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3일이면 대구지부 상신브레이크 정준효 지회장이 해고된 지 만 3년째다. 2010년 직장폐쇄와 금속노조 탈퇴는 정 지회장 뿐 아니라 상신브레이크 노동자들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놨다. 2010년 8월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해 10월 지회는 전집행부 사퇴 후 보궐선거를 진행했다. 새롭게 당선된 집행부는 금속노조 탈퇴 총회를 진행, 결국 가결됐다.

이어진 소송에서 당시 해고된 노동자 다섯 명 중 네 명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지회가 제기한 금속노조 탈퇴 총회 무효소송도 2심까지 지회가 승소해 대법 판결을 앞두고 있다. 당시 직장폐쇄가 불법이었다는 판결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아직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 12월11일 공장 앞에서 대구지부 상신브레이크 정준효 지회장이 퇴근 선전전을 하며 퇴근하는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2월13일은 정 지회장이 해고된지 만 3년이 되는 날이다. 대구= 강정주

금속노조 탈퇴 총회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둔 시점. 지난 11월 조선, 동아일보 등 언론에서는 상신브레이크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탈퇴를 강하게 원한다는 기사가 났다. 당시 기업노조 위원장은 그 신문기사를 인쇄해서 현장 곳곳에 붙여놓기도 했단다. 하지만 상신브레이크 노동자들의 말은 달랐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가 직접 우리 권리를 찾고 노조를 바꾸겠다.”

직장폐쇄 후 3년, 세상이 달라졌다

상신브레이크는 2011년 노사발전재단과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연 ‘2011년 노사파트너십 프로그램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정 지회장은 “3년 연속 임금 백지위임, 무파업이라면서 노사 관계가 좋다고 얘기한다. 노조랑 회사가 공단에서 급식 무료봉사 하면서 이미지 쌓기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얘기를 들은 A조합원은 “지금 회사에는 ‘회사, 기업노조, 조합원’ 이렇게 세 부류가 있다”며 “그 중에 기업노조랑 회사만 사이가 좋다. 조합원은 완전히 배제된 파트너쉽이다”라고 꼬집었다.

B조합원은 “직장폐쇄 종료 뒤 3년은 금속노조가 있던 10년과 완전히 달랐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공장이 됐다”고 토로했다. 예전 같으면 현장에 문제가 생기고 불만이 있으면 어떻게든 의견을 전달하고 해결을 했다. 하지만 지금 노동자들은 조용히 일만하는, 생산량 높이는 데만 필요한 사람이 됐다. 회사는 지회와 협의하고 결정해야 했던 일들도 지금은 모두 마음대로다. B조합원은 “계열사가 생기든 기계를 반출하든 다 회사 마음대로다. 물량, 부서이동도 미리 공지하거나 의견 묻는 과정 없이 하루아침에 회사가 결정한 대로 그냥 밀어붙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조합원은 “예전에 정년 보장이 됐지만 이제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다. 다들 불안해한다”고 덧붙였다. 혹여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회사의 관리 대상이 된다. 괴롭힘도 감수해야 한다. C조합원은 직장폐쇄 당시 공장 앞 천막을 찾아갔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이 됐다. 해고자들을 만나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자 일부러 어려운 일을 시키고 괴롭혔다고 말했다.

▲ 상신브레이크 현장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 조합원이 정준효지회장에게 지회 소식지를 받아보고 싶다는 카톡을 보냈다. 강정주

인터뷰를 위해 모인 조합원 너나 할 것 없이 ‘아플 권리가 없다, 아파도 일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D조합원은 “예전 지회 사무실에 가면 칠판에 산재 환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요즘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사고가 안 나거나 아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딘가 부러지거나 입원해야 할 정도가 아니면 모두 공상 처리하거나 따로 치료받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우리는 아플 권리도 없다”

D조합원은 “붕대 감은 사람도 일 시킨다. 아파서 진료 받으러 병원가도 다시 들어오게 한다”고 회사의 행태를 고발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어깨가 다쳤는데도 일주일 만에 다시 출근했다. 왜 나왔냐고 물어보니 관리자가 “얼른 나와라. 그 정도면 일할 수 있지 않냐”고 하도 괴롭혀서 나왔다고 했단다.

최근 현장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한 지 3일밖에 안된 노동자가 작업 관리자의 실수로 사고를 당했다. 이 노동자는 오른 팔을 아예 못쓰게 됐다. E조합원은 “내가 몇 시간이고 안전교육을 시켰던 사람이다. 시키면 안 될 일을 시키다 그 지경이 됐다”며 “그런데도 회사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E조합원은 “이게 다 생산량만 제일로 치는 회사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생산물량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2천4백개 생산하던 제품을 지금은 6천개 이상 만들고 있단다. 잔업, 특근을 해도 맞추기 어려울 물량을 8시간 근무 중에 뽑아낸다. “시간 당 노동강도가 엄청 세졌어요. 물량은 늘고 연장근무는 줄고. 일을 많이 하는데 실질 임금은 줄어드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니까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늘 현장을 돌며 통제하는 현장 관리자 때문이다. D조합원은 “생산량을 너무 따지니까 신경을 너무 많이 쓰게 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라며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상황을 전했다. “직장, 반장들이 수시로 현장 왔다 갔다 하면서 감시 하는데 지회가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회사 다니는 재미가 없습니다.” 삭막해진 현장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온다. 회사 눈치, 관리자 눈치, 어용노조 눈치, 심지어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 눈치까지 보는 게 요즘 일상이다. 정 지회장은 “직장폐쇄가 남긴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사이에 불신이 생긴 것이다. 노동자들이 서로 의심하고 적대적인 관계가 됐다. 지회 있을 때 같은 동료들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안타까움을 말했다.

“회사 다닐 재미가 없다”

이날 모인 조합원들은 술 한 잔을 편히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직 금속노조 간부가 다른 조합원한테 술 한 잔 하자고 얘기해도 득달같이 관리자가 쫓아와서 무슨 얘기 했냐고 묻는다.” “탈의실에서 방금 한 얘기가 바로 회사 귀에 들어간다. 업무 관련 얘기 외에 어떤 얘기도 편하게 할 수가 없다.” “술집에 들어와도 누가 있나 살펴보는 게 습관이 됐다.” 한 조합원은 요즘 현장은 ‘암흑’이라고 표현했다.

고통 속에 숨죽이고 있던 현장에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올해 대의원 선거는 20개 선거구 중 14개 선거구에서 경선을 치렀다. “상신브레이크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라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기업노조와 대의원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을 담은 노동자들의 행동이었다.

회사의 작업도 대단했다. ‘쟤네 찍으면 예전일 되풀이 된다. 노조 2개 생긴다’는 협박을 하며 기업노조 반대쪽 후보를 찍지 못하게 했다. 선거 운동 당시 지회 전직 간부였던 두 조합원은 하루 종일 회의실에 감금돼 있기도 했다. 다른 조합원들을 만나지 못하게 한 조치였다. 14명 중 6명이 당선됐다. 조합원들은 이것도 큰 성과라고 얘기했다.

▲ 상신브레이크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말고 민주노조 할겁니다. 개별로 싸우지 않고 뭉쳐서 노조를 바꿀겁니다”라고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을 말했다. 대구= 강정주

올해 임금단체협상 찬반투표도 한 차례 부결됐다. 정 지회장은 “상신브레이크에 노조가 생기고 찬반투표를 한 이래 처음으로 부결이 된 것”이라며 “임금 인상분이 부족해서 반대를 찍은 사람들도 있지만 회사와 노조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합의안과 상관없이 반대를 찍은 조합원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바꾸자”

현재 해고자들은 공장 출입을 하지 못한다. 해고가 부당하고 조합 사무실 출입이 정당한 권리라고 법원이 판결했지만 회사는 공장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통근버스는 회사 안으로 바로 들어가고, 해고자를 만나면 바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서 현장과 소통이 쉽지 않다. 정준효 지회장은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고 말한다. “지회 소식지를 받고 싶다고, 카톡으로 소식지 보내달라고 문자오는 조합원들이 있습니다.”

이날 모인 조합원들은 직장폐쇄 기간 체불임금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 조합원 중 60여 명이 참여했다. A조합원은 “직장폐쇄가 불법이고 그 기간 임금 지급하라고 판결했어요. 그런데 회사는 노사협의회 열어서 판결이 잘못된 거라면서 어용노조한테 소송 못하게 말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소송에 참여하면 회사가 불이익을 줄 것이 뻔했지만 많은 이들이 모였다. 체불임금 소송은 우리 권리를 직접 찾겠다고 일어선 의미라는 것이 조합원들의 설명이다.

지난 3년 동안 조합원들은 노조가 무엇인지, 노조는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금속노조 탈퇴 이후 기업노조가 보인 태도가 이 같은 생각을 더 확고하게 했다. “지금 있는 기업노조는 노조가 아니다. 그냥 회사 총무과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그냥 앵무새처럼 조합원들한테 와서 그 얘기를 전달한다. 회사가 잘못하는 걸 방패막이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산재를 당해도, 부당하게 부서 이동을 당해도 노동자들의 얘기는 안중에도 없는 노조다.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한테 노조는 우산 같은 존재죠. 공장 안에 내가 제일 믿을 구석. 지금은 현장 불만을 해소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들의 바람은 예전 같은, ‘진짜 노조’를 다시 현장에 세우는 것이다. “어용노조 말고 민주노조 할겁니다. 개별로 싸우지 않고 뭉쳐서 노조를 바꿀 겁니다.” 상신브레이크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파괴에 맞선 투쟁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