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0일, 한국전력은 8개월 동안 중단했던 경남 밀양 765kV 송전선로 공사를 재개했다. 올해 말 완공하는 원자력발전 신고리 3호기의 송배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공사를 하지 않으면 올 겨울 전력대란과 대규모 정전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국 원자력발전 23기중 9기가 짝퉁 부품 납품, 잦은 고장으로 인한 정비 같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가동 중단된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도 아직 예비전력이 충분한데도 완공하지 않은 원전을 핑계로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한전의 말은 터무니없었다.

8년 동안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 온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 바쁜 농번기에 다시 산에서 ‘전쟁’을 치렀다. 젊은 용역들 앞에서 알몸으로 항의하고, 굴삭기 밑으로 작은 몸집을 구부리고 누워버리셨다. 공사를 강행하면 목을 매겠다고 줄을 매달았다. 이틀 동안 여덟 분이나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전과 정부는 ‘보상’을 더해주겠다는 말로, 마을 어르신들을 보상이나 바라고 시위를 벌이는 이들로 폄하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됐던 지난 8개월 사이 기존의 345kV선로를 이용하는 것이 기술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민들은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는 것이 정말 현실성 없는 일인지, 객관적인 검토결과가 나오면 받아들이겠다는 제안도 했다. 만나서 대화하며 상황을 풀자고 수차례 이야기했다.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한전은 마치 가장 농민들이 바쁜 날이 올 때를 기다렸다는 듯 공사강행을 결정했다.

765kV 송전탑은 높이만 고층건물 40층에 달한다. 바람 부는 날이면 탑에 걸린 송전선이 윙윙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고압의 전기가 오가는 시설이니 전자파에 대한 불안도 씻을 수 없다. 땅덩이가 넓은 나라도 아니고 나라와 나라를 통과하는 송전선로도 아닌데 이렇게 초고압의 송전선로가 필요한지 의문스럽지만 한전은 전기손실을 줄이기 위해 초고압선로를 지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사실 울산, 부산에 걸쳐있는 고리 원전부터 경남북부를 연결하는 이 송전탑은 올해 말 완공하는 신고리 3호기를 위한 시설이라기보다는 앞으로 건설할 신고리 4, 5호기를 위해 미리 확보해놓는 시설이라고 보는 게 더 옳다.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핵발전을 고집하고 에너지 수요보다는 공급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의 안일한 계획으로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몇 해 전 한국전력은 산마루마다 서 있는 까마득한 높이의 철탑을 따라 육중한 전선이 길게 늘어진 모습을 찍어 광고로 사용했다. 철탑을 짓기 위해 산을 빙 둘러가며 길을 내 걸핏하면 산이 무너져 내리고 산동네 사람들의 땅을 강제로 뺏어 고통을 준 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걸 자랑이라고 내놓는 한전의 모습에 탄식했다.

발전소에서, 변전소에서, 송전선로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모든 현장에서 삶터를 훼손하고 자연을 파헤치는 파괴가 잇따른다. 우리는 전기는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말한다. 값도 싸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전기를 쓴다는 걸 알지 못한다.
밀양의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인 건, 우리가 바로 전기를 쓰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정명희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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