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가 한다면 뭔가 다를 줄 알았다. ‘테라파워’라는 이름부터 좀 다르지 않은가. 뭐가 달라도 다르니까 빌게이츠 같은 인물이 추진하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사를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가 말하는 새로운 원자력이라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해온, 이미 안전하지도 실용가능하지도 않다고 판명한 고속증식로의 하나에 불과했다.

4월22일 에너지 벤쳐회사라는 ‘테라파워’의 대표로 빌게이츠가 한국을 방문했다. 대표적인 IT 업계의 거물인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원자력전도사가 됐는지 한국에 와선 한 일이란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원자력연구원과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 공동 추진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언론에선 앞 다투어 소듐냉각고속로가 기존의 핵발전이 가진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고속로는 이미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수십년 동안 시도했지만 결국 위험성 때문에 포기한 기술이다.

고속로는 소듐(나트륨)을 냉각제로 쓰는데 소듐은 공기와 접촉하면 화재가 나고 수분과 접촉하면 폭발로 이어진다. 냉각제 누출사고는 핵발전소에선 너무나 흔한 사고다. 만약 상용화한 고속로에서 냉각제 누출사고가 난다면 이는 핵발전소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돌이킬 수 있는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미국에서 꿈의 원자로, 프랑스에선 슈퍼피닉스라는 환상적인 이름으로 이 기술을 도입했지만 실험단계에서 사고발생을 제어하지 못해 포기했다. 일본에선 몬주 고속로를 만들어 발전을 시작했지만 발전을 시작한 지 석 달 남짓 된 1995년 12월 금속 나트륨 640킬로그램 가량이 유출되며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14년만인 2010년 5월 운전을 재개했으나 또다시 사고가 일어났다. 그동안 몬주 고속로에 직접 건설비와 유지관리비, 연료비 등으로 소요된 비용만 1조 3000억 엔이 넘었다.

원자력 강국이라 불리는 세 나라의 실험이 모두 실패로 판명됐는데도 막대한 유지 보수비와 사고 위험성이 높은 사업을 4세대 원자로로 표현하며 새로운 것인 양 포장하는 것은 빌게이츠와 언론의 사기극에 불과하다.

4월 26일은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27년이 된 해다. 여전히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이내 지역은 방사능 수치가 높아 사람이 살 수 없는 통제구역이다. 원전 안의 핵연료는 아직도 방사성 물질을 뿜어내고 있고, 새롭게 만들고 있는 격납시설의 수명은 100년에 불과해 그 이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은 불과 2년전 이다. 핵발전소 전도사가 되어 각 나라를 돌아다니는 빌게이츠에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부터 방문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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