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및 법률사건 지원을 하다보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잘 해결된 사건보다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내 접어야 했던 사건이 대개 더 기억에 남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당시의 답답함과 분노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이 그 기억과 함께 떠오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노동청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노동부 노동청 산하 고용지원센터가 몇 년 전 고용안정센터라는 이름이었을 때, 그 곳에서 해고된 두 젊은 여성이 법률센터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명인 Y는 일반사무보조 및 민원접수업무를, 다른 한명인 L은 고용보험 홍보 및 전산화업무를 담당하다가 각각 1년 3개월 및 1년 4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 작년 초 새롭게 바뀐 노동부의 상징. 노동부는 현재 고용노동부로의 명칭 및 직제 개편을 추진 중에 있다
Y는 입사 시 근로계약서도 쓴바 없었습니다. 5개월 정도 근무하던 어느 날 팀장이, 그저 형식일 뿐이라며 연말까지를 계약기간으로 하는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해 연말이 되어서야 Y는 사업장 내부 규정상 일용직 신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예산문제 때문에 매년 연초에는 집에서 잠시 대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알았습니다. 휴가다 생각하고 20여일을 쉰 뒤 다시 출근명령을 받고 복귀하여 6개월여를 더 근무하던 중 갑작스런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L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입사 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이후 몇 차례 더 쓴 사실만 다를 뿐 계약서는 역시 형식일 뿐이라 들어 당연히 계속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계약서를 갱신 작성할 때마다 서류상으로는 소속 부서가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동일했습니다.

그저 예산 때문이라며 별다른 해고사유조차 듣지 못해 더욱 억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후임자가 채용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재입사일로부터 1년이 안되었기 때문에 퇴직금도 없다는 기막힌 얘기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노동청을 상대로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다

사용자인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관할 행정관청인 서울지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뭘 물어도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참으로 서늘하고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연초 20여일의 기간은 사용자의 사정에 따른 대기기간으로 볼 수 없어 실질적인 퇴사 이후 재입사라며, 재입사 후 1년이 되지 않아 퇴직금이 발생되지 않는다면서 종결처리 되었습니다.

애초 퇴직금만 받으면 정리할 생각이었던 당사자들을 설득했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해보자, 해고의 부당성부터 다퉈 보는 것이 맞았다, 어차피 자기네 노동청이 피진정인인데 진정사건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왔겠느냐, 그래서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제기했습니다.

쟁송절차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싸움이다보니 원래 다소간의 사실 왜곡이나 상대방에 대한 과장된 비난 등이 있게 마련이라 웬만해선 사측 서면을 보고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만, 서울노동청이 제출한 답변서를 보다보니 정말 욕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예산은 어디서 났는지 외부 노무사까지 선임하여 대리 작성한 서면에는 일반 사기업체들이 부당해고 사건에서 늘 해대는 꼭 같은 주장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입사 시 충분한 설명을 했다느니 계약갱신은 당사자의 자의에 따른 실질적인 퇴사 이후 재입사였다느니, 퇴직 시 작성한 기밀유지 각서가 사직서에 준하는 증거라느니, 웬만한 악덕사용자 뺨치는 거짓주장들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고노부’(苦勞部)?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기각되었습니다. 법원까지 갈 생각하고 시작해야 되는 절차이고 언론 활용 등 법 외적인 수단들도 고민해볼 사건이라고 얘기를 했었지만 내심, 사용자가 노동청이니만큼 적정하게 화해가 되겠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노동청의 태도는 변함이 없고 노동위원회에서도 기각이 되고 보니 당사자들의 무력감은 역설적이게도 더 단호해졌습니다. “노동부가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서 노동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이제 노동청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더 이상의 설득이나 자문은 초라하고 무의미했습니다.

지난 2월, 노동부를 고용업무 중심으로 개편하는 노동부 직제 개정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전환하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노동부’를 아예 ‘고용주부’라고 대놓고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아니, '고용노동부'(약칭 ‘苦勞部’)로 이름이 바뀌면 “노동자에게 고통을 주는 부서”라는 실질은 오히려 더 잘 살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 노동계와는 아예 등을 지고 서서, 연일 각종 재계모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다니며 뻘소리를 해대는 자가 노동부의 장관인 것이, 뭔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2010년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박성우/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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