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문자가 옵니다. 문자를 확인하기 전에 항상 긴장합니다. 누군가 또 다치고 죽었다는 소식은 아닌지.” 이경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장은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말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지난 한 해 열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죽음의 공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 4월9일 현대제철지회는 두 번째 노사합동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회사가 안전상황실에서 지난 달 안전점검 당시 대의원들이 개선을 요구했던 55건 사항에 대한 처리 과정을 보고하고 있다. 당진=김형석

현대제철지회는 연이은 사망사고 이후 노사 합동 안전점검을 고민했다. 정현철 지회 노동안전부장은 “지난해 사고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에 대해 고려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라며 노사합동 안전점검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지회는 지난 3월부터 회사와 공동으로 현장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현장 지회 대의원과 지회 간부, 회사 관리자들이 월 1회 전체 공장을 돌며 지적 사항을 찾고 개선을 요구한다. 4월9일 두 번째 노사합동안전점검을 진행했다. 제강공장 대의원들과 회사 관리자들은 오전 9시30분 안전상황실에 모였다. 회사는 지난 달 안전점검 당시 대의원들이 개선을 요구했던 55건 사항에 대한 처리 과정을 보고했다. 아직 개선하지 않은 사항은 어떻게 조치할 예정인지 보고하고, 조치 방안에 대해 대의원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 4월9일 오후 현대제철 당진공장 노사는 현장 안전점검을 벌였다. 현대제철지회 대의원이 제강공장 외곽을 돌며 안전 미비사항을 지적하고 있다. 당진=김형석

오후 현장 점검을 이어갔다. 지난 달 점검 당시 현장 내부를 점검해 4월 안전점검은 제강공장 외곽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김홍식 대의원은 슬러그 야드장을 돌면서 “야드장에 설치한 조명이 켜지지 않는 것이 있다. 작업할 때 스팀이 생겨 시야가 가리는데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회사에 제기했다. 소음, 분진, 작업장 안전대 미설치 등 대의원들은 현장 곳곳의 문제점을 상세히 설명하고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장 제일 잘 아는 우리가 문제 찾는다”

김홍식 대의원은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문제를 직접 제기할 수 있으니 좋다. 제기한 문제에 대해 회사가 어떻게 개선하고 있는지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답변도 바로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경식 대의원은 “회사 안전팀이 있지만 현장 문제를 제일 잘 아는 것은 직접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회사는 못 찾는 문제점을 조합원들은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의원은 “공장 입구에 분진 빨아들이는 차가 다닌다. 회사는 분진 제거 설비가 있으니 좋다고 하지만 소음이 너무 심해서 그 곳을 오가면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미칠 지경이다”라며 “오늘 그 차량이 다니는 위치에 가서 소음 문제를 제기하고 설비를 바깥으로 뺄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 4월9일 현대제철지회 대의원들은 소음, 분진, 작업장 안전대 미설치 등 현장 곳곳의 문제점을 상세히 설명하고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점검에 나선 대의원이 제강공장 내부를 지나고 있다. 당진=김형석

박경식 대의원은 “한 곳에서 일하다보면 노동자들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익숙해져 그러려니 한다. 이렇게 대의원들, 회사 관계자들이 현장을 보면서 눈으로 위험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민철 대의원은 “대의원 전체가 공장을 같이 돌아보니 내가 몰랐던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 안전점검 시작하고 나서 조합원들도 자신들이 느꼈던 문제를 찾아와서 많이 얘기한다”고 말했다.

회사와 안전점검을 하기 전 대의원들은 미리 현장 조사를 하면서 문제점을 찾는다. 조합원들에게 일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김민철 대의원은 “개인적으로 개선을 요구할 때는 언제 처리가 될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조합원들에게 처리 사항을 보고하니 좋아한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김 대의원은 “두 번째 안전점검이지만 한 달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지난 달 내가 일하는 부서에서 지적사항이 가장 많았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낀다”고 안전점검 이후 상황을 설명했다.

▲ 4월9일 이경연 현대제철지회지회장이 "지금까지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사후 관리만 해왔다. 사고났던 곳에서 다시 사고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애초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사전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전점검을 시작했다"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당진=김형석

“안전사고 남의 일이 아니다”

대의원들은 누구보다 열악한 현장 상황에 대한 문제와 안전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박경식 대의원은 “내가 일하는 부서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 안전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일하면서 항상 사고가 터지면 어디로 도망갈지,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의원은 “회사는 친환경제철소라고 말하지만 제철소 밖으로 분진을 나가지 못하게 할 뿐, 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분진, 먼지, 가스를 필터가 돼서 걸러내는 상황”이라며 “회사가 대규모 설비투자만 하면 분진, 가스 문제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작은 것들만 보완하고 설비투자는 안하려고 하니 개선이 더디다”고 지적했다. 김흥식 대의원은 “안전은 하루이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꾸준히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전점검을 꾸준히 진행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4월9일 정현철 현대제철지회 노동안전1부장이 "지난해 사고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에 대해 고려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라며 노사합동 안전점검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당진=김형석

정현철 지회 노안부장은 “수차례 얘기해도 진척 없던 문제들을 회사가 개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회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예산을 배정하지 않은 개선사항에 필요한 예산이 늘고 있다”고 안전점검 이후 변화를 말했다. 안전점검은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 노안부장은 “오늘 점검을 할 때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왔다”며 “이 내용 위주로 현장 점검을 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동안 문제를 느껴도 말도 못했던 비정규직 동지들의 고충을 같이 듣고 바꿔나가려 한다”고 이날 점검 과정을 설명했다.

생산제일 NO. 안전제일 현장으로 바꿔야

지회는 현장 안전점검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며 이후 비정규직지회와 같이 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 노안부장은 “최근 하청업체인 한국내화에서 산재은폐 문제가 있었다. 회사에 책임자 처벌 요구하고 고소고발을 진행한 상황”이라며 “산재은폐 문제와 지회가 개입하기 어려웠던 공장 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에 대한 고민을 넓혀갈 것”이라고 이후 계획을 설명했다.

▲ 4월9일 현대제철 한 하청업체에서 긴급구호 훈련을 하고 있다. 당진=김형석

이경연 지회장은 “지금까지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사후 관리만 해왔다. 사고났던 곳에서 다시 사고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애초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사전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전점검을 시작했다”며 “안전 문제에 있어 노사가 없다. 조합원들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지회장은 “물리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이 안전의식, 안전에 대한 경각심 갖게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늘 생산제일을 요구했다. 이러다보니 조합원들도 생산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안전에 대한 의식이 얕았다”며 “이것을 바꿔야 한다. 안전제일, 안전 우선인 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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