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18일 통상임금에 관한 2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갑을오토텍 사건)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라는 제목을 달아 마치 노동계가 승리한 것처럼 보도했다. 슬프게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매우 반(反)노동자적인 판결이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은 스스로 법해석기관이기를 포기하고 정치적 판단을 하는 입법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입법부라고 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임금청구권을 소급해 제한할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미 발생한 권리마저도 신의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았으니, 그야말로 대법원은 초헌법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 통상임금의 의미를 ‘소정근로시간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축소 해석하고, 고정성 요건을 매우 협소하게 설정

② 구체적으로 ‘지급될 것이 확정’되었는지 여부는 ‘가산임금 산정시점(=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한 날)’을 기준으로 판단

③ 복리후생비(설·추석 상여금, 하계휴가비, 선물비, 생일자지원금 등)가 일할 지급되지 않고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자에게만 지급되는 경우 고정성이 없는 것으로 봄

④ 지급액을 결정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 없이 사후에 노사협의를 통해 지급액을 정하는 경우에도 고정성이 없음

⑤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경우라도 그 최소한도로 지급이 보장된 금원은 고정성 인정

⑥ 중도 퇴직자에게 근무 일수에 따라 일할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참고: 일할지급에 대한 규정이나 관행이 없는 정기상여금의 경우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라면 통상임금성 인정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으나,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배척한 것은 아니고 보도자료상으로 정기적인 지급이 확정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했으므로, 계속 다툴 필요가 있다.)

⑦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수당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합의는 무효이나 정기상여금 부분의 경우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신의성실의 원칙상 소급분 청구가 제한될 수 있음.

위 내용 중 그나마 노동자 측에 유리한 것은 ⑤번 정도인데, 과거에 가족수당 중 본인 분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설시한 법리를 임금 일반에 확장한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노동자 측에 유리한 것은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칙 적용 요건

가. 신의칙과 임금청구 사건
‘신의칙’이란 민법 제2조(신의성실)에 근거가 있다. ‘법률관계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상의 원칙이다.

대법원은 노사관계에서 이러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사용자의 인사명령권, 단체협약 상 징계에 관한 노동조합의 동의(합의)권, 해고관련 소송에서 실효의 원칙 등에 주로 적용해 왔고 개별 근로자의 임금청구 사건에서 노동자의 청구를 배척하는 근거로 적용하지 않았다. 근로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청구함에 있어 어떤 권리남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법원은 사용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다수 의견은 신의칙을 전면 적용했고, 보충의견은 보다 적극적으로 다수 의견을 옹호하고 있다. 13인의 대법관 중 오직 3인의 대법관만이 다수 의견에 대해 “민사법 영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하게 신의칙의 적용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에 대해 “대법원이 앞으로 시행할 노동정책까지 고려해 현행 법률의 해석을 거기에 맞추려 한다면 이는 법해석의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도 자신들이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점은 스스로 알고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의 요건
위 대법원은 ① 정기상여금에 한해 ② 이 판결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가 무효임이 명백하게 선언되기 이전에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정했는데 근로자가 그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③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될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과거 발생한 임금청구는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제시한 위 요건에 대하여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돼야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적절하게 비판했다.

임금청구 사건에서 노동자 측의 청구를 배척하면서 그 근거로 신의칙을 든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신의칙이 적용되는지 여전히 매우 모호한 상태다. 이는 다수의견을 적극 지지한 보충의견도 “이 판결을 통해 신의칙 위반의 법리가 처음 판시된 것이어서 이 사건에 관한 원심의 심리가 충분하지 못한 탓에 위 주장의 당부에 관해서는 환송심에서 다시 심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법리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개별 요건을 명확히 구체화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큰 틀에서 일반적인 요건을 제시하면 그 판결에 따라 하급심 법원이 판단을 하고 이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판단해 법리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분할 지급된 퇴직금의 성질에 대한 대법원 2010년 5월20일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과 업무방해죄에 대한 대법원 2011년 3월17일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도 그러했다. 즉,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기상여금에 기초한 통상임금 소송(소급분)이 신의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매우 정치적인 판단을 한 점에서 부당하지만, 그 요건을 구체화한 것은 아직 아닐 뿐 더러 이는 피고인인 사용자가 주장, 입증할 문제이므로 소송에서 이를 미리 포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마치며

이번 대법원 변론과정에서 노동자 측은 현재 한국의 노동관계법 체계상 장시간 근로를 억제할 사실상 유일한 수단은 법정 가산수당이라고 수차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통상임금을 적법하게 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 요건을 너무 협소하게 설정하였을 뿐 아니라 신의칙을 매우 기이하게 적용하면서 근로자들의 임금채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

이어지는 소송에서 위 대법원 판결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점을 중심으로 계속 치밀한 주장을 해야 할 것이고, 소송 외에 현행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임금체계를 변경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김태욱 노조 법률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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