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1일 새벽 6시30분.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사방이 하얗게 밝았다. 평택시 칠괴동 눈 덮인 쌍용자동차 공장이 보기엔 꽤나 운치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차들이 쌓인 눈길에 위태로워 보였다.

아직 인적 드문 이른 시간인데도 공장 정문에서 쌍용자동차지부 ‘거점’으로 이어지는 인도는 말끔했다. 동도 트기 전에 누군가가 쓸어놓은 모양이다. 눈 내린 추운 날씨에 출근길 동료들이 지부 거점 앞 인도만큼은 편하게 걸어 지나갈 수 있을 듯 했다. 지부는 평택역 근처에 사무실이 있고 공장 앞에 ‘지부 거점’이란 사무실을 별도로 내어 현장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 지부 해고 조합원들은 선전전 전날인 12월 10일 평택시 원평동에 있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에 모여 김밥을 말았다. 김형석

눈 묻은 빗자루가 기대서 있는 지부 거점 사무실 안은 고요한 바깥과는 달리 스티로폼 박스에 정문을 비롯한 공장의 네 군데 출입구 이름을 적고 나르는 지부 조합원들로 붐볐다. 출입구별로 담당을 확인하고 선전물과 박스를 나누는 모습이 활기찼다. 스티로폼 박스 안의 내용물은 전날 밤에 말아 놓은 김밥이다. 이날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수요 출근 선전전 날이다. 쌍용자동차지부(지부장 김득중, 아래 지부)는 11월 27일부터 매주 수요일 김밥판매를 겸한 출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 낮은 탁자를 길게 이어붙인 ‘작업 라인’에 지부 조합원뿐만 아니라 김밥말기에 연대 온 다양한 사람이 앉아 김밥을 말고 있다. 해고자 부인들이 쉴 새 없이 재료를 만들면 지부 살림꾼인 김정욱 사무국장이 주방과 ‘작업 라인’을 분주히 오가며 재료를 날랐다. 김형석

지부 해고 조합원들은 선전전 전날인 12월10일 평택시 원평동에 있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에 모여 김밥을 말았다. 21시경 찾은 와락 사무실은 ‘김밥 작업’이 한창이었다. 낮은 탁자를 길게 이어붙인 ‘작업 라인’에 지부 조합원뿐 아니라 김밥말기에 연대활동 온 다양한 사람이 앉아 김밥을 말고 있었다. 해고자 부인들이 쉴 새 없이 재료를 만들면 지부 살림꾼인 김정욱 사무국장이 주방과 ‘작업 라인’을 분주히 오가며 재료를 날랐다.

‘작업 라인’에 앉아 김밥을 말던 이영희 영화감독은 영화 ‘두개의 문’ 첫 시사회 때 이창근 쌍용차지부 실장을 만났다고 한다. “경찰의 폭력과 쌍용차 파업을 회상하면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쌍용차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마음먹었죠. 지금은 집을 평택으로 옮겨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과 일상을 촬영중이예요. 이들에겐 죽거나 살거나 하는 것이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 12월10일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어차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니까 동료들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을 고민중이에요. 조만간 비장의 깜짝 카드를 내놓을 겁니다”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김 지부장이 김밥에 넣을 밥의 간을 맞추고 있다. 김형석

라인에서 생산한 반제품 김밥은 참기름을 바르고 깨를 뿌리는 ‘도장공정’을 거쳤다. 고소한 깨와 참기름을 입은 김밥을 다시 적당한 크기로 썰어 은박지로 포장해 스티로폼 박스에 담는 식이다. 김밥을 썰던 김유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간사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는 제가 맡은 업무 중 하나였어요. 대한문 분향소 침탈 이후 225일 동안 매일 미사를 올리면서 일을 넘어 조합원들과 친해지게 된 거죠”라고 말하면서도 분주한 손을 멈추지 않는다.

▲ 김유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간사는 “처음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는 제가 맡은 업무 중 하나였어요. 대한문 분향소 침탈 이후 225일 동안 매일 미사를 올리면서부터 일을 넘어 친해지게 된 거죠”라고 말하면서도 분주한 손을 멈추지 않았다. 김형석

‘김밥 선전전’ 아이디어를 낸 이창근 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첫 주에 5백 줄로 시작했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안 팔리고 남으면 남은 김밥으로 해고자 끼니를 때우자고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공장 동료들이 너도나도 사주면서 모두 팔렸어요. 지난주 6백 줄에 이어 이번엔 9백 줄을 만들고 있어요”라고 상황을 전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돈을 남기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한 줄에 1천원이면 재료비가 더 비싼 셈이지만 공장 동료들과 무언가라도 나누자는 뜻이었죠. 우리는 동료들에게 선전물과 함께 김밥을 전할 수 있고 동료들도 이 정도의 보탬은 주자며 사가고. 서로 미안하지 않은 셈이죠”라며 흐믓해 했다.

▲ 12월11일 출근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출퇴근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빠짐없이 지부 선전물을 받아 쥐고 헤어졌다. 김형석

김정운 수석부지부장은 “첫날 매상을 계산해보고 놀랐습니다. 판매량보다 판매금이 훨씬 많았어요. 한 두 줄 가져가면서 1만원 이상 내는 동료들이 많기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음식을 나누듯 마음을 나누자는 뜻이었는데 이게 통했나봐요”라고 설명했다.

▲ 12월11일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날은 추웠지만 눈이 내려 풍경이 제법 푸근했다. 지부 조합원뿐만 아니라 쌍용차지부를 지원하는 수녀님 두 분까지 합세해 출근선전전을 시작했다. 김형석

김 수석부지부장은 “투박하게 만든 김밥이지만 맛도 기술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첫날은 밤 세워 새벽 다섯 시까지 만들었지만 오늘은 자정쯤 끝나겠네요”라고 설명하고 “첫 김밥 맛은 형편없었어요. 판매를 지속하면 동료들의 냉정한 맛 평가를 받겠죠”라며 크게 웃었다. 김 지부장도 “어차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니까 동료들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을 고민중이예요. 조만간 비장의 깜짝 카드를 내놓을 겁니다”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 지부장은 얼굴 한가득 반가운 웃음으로 동료들을 맞이한다. “OO아, 김밥 한개 사가. 잔돈 없다고? 괜찮아 그냥 가져가. 굶고 다니지 말아라.” 김형석

모든 작업을 끝낸 시간은 새벽 1시. 조합원들은 출근 선전전을 위해 서둘러 정리를 마쳤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간 쌍용차 평택공장. 날은 추웠지만 눈이 내려 풍경이 제법 푸근했다. 지부 조합원뿐만 아니라 쌍용차지부를 지원하는 수녀님 두 분까지 합세해 출근선전전을 시작했다.

“돈을 남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마음과 정을 남기고 싶습니다. 지난 5년이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나눔과 행복의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말이 아니더라도 출퇴근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빠짐없이 지부 선전물을 받아 쥐고 헤어졌다. 지부장은 얼굴 한가득 반가운 웃음으로 동료들을 맞이한다. “OO아, 김밥 한 개 사가. 잔돈 없다고? 괜찮아 그냥 가져가. 굶고 다니지 말아라.”

▲ 이들은 음식을 나누듯 마음을 나누며 공장 복귀 희망을 만들고 있다. 지부 간부들이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회사가 어떤 형태든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자신하는 이유다. 수요 선전전 중에 김정욱 사무국장이 물끄러미 출입구를 통과한 동료를 바라보고 있다. 김형석

쌍용자동차지부는 이날 850줄의 김밥을 판매하고 공장안 동료들에게 빠짐없이 선전물을 나눠줬다. 아침 선전전에 공장 동료들이 김밥을 가져가며 보태준 돈은 1백50만원이 넘었다. 공장 동료뿐 아니라 파업 중인 철도노조 동지들에게 김밥50줄을 전했다. 삼성본관 앞에서 농성중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지들에게도 김밥을 전달할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부 간부들과 공장 동료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침을 열었지만 오늘은 웃는 얼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김밥 품평을 한다. “오늘은 맛있어요?”라며 첫 주의 김밥 맛을 놀리는 동료도 있다. 출근하는 동료들이 아직 줄을 지어 들어가는 시간인데도 김밥은 남김없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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