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전후 언론, 특히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를 보며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내용은 하나밖에 없다. 주민들이 “내 시체를 밀양시청 광장에 놔 달라”(10월 1일 MBC <뉴스데스크>)라고 울부짖고 “죽는 한이 있어도 (송전탑을) 막아 내겠다”(10월 2일 SBS <8뉴스>)고 버틸 만큼 거센 저항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뿐이다.

반대의 이유, 물론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난 3일 SBS <8뉴스>에 따르면 주민들은 “송전탑이 동네와 너무 가까워 전자파 피해가 우려되고 집이나 땅도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사를 막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진 밀양 송전탑 전문가협의체 관계자라는 대학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밀양 송전탑 공사는 국제 기술수준에 맞춰 하는 것으로, 민가가 있으면 다 비켜가게 설계가 돼 있다고 한다.

또 지난 2일 KBS <뉴스9>의 기획 리포트에 따르면 “밀양만 빼고 주변 지역 주민들은 이미 다 송전탑을 짓는 짐을 졌고, 그 수도 밀양의 두 배가 넘는” 상황일 뿐 아니라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지 못할 경우, 3조원을 들여 건설한 원전을 전력난이 빤한 내년 여름에도 가동할 수 없다”고 한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일련의 보도들을 챙겨 본 시청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님비(NIMBY)’, 다시 말해 ‘내 뒷마당엔 안 된다’는 이기심의 전형이라는 결론 아닐까.

▲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될 전기를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한 세계최대 규모인 765kV 밀양 송전탑 공사가 공권력 투입을 통해 강행되는 가운데, 10월 2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앞에서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 대책위원장인 김정회씨와 부인 박은숙씨,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 조성제 신부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에 돌입한 김정회씨 부부 곁에 아이들이 오자 김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뒤이어 나오는 보도들은 하나의 결론 같은 추측을 더해줄 것이다. 지난 3일 KBS <뉴스9> 보도에 따르면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방해하다 연행된 이들 가운데는 주민보다 환경단체 등 외부 인원이 더 많고” 공사 반대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보라색 조끼 차림의 통합진보당 당원들”(10월 3일 MBC <뉴스데스크>)이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쯤 되니 “밀양 지역 원로들이 외부인들은 (밀양에)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하는”(3일 MBC <뉴스데스크>) 호소문까지 발표했다고 한다.

자기 집 앞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걸 혐오하는, 그러나 순진한 시골 어른들이 모든 일에 정치 논리를 앞세우는 외부인들, 그것도 국회까지 잠입한, 북한을 조국으로 섬기는 ‘종북’ ‘빨갱이’ 놈들까지 붙은 외부 집단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머릿속 의혹들을 사실처럼 포장하도록 넌지시 부채질하는 그런 보도들 말이다.

이런 가운데 무심코 눈길을 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 머릿속 의혹은 확신으로 무장한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지난 6일 <뉴시스>는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에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무덤’으로 불리는 구덩이를 파고 여기에 목줄을 걸어놓았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다음날인 7일엔 ‘무려’ <조선일보>가 1면 기사에서 같은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결론을 내린다. 부르지 않아도 언론들이 대기하고 있는 아침 회의석상에서 짐짓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종북 세력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이 가세해 갈등이 격해지고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이들 세력은 제주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등이 문제가 될 때만 되면 나타나 개입,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갈등 조장에 앞장서 왔다.” 몇 마디 말을 받아 적기 위해 일찍부터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은 줄줄이 기사를 써낸다. “밀양 송전탑 반대하는 민폐세력, 현장서 떠나라”(10월 8일 <파이낸셜뉴스>), “밀양 송전탑 시위에도 종북 세력 가세”(10월 8일 <뷰스앤뉴스>)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을 말이다.

이른바 ‘통합진보당 구덩이 목줄’ 보도를 쓴 기자가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는 다른 언론의 보도가 나오지만, 밀양 송전탑 사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이들에게만 전달될 뿐이다. 밀양 주민들과 반대 대책위 등이 기자회견까지 열며 사실 관계의 왜곡을 지적하고 언론에 항의해도 이런 목소리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곳은 많지 않고, 밀양의 갈등과 폭력만 전했던 지상파 방송과 구독률 상위를 다투는 신문에선 더욱 그렇다.

그렇게 언론은 밀양 주민들을 두 번, 세 번씩 죽이고 있다. 전체의 이익(전력 공급)에도 내 집 앞만은 안 된다는 이기심을 무장한, 그러나 외부세력에 휘둘릴 만큼 순진하고 어리석은 밀양 주민들을 말이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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