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숨 막히는 공장, 절망의 공장이죠.”

오늘도 숨 막히는 감시와 압박 속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동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2010년 직장폐쇄와 금속노조 탈퇴를 겪은 후 공장은 180도 다른 곳이 됐다. 20년 넘게 얼굴 맞대고 일하던 동료들은 적이 되거나 눈치 보며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먹고 살기 위해 그저 하루하루 견디는 수밖에 없는 곳. 그 곳이 내 일터라는 사실이 비참하고 슬프다. 발레오 경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공장 안 현실을 들어봤다.

▲ 발레오 경주 공장 안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인간 대우도 받지 못한다. 지회와 관계를 맺거나 금속노조 조합원과 얘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강정주

2010년 이후 달라진 것을 묻자 가장 먼저 엄청나게 높아진 노동강도를 꼽는다. “사람들이 일에 미쳤습니다. 정상적으로 일하면 절대 맞출 수 없는 물량을 만들고 있다니까요.”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서 일을 한다. 점심시간에도 일하고 2~3시간 잔업도 마다하지 않는단다. 잔업을 해도 잔업시간을 달아주는 것도 아니다. 조합원들은 ‘무료봉사’하는 거라고 표현했다. A조합원은 “오전 일 마치고 나면 시간당 목표 물량 현황이 떠요. 많이 부족하면 점심시간에 밥만 먹고 다시 들어와서 일하고, 어떻게든 목표치 맞추고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살인적 노동강도. 물량 맞추려 ‘무료봉사’

직장폐쇄 전 1천8백개 생산했던 제품을 지금 3천개 생산한다. 다른 제품도 보통 30~40%씩 생산량이 높아졌다. 무료봉사까지 하면서 물량을 맞추는 이유는 회사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다. “장갑 벗고 나가면 회사에 찍히지 않냐, 성과금 못 받게되면 어떡하냐고들 얘기해요. 서로 눈치보면서 한 명이 일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분위기가 되는 거죠.”

현장 노동자들에게 족쇄처럼 채워진 ‘등급’과 ‘성과금’이 이들을 불가능한 물량도 가능하게 하는 기계로 만들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성과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S등급은 성과금 200%, D등급을 받으면 성과금은커녕 학자금도 한 푼 받을 수 없다. 회사의 지시를 어기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당연히 C, D등급을 받게 된다.

조합원들은 이 등급에 기준이 없다고 말한다. 그냥 회사 말을 잘 듣느냐 아니냐가 기준인 셈이다. “회사 말 잘 듣는 사람들은 무조건 평점 올려주죠. 어떻게든 등급 잘 받으려고 1년 내내 눈치보고 죽었다 생각하고 사는 겁니다. 우리가 소고기도 아니고 A, B 등급으로 구분하는게 말이 됩니까.” 또 다른 조합원은 이 제도가 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드는 제도라고 불만을 토해냈다. “완전 조삼모사예요. 우리 임금 뺏어서 성과금 만들고, 그것도 자기들 마음대로 등급 매겨서 누구는 몇 천만원 받을 때 누구는 한 푼도 못받게 만들어놨어요.”

금속노조 조합원임을 밝힌 이들은 무조건 ‘D’ 등급이다. B조합원은 3년 동안 성과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B조합원은 “조합원들 평균 연령이 40~50대 예요. 자녀들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는데 학자금을 빌미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겁니다”라고 회사의 만행을 지적했다.

D등급 받으면 성과금, 학자금 없다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 직장폐쇄 철회 후 공장 안으로 들어갔지만 회사는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조합원들은 현장 근처에 가지 못하게 했다. TFT팀으로 부당 발령을 내 현장 노동자들과 철저히 분리시켰다.

▲ 발레오만도지회 해고자들이 공장 안에서 퇴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 강정주

“현장 사람들한테 금속 조합원들은 죄수처럼 피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식당에서 같이 밥 먹지도 못합니다. 우리랑 한마디 하거나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바로 관리자한테 불려가니까요.” 금속노조 지회에서 진행하는 일에 동참하거나 연락을 주고 받아도 바로 TFT팀으로 발령 난다.

조합원들은 TFT팀이 ‘유배지’라고 말한다. 물론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모두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무급휴직 2년 후 현장에 복귀했다. TFT팀으로 발령이 났다가 지난 봄 원래 일하던 부서로 복직했다. 그런데 통상임금 소송을 한다는 이유로 다시 TFT팀으로 발령 받았다. 이 조합원은 “소송하고 반항하면 어떻게 된다는걸 보여주는 시범 케이스”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그 날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오늘은 파레트 청소, 어느 날은 풀 뽑기, 어느 날은 화장실 청소. 회사 마음대로다. “공장 안에서 안해본 일이 없어요. 실외에서 일하는데 아무리 추워도 난로 하나 없고, 여름에 40도 넘는 날씨에 밖에서 일하다가 쓰러진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 C조합원의 설명이다.

“집에 가면 가장인 사람들입니다. 화장실 청소 시키고 회사 말 한마디에 여기저기 옮겨다닐 때는 정말 비참합니다.” 이 조합원은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하나’ 출근할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며 “예전에는 내 자리가 있었고 부당한 일 당하면 내 편 들어주는 노조가 있었는데. 이제는 출근하는 것이 스트레스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 자리 없는 공장, 비참하다

금속노조 조합원치고 징계 안당해본 사람이 없다. 경고장, 감봉은 기본이다. 한 조합원은 사용자노조 쪽 조합원에게 통상임금 소송을 같이 해보자고 얘기했다가 징계를 당했다. 당시 설비가 고장나서 라인이 멈춰있는 상황이었고, 별도 룸에 들어가 소송 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짧게 나누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본 관리자가 얘기를 들은 조합원을 포함해 라인에 있는 전직원에게 소송을 같이 하자고 얘기한 조합원이 작업을 방해했다는 진술서를 쓰도록 했다. 그 진술서를 근거로 감봉 2개월 징계를 결정했다.

▲ 발레오만도 해고자들은 벌써 4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농성장 앞에는 올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이 가득하다. 한 조합원은 공장장과 면담에서 해고자들이 법원에서도 부당해고로 판결났으니 복직시켜야 한다고 얘기했다가 경고장을 받았다. 강정주

D조합원은 황당한 경고장을 받았다. “공장장실에서 면담을 했다. 공장장이 회사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회사도 법, 원칙 지키고 법원에서 판결난 해고자들 복직시키라고 했다. 그리고 차별하지 말고 예전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가서 읽어보라면서 편지를 줬다. 경고장이더라. 이런식으로 하면 징계 대상이 된다는…….”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인간적인 대우도 하지 않는 회사 때문에 겪는 고통이 가장 크다는 말도 이어진다. E조합원은 억울하게 시말서를 써야 했던 일을 떠올렸다. 밖에서 페인트 벗기는 일을 하다가 약품이 얼굴에 튀었다. “페인트 벗기는 약품이니 얼마나 독하겠습니까. 그것 닦아내려고 화장실 갔죠. 그때 시간이 11시52분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관리자가 바로 쫓아와서는 점심 빨리 먹으려고 씻은 거 아니냐고 따지더라고요. 사유서 쓰라고 해서 결국 썼습니다. 너무 비참하고 억울합니다.”

감시, 차별, 징계…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공장에서 이들은 늘 감시 당한다. 공장 밖에는 감시카메라가, 현장 안에는 관리자와 사용자노조 사람들의 눈이 항상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누구랑 인사를 하는지, 대화를 나누는지 항상 지켜보고 바로 쫓아와서 경고를 한다.

F조합원은 “돈으로 차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간관계 다 깨지고 삭막한 분위기 만드는 것 때문에 다들 많이 힘들어한다”고 토로했다. 이 공장에서 20년을 일한 조합원이 모친상을 당했다. 금속노조 탈퇴를 거부한 조합원이었다. 사용자노조 조합원이 아니니 금속노조 지회에서 조합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것을 이유로 회사는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는 물품, 경조사비 지원 등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근조화환 하나 없었다. 관리자들은 현장에서 장례식장에 가지 말라고 얘기했다. 현장 노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20년 친구, 후배, 동료들의 관계가 이렇게 깨지고 있다.

한 조합원은 술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한다. “건물에서 떨어져 죽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회사에서 차별하고 개 돼지 취급하면서 감시하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술 없이는 잠을 못잡니다.”

현장에 존재하는 사용자노조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한 조합원은 “회사가 말하는 노조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합비 걷어서 하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금속노조 대응하는 변호사비나 내고. 회사 시키는대로 하는 하수인이지 조합원들 힘들어해도 뭐 하나 얘기하는게 없습니다.”

“회사 말만 듣는 노조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임금을 깎아도,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조합원들이 신음해도 반대 한 번 하지 않는 노조에 대한 신뢰는 없다. “우리는 노조 규약, 단체협약도 몰라요. 노조 사무실에 오면 보여준다고는 하는데, 복사도 못하게 하고. 그걸 누가 다 외울 수 있겠어요.”

얼마 전 조선일보에 ‘민주노총을 탈퇴시켜 주세요’라는 사용자노조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조합원들은 그런 생각은 정말 몇 명만의 생각일 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상황을 다 바꾸고 싶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공장 안에 있는 지회 사무실 모습. 회사는 지난 7월20일 '회사는 조합 업무 수행 가능하도록 조합사무실 비품 협조 8월5일까지 완료한다'는 합의를 했음에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회 제공

“현장에 있는 사람들 불이익이라는 족쇄 때문에 자기가 나서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다 얘기해요. 힘들어서 못살겠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민주노조 체계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합니다.” 한 조합원은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해고자들이 얼른 현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한 조합원은 “회사는 우리를 죄인취급하지만 현장 사람들은 우리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회사가 좋은 회사냐고요? 좋은 회사죠 사장한테는. 사장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 많이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정말 죽지 못해 다니는 곳이지 예전같은 내 일터라는 생각이 안듭니다.”

이날 만난 조합원들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공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가족같은 분위기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조요?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곳이어야죠.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사람같이 사는 그런 공장이 빨리 됐으면 하는게 우리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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