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업계에서 세상에 수많은 상품이 존재하고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보통 의미가 있는 경쟁구도는 2각 혹은 3각 구도라고 한다.

한국시장의 단적인 예를 들자면 가전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2각 구도로 이루어져 있고, 스마트폰의 경우 애플, 삼성, LG 등 3각 구도다. 많아봐야 자동차처럼 현대기아, 한국GM, 르노, 쌍용 등 4각 구도다.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에서 세 곳의 경쟁사, 많아봐야 네 곳의 경쟁사가 존재하게 되는 이유는 놀랍게도 사람들은 머릿속에 비슷한 개념을 보통 넷 이상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여하튼 보통 시장에서 1, 2, 3등 기업이 존재하게 된다.

시장에서 No.1, 1등 기업은 자신들이 하던 대로 새로운 시장의 질서를 계속 만들고 2등 기업은 1등을 그대로 따라하면 되니 쉽다. 예를 들어서 스마트폰 시장의 <갤럭시>와 <옵티머스>를 보라.

먼저 삼성이 기존 피쳐폰 시장의 브랜드였던 ‘애니콜’을 버리고 ‘갤럭시’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하자 엘지 역시 ‘싸이언’이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옵티머스’라는 브랜드를 도입했다. 삼성이 ‘갤러시노트’라는 5인치대 사이즈를 개발하자 엘지는 뒤따라 ‘뷰’라는 제품으로 따라온다. 최근 삼성이 가로로 휘는 스마트폰을 출시하자 엘지는 뒤질세라 세로로 휘어지는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말 그대로 시장에서 No.2는 1등만 따라가면서 조금씩 개선하면 되니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이 매우 쉽다. 이는 정치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회에서 1등, 여당은 새로운 정책이나 아젠다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해야 하지만 2등, 야당은 비난하면서 살짝 개선책을 내세우면서 따라가면 된다. 마케팅에서든 정치권에서든 No.2, 2등 기업은 사실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문제는 No.3, 3등 기업이다.

3등 기업은 1등과 2등 사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1등 기업 처럼 시장을 선도하지도 못하고 2등 기업처럼 재빠르게 따라가지도 못하니 취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통 3등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저가격정책 말고는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 이 광고가 마음을 울리는 점은 펜텍이라는 회사가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비록 지금은 No.3의 자리에서 기업의 존망이 풍전등화의 위치에 있지만 자신들의 열정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을, No.1이 될 것을 믿는다는 이들의 당당함이 마음을 울린다.

국내 타이어 시장을 예로 들자면 압도적인 No.1 한국타이어와 이를 뒤따르는 No.2 금호타이어의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No.3 넥센타이어는 취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는 “신발보다 싼 타이어”처럼 저가격 정책뿐. 문제는 이런 저가격 정책, 즉 일종의 틈새시장 전략은 No.3로 계속 머무르면서 이럭저럭 현상 유지는 할 수는 있지만 No.2를 따라잡고 No.1이 될 수 있는, 즉 시장의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전략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 애플과 삼성이라는 양강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튼튼해 보이던 북유럽의 노키아도, 캐나다의 블랙베리도 소리 소문 없이 쓰러져 나가 떨어졌다. 대만의 HTC는 한국시장에서 철수해 버리고 소니 에릭슨도 사업을 접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와중에 최근 기업의 위기설이 대두된 펜텍의 베가 기업PR은 단번에 눈길을 끈다. 이병헌을 모델로 써서 제품광고를 지속하면서 ‘베가 넘버6’의 장점으로 ‘메탈소재로 테두리를 만들었다’, ‘선명한 대화면이다’를 이야기해왔다. 새로 온에어한 기업PR TV CF는 모델 이병헌이 비 내리는 벌판을 홀로 달리면서 이런 나레이션이 흐른다.

“17년 전 우리의 꿈은 단 하나, 세상 가장 멋진 폰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17년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질주를 멈출 수 없는 건 오직 휴대폰 하나만 바로보고 달려온 우리의 열정이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VEGA.”

이 광고가 마음을 울리는 점은 펜텍이라는 회사가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비록 지금은 No.3의 자리에서 기업의 존망이 풍전등화의 위치에 있지만 자신들의 열정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을, No.1이 될 것을 믿는다는 이들의 당당함이 마음을 울린다. 결코 자유주의적 해적 정신의 애플이나 총돌격 정신으로 자본과 노동을 마구잡이로 투입해 결과물을 뽑아내는 삼성이 담지 못하는 절박함이 묻어나기 때문.

기업이든 노동조합이든 스스로에게, 대중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특히 정당이나 노동조합은 대중에게 더욱솔직해야 한다. 벌써 세상의 이슈에서 뒤로 잊혀 지는 듯한 느낌이 나는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녹취록 하나를 증거라고 들이 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국정원의 논리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일부세력이나 시민들까지 동조하는 이유는 국정원의 논리에 동의한다기보다 그동안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솔직하지 못한 모습, 아닌 척 하는 모습에 대한 실망이며 반작용이다.

시장에서 No.3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스스로 소수인 것을 인정하고, 하지만 곧 다수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펜텍의 베가처럼.

김범우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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