公器)를 자부하는 언론에 존재의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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