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려는 조합원들은 치밀하고 일사불란했다.

그러나 물리력을 가진 경찰의 움직임은 만만치 않았다. 경찰은 염호석 열사 유지를 받들려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을 마치 첩보극을 벌이듯 막아서고 따돌렸다.

경찰은 5월18일 18시20분 ‘부친의 112 신고를 받았다’며 신고 10분 만에 3백여명의 대규모 기동대를 동원해 서울의료원에 안치한 열사의 시신을 탈취했다. 노조가 이미 생부와 생모로부터 장례절차에 관한 위임장을 받은 상태였지만 경찰 기동대는 영문을 모르는 25명의 조합원을 연행하며 진압에 나섰다. 경건해야 할 장례식장에 난입해 활극을 벌이는 경찰을 보다 못한 생부가 “이런 상황은 아니다”라며 철수를 요구했지만 막무가내였다.

▲ 5월18일 19시 시신 탈취를 위해 서울의료원 발인실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찰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충돌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18일 20시께 열사의 시신을 모시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구급차가 향한 곳은 부산 행림병원 장례식장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을 비롯한 부산양산지역 노조 조합원들이 열사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입체적으로 움직였다.

확인 결과 행림병원 장례식장은 속임수였다. 예약이 취소된 사실을 안 조합원들은 부산양산 전 지역 장례식장과 추모공원을 탐문했다.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예약 건이 행림병원을 비롯해 동시다발로 확인됐다.

경찰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합원들은 서울번호판을 단 구급차와 경찰 정보관들도 추격했다. 경찰은 예약된 장례식장에 몰려있다 순식간에 사라지길 반복했다. 다수의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다 휴게소에서 차를 갈아타기도 했다.

결국 19일 오전 7시30분 부산 행림병원 빈소가 다시 예약된 것을 확인하고 조합원들은 열사의 부친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 화장은 21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속임수였다. 20일 새벽 행림병원 빈소에 열사의 시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합원들은 여러 팀으로 나눠 다시 움직였다. 하늘공원 매장 소식을 확인하니 영락공원에서 화장예약이 돼 있었다. 다시 부산 영락공원 화장 예약을 확인했지만 조합원이 도착해 보니 예약이 취소돼 있었다.

밀양 공설화장장이 유력하다는 연락이 왔다. 선발대는 20일 11시30분께 화장장 입구에서 경찰 기동대 버스를 추월했다. 뒤따라온 조합원들과 화장장에 들어서 보니 이미 경찰 정보관들이 깔려 있고 열사의 부친으로부터 장례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열사의 고모 입회 아래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 5월20일 밀양 공설화장장에 출동한 경찰 기동대. 염호석 열사의 시신은 이리저리 옮겨진 끝에 공설화장터에서 화장됐고 경찰기동대는 신변보호를 핑계로 미리 출동해있다. 부산양산지부 제공

오후 12시30분에 도착한 열사의 생모가 왜 경찰들이 막아서냐고 묻으니 경찰은 “부친의 신변보호 요청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경찰은 부친과 조합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신변보호를 위해 출동한 셈이다.

열사의 모친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112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이번엔 경찰차 1대가 30분 뒤에야 도착했다. 모친은 “내 신변보호를 해 달라. 노조도 보호해 달라”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은 아들의 유서내용을 지키며 분골이라도 받겠다는 모친을 힘으로 가로막고 분골실로 향하는 문을 잠궈 버렸다.

심지어 형사들은 조합원 팔을 꺾고 머리채를 잡아 끌어냈다. 부친에게 “신변보호를 강력히 요청하시는 거죠?”라며 수차례 다그치듯 묻는 경찰에게 한 조합원이 열사의 어머니 의사는 묻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물어볼 필요 없다”라며 “나중에 알아서 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경찰은 열사의 부친을 신변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최루액을 난사하며 진압에 나섰고 분골을 빼돌리는데 성공했다.

경찰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 배경에 대해 조합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안미진 지회 남부교육선전위원은 “우리 조합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물리력을 가진 경찰을 넘어서긴 어려웠다”며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누구겠는가”라고 되물었다.

▲ 5월20일 밀양 공설화장장에 출동한 경찰 기동대는 열사의 분골만이라도 달라는 조합원을 최루액을 난사하며 진압했다. 경건해야 할 화장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열사의 생모는 경찰의 완력에 막혀 분골에 접근도 못했다. 부산양산지부 제공

정명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 총무는 “우리가 찾아간 장례 예약 병원마다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고 밝혔다. 정 총무는 “유족이 수많은 장지와 화장터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며 첩보작전을 벌이듯 움직이기는 불가능하다”라며 “결국 경찰 작전 뒤에는 삼성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추정했다.

남문우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아들의 유언대로 해달라는 어머니의 절규를 폭력으로 짓밟고 고인의 뜻을 더럽힌 경찰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며 “삼성 또한 이 같은 만행을 벌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 수석부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임단협 쟁취, 민주노조 사수 투쟁 승리라는 열사의 유지다. 금속노조는 열사정신을 이어 투쟁하겠다. 투쟁에서 승리하는 날 열사를 가슴에 묻겠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 은수미, 이미경, 장하나 의원 등은 5월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염호석 열사 문제에 대한 삼성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을지로위원회는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탄압, 근로기준법위반, 헌법위반, 유서 내용과 위배되는 장례절차에 문제가 있는지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을지로위원회는 22일 11시 경찰청 차장과 면담해 염호석 열사 시신 빼돌리기 등 장례절차에 경찰이 과도하게 개입한 경위 등을 확인하고 자료를 보충해 2차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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