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인정 여부 결정권은 산재보상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독립적 권한이며 가장 핵심적인 업무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노동자의 보상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노동자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아야 하지만 욕을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제도의 좋은 취지와 다른 상반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적반하장,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이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반도체에 다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김경미(사망당시 29세)씨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산재인정 판결에 불복해 11월5일 항소했다. 이미 2011년 법원이 고 황유미씨, 고 이숙영씨에 대해 같은 판결을 내렸지만, 같은 해 공단이 항소심을 제기해 2년 넘게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는 산재보험제도의 취지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모든 고통을 산재노동자들과 가족에게 전가하는 황당한 조치다.

법원도 인정한 산재, 공단이 항소

금속노조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년 동안 전국 87개 사업장에서 발암물질 사용실태를 조사했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11년부터 현장에서 유해물질로 인해 암에 걸린 노동자들을 찾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다. 6차에 걸쳐 147명의 금속노동자들이 직업성 암 집단산재 신청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25명 산재승인, 69명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은 상태다.

▲ 근로복지공단이 걸어가야 할 길은 산재보험급여 지출을 줄이려고 기를 쓰며 시간만 끌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하루라도 빨리 일하다 병에 걸린 모든 산재노동자들의 한 맺힌 사정을 풀어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료사진>

노동자들이 현장의 유해물질로 인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직업성 암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유해물질들이 생산되고 유해물질로 인해 다양한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유럽 등 많은 나라 학자들의 의견이있지만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일부 암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하고 있다.

공단의 방침은 금속노조 집단산재 신청 결과에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직업성 암 산재 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1년 이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2년을 초과한 경우도 있다. 미처리 중인 건 중에 1년 이상 역학조사 진행 중인 건도 다수다. 특히 처리기간 지연사유가 “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 진행 중” 이란 것이다. 금속노조가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에 거듭 문제제기 하고 역학조사 개선을 요구 했음에도 “조사인력이 없다”,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를 채용하려 해도 응시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거듭 대고 있다.

불승인 사례를 보면 각종 발암물질 취급 사실과 복합적인 발암물질 노출 사실이 확인됨에도 “업무와 인과관계가 적을 것으로 사료된다”, “직업성 노출과의 관련성이 확립되지 않아 작업관련성이 적다고 판단됨” 등 관련 직업성 암 원인물질과 발병 경로가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자행하고 있다.

직업성 암 인정할 수 없다 버티는 공단

근로복지공단의 이 같은 불승인 결정은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진 발암물질 취급사실과 복합노출에 근거한 “상당 인과관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통해 내린 부당한 결정이다. 명백한 원인물질과 증거 없이 직업성 암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발암물질 노출에 따른 암으로 더 많이 병들고 수없이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 나중에 원인물질이 규명돼 WHO나 ILO 등 국제기관이 100% 명확하다는 결정이 내린 후에야 관련 직업성 암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직장에서 일하면서, 각종 유해물질로 인해 암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근로복지공단은 알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산재 승인, 불승인을 내리는 행정 문제가 아니다. 산재판정 하나만 믿고 있는 피해노동자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려운 상황을 무조건 견디라고 몰아치는 상식이하의 조치이다.

근로복지공단이 걸어가야 할 길은 산재보험급여 지출을 줄이려고 기를 쓰며 시간만 끌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하루라도 빨리 일하다 병에 걸린 모든 산재노동자들의 한 맺힌 사정을 풀어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현선/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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