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때 서구사회(정확하게는 서구의 주류 경영학계)는 일본식 생산방식을 두고 경외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식의 새로운 생산방식을 일컬었던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이 '21세기의 표준 생산방식이 될 것이고,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데' 큰 힘을 보탤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였던 제임스 워맥이 쓴 《생산방식의 혁명》이라는 책에 그대로 실려 있다. 당시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적합한 대량생산방식의 미래가 일본식 생산방식에 있는 걸 서구사회가 너무 몰라서 문제라는 친절한 해석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도요타와 혼다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본 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를 두고, 미국 언론은 온갖 가지의 딴지를 걸고 있다. 그 중에는 도요타 사장이 사과를 하는데 일본 특유의 90도로 허리를 굽히지 않고 45도만 허리만 굽혀서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과히 황당한 기사까지도 있다. 주류 언론이 전하는 말장난에 가까운 기사들은 하나같이 문제의 핵심을 여전히 가리고 있을 뿐이고, 도요타 사태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이다.

도요타 대량리콜사태는 한국 자동차사에게 과연 기회일까?

도요타의 위기는 한국 자동차사의 기회라는 기대를 담은 주장들이 곧잘 나온다. 물론 일본이 잘못되는 게, 우리에겐 나쁠 게 없다는 식의 말은 우리사회에서 쉽게 통용된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말은 값싼 민족주의 내지는 국수주의적 시각에 불과하다. 오히려 제임스 워맥이 이미 말했듯이 자동차 산업에서 일본식 생산방식은 이미 표준화된 생산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도요타 자동차의 최고경영자인 도요다 아키오 회장이 5일 밤 일본 나고야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의 대량 리콜사태에 대해 사과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먼저 적기생산방식(just-in-time production)이라고 일컬어지는 부품조달체계는 하청기업에 부품개발과 생산 및 관리까지 떠넘기는 생산방식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 한국자동차산업에서 가장 고질적 문제는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 지속적으로 행하는 부품단가 인하압력이다. 제품의 안정성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남이 개발한 기술을 원청기업이 자기 입맛대로 채택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품질의 안정성마저 의심되는 상황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게 도요타사태의 출발이다. 이 문제는 한국자동차산업에서도 역시 자유스러울 수 없고, 사실상 동일하거나 혹은 일본 보다 더욱 열악하지 않을까라는 반문도 든다.

다음으로, 일본식 생산방식에 서구기업의 경영진이 환호성을 올렸던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이다. 노조에 힘을 쏟기보다는 자신이 만드는 제품의 품질관리(QC)에 목을 매거나 묵묵히 일만 해대는 일본 노동자들을 두고 한편으론 '일벌레'라는 말로 폄하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노조를 중심으로 하여 노동시간 단축에 힘을 쏟고 있는 서구의 노동자들과 너무나 다른 일본 노동자들의 태도를 접하면서 서구의 경영진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경우에 따라선 과히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이른바 '강한 노조'가 자신들의 시야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서구 기업가들의 소망적 기대가 뒤섞인 결과에 불과하다. 자신들에 대응하는 노조가 제발 힘이 없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모범 사례로서 일본의 노사관계를 발견했을 뿐이다.

▲ 완성차 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신동준 편집부장
마지막으로 일본식 생산방식의 핵심은 인력비용절감을 핑계로 한 비정규 노동자의 증가이다. 값싼 노동인력을 제공해 줄 장치로서 비정규 고용형태를 만들었지만, 비정규 노동의 증가가 생산제품의 질의 저하로 나타날 것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예측마저도 지금까지 부정하여 왔다. 부당하게 차별받는 노동자들이 생산에서도 과연 협조적이고 창의적일 것이라는 전제는 지속 불가능한 걸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 내색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반면교사일가?

현재 일본식 생산방식은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다. 한국자동차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물론 누구는 우리의 경우 일본의 노조와는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완성차 노조는 일본처럼 결코 노사협조적이지도 않고 투쟁지향적이라는 사실을 들어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대기업 이기주의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더불어 노조운동의 무력화와 고립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본식 노사관계가 전 세계적인 표준으로 적용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자동차산업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주축을 이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합원 자격부여마저 어려운 현실이나 완성원청사와 하청기업들간의 부품단가인하(cost reduction: CR)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일본자동차사들의 위기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미래일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본자동차사가 처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비용절감에만 목을 매면서 원·하청기업 간 관계를 수직적 지배구조에서 수평적 거래관계로 수정하는 경제민주주의의 실현, 노동시장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비정규 노동자의 수를 제한하는 노동정책의 실행,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면서 노사관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필요할 뿐이다. 바로 이런 문제해결책의 제시 없이 노동자들이 성실하게 혹은 창조적으로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숨겨진 위기를 수면위로 띄우는 기폭제의 역할만 할 수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 현실에 대한 반성과 자성 없이 일본자동차산업의 위기에서 제발 제대로 된 교훈을 건질 수는 없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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