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5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사흘 정도는 침대에 누워 혈관으로 흘러들어오는 약을 맞으며 자는데 시간을 다 쓰더니, 나흘 만에 회복세에 접어들며 에어컨 빵빵한 병실에서 밀린 책과 TV를 보면서 호텔팩이 아닌 병원 패키지 휴가라도 온 듯 상황을 즐겼다.

심지어 나흘째 되던 날 같은 병실을 쓰던 이들이 모두 퇴원하면서 4인실 병실을 혼자 사용하게 됐다. 덕분에 간호사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자정까지 꿋꿋하게 TV를 시청할 수 있었고, 대부분 VOD로 보던 <썰전>(JTBC)을 오랜만에 본방으로 마주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날의 <썰전> 시청 뒷맛은 씁쓸했다. 병원 패키지 휴가에선 반갑지 않은 자각을 던져준 탓이다. <썰전>을 구성하는 코너 중엔 ‘위클리 포토제닉’이라는 게 있다. 제작진이 매주 화제가 된 사진을 선정하면 패널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과 강용석 변호사가 그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코너로, 이날 방송에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수만의 촛불시위 현장을 담은 사진이 등장했다. 이날 이 코너에 특히 주목한 까닭은 진행자인 김구라 씨의 발언 때문이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촛불시위를 하면 지상파 방송에서 보도할 법도 한데 관련 뉴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였는데, 그 원인을 두고 논쟁을 벌이던 중 강용석 변호사는 ‘촛불시위 동원론’을 사실인양 단정했다. 매주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시민의 수가 늘어나는 데 대해 “동원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 “내가 (국회의원 시절) 해봤는데 장외집회는 다 동원한다. 70~80%는 동원 인력” 등의 발언을 단정해 뱉었다. 이철희 소장은 물론 김구라 씨마저도 “기본 인식에 문제가 있다”,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동원하냐”고 반박했지만, 강 변호사는 계속해서 근거조차 대지 못하는 자신의 주장을 사실인 양 우겨댔다.

지난 2010년 7월 이른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반나절 만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제명된 이후, 무소속 의원이 된 강 변호사는 스스로의 위치를 ‘저격수’로 자리매김하며 당시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박원순 시장 아들에 대해 퍼붓던 병역비리 의혹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강 변호사는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대 총선에서 낙마했다.

성희롱과 거짓 의혹 제기, 낙마. 통상의 경우라면 그의 정치인생은 끝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아무리 원해도 주변의 정치인들이 그를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부끄러운 이력을 스스로 희화화하고 전직 국회의원이라는 흔치않은 이력을 지렛대삼아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들을 하나 둘 꿰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씩 보수 주류와는 ‘아주 약간의’ 온도차가 있는 말들을 한 마디 툭 던지면서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썰전>에서의 국정원 촛불시위와 관련한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공세를 이어갈 당시 “포기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 뒤 보수 진영의 질타가 이어지자 “어떤 사안에 대한 시선이 약간 다른 것일 뿐, 강용석이 어디 가겠나”라고 말하며 그들을 다독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정원 시위는 동원”이라는 근거 없는 얘기를 사실처럼 주장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방송을 통해 성희롱 이력을 세탁하는 동안 그는 단 한 차례도 자신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아나운서 성희롱과 관련해선 자신의 책에서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아나운서 출신의 방송인 박지윤 씨와 함께 출연하는 것만으로 모든 죄의 사함을 받은 것처럼 군다. 그러면서 방송 인기를 발판삼아 정계 복귀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아무렇지 않게 슬쩍 흘리고 있다.

이 모든 게 바로 그가 출연하는 방송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무리 시청률을 생명처럼 여기는 방송이라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한 단 한 마디의 진실한 사과도 하지 않은 이를 화제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끌어들여 ‘세탁’해주고 있는 지금의 방송들은 과연 정상일까. 그리고 방송으로 스스로를 세탁하고 있음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 변호사의 모습은 그대로 좋은 걸까. 그간 강 변호사의 방송을 아무렇지 않게 재미로 지켜봤던 나의, 그리고 대중의 망각이 무섭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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