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생명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와 21명이 사망한 요양병원 화재참사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이익추구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보여줬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고 국가적 과제임이 새삼 부각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국가개조 수준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정작 내놓은 것은 의료민영화정책과 규제완화책이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영리자회사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이다. 영리자회사는 외부 영리자본이 투자도 할 수 있고, 이익배당도 받을 수 있는 회사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의 영리추구를 금지하고 있는데 환자를 대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다.

영리자회사를 통해 외부 영리자본이 환자와 국민들을 대상으로 돈벌이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의료기관이 급속히 영리화, 상업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도 늘어나게 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 듯이 외부 영리자본이 병원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서는 병원운영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결국 의료기관의 비영리 원칙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병원은 수익추구를 노리는 영리자본의 투자처로 변질되는 것이다.

환자가 돈벌이 수단인가

영리목적의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금까지는 병원이 본업인 의료사업 말고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은 장례식장이나 편의점, 식당, 주차장 같은 환자편의시설로 국한했다. 수익추구를 할 수 없도록 부대사업 범위를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는 호텔업, 여행업, 국제회의업, 건물임대업, 목욕장업, 운동시설업, 식품판매업 등 수익목적의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늘렸다. 한마디로 병원을 쇼핑몰, 여행사, 호텔,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를 대상으로 수익 추구하는 쇼핑몰과 숙박업소, 부동산투기장으로 변하고 만다.

최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국민 69.7%가 의료민영화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리자회사 설립에는 68.6%가, 수익목적의 부대사업 확대에는 66.6%가 반대했다. 정부가 법 개정도 하지 않고 여론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의료민영화정책을 추진하는데 대해 국민 74.1%가 반대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병원이 돈벌이 투자처가 되면 과잉진료가 판을 치게 되고, 이에 따라 의료비가 폭등하는 대신 의료접근성은 떨어지고 의료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겠다던 정부가 의료민영화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바로 재벌 자본의 엄청난 압력 때문이다. 재벌 자본들은 보건의료산업을 미래의 성장산업이자 먹거리산업으로 정해놓고 엄청난 투자와 기술개발을 해왔다. 보건의료분야를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돈벌이 투자처로 만들기 위한 길닦기 작업을 해온 것이다. 여기에 부응하는 것이 의료민영화정책이고 규제완화정책이다.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의료선진화로 포장하고 있지만 의료민영화정책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재벌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재벌특혜정책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한 재벌특혜

정부는 규제를 암덩어리이고 쳐부수어야 할 적이라고 얘기했다. 규제에는 나쁜 규제도 있지만 착한 규제도 있다. 보건의료분야에서 영리추구를 금지하는 규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착한 규제이고 꼭 필요한 규제이다. 이런 규제는 완화할 것이 아니라 더 강화해야 한다.

병원비가 없어 아들이 아버지 산소호흡기를 자르고 일가족이 투신자살하는 비극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국민 누구나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고, 건강보험료만 내면 굳이 암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 같은 사보험에 들지 않아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률을 62.5%에서 90% 수준으로 높이는 일, 이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선진국의 경우 병원의 80% 이상이 공공병원이다. 의료상업화가 가장 발달한 미국조차 공공병원이 25%인데 우리나라 공공병원 비율은 5.9%밖에 되지 않는다. 공공의료를 더 확충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진료를 허용하거나 새로운 의료기기와 의약품 출시 절차를 간소화해서 환자들을 실험용 마루타로 만들 것이 아니라 방문진료를 활성화하고 엄격한 기준과 심사를 통해 최고 수준의 환자안전을 실현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의료민영화정책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부르는 국민대재앙이다. 돈보다 생명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의료민영화를 저지하라”는 것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들어 의료민영화정책 폐기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해 싸우는 이유이다.

나영명 /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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