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앞 대한문 농성촌이 철거됐다. 철거하는 사람들과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정치 노림수나 속셈이 있겠지만 그 깊은 속까지야 잘 모르겠고 겉으로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문화재를 훼손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것.” 생존의 문제가 달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서울 그 넓은 땅 속에 그 조그만 모퉁이하나 차지하고 풍찬 노숙 하고 있는 텐트 몇 동이 그리도 눈에 거슬려나 보다. 그냥 보기 싫고 듣기 싫어 애써 무시하는 것을 넘어 꼭 없애버려야 할 것이었기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무자비한 폭력을 써서라도 사라지게 해야 속이 시원한 것이 그들의 마음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은 해고노동자건 성적 소수자, 혹은 양심 병역 거부자 이건 간에 사회적소수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더 나아가 소수의 의견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다수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사회정의라고 이름붙이고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이를 칭송하는 이상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이상한 한국사회는 집단주의의 틀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집단주의 특징은 마케팅에서 “편승효과” 혹은 “1등 만능주의”라고도 한다.

편승효과(band wagon effect)라 함은 무비판으로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의 경향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사회에서 특히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마디로 “요즘 이게 대세에요”, “이 제품이 가장 잘 나가요”라고 광고하면 아무런 비판 없이 그 제품이나 상품을 구입하는 성향인 것이다. 즉 1등이라고 하면 그렇게 꼼꼼하고 합리적인 한국 사람들도 꼼꼼한 제품 비교나 가격 비교 없이 무비판으로 구입하는 것.

예를 들자면 현재 대한민국 에어컨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광고를 보자. 두 회사 모두 자신들이 1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서로 자신들이 “대세”이고 가장 잘 나간다는 것을 1등이라는 표현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 대우전자가 망한 이후 삼성과 LG 2개 회사가 대표로 에어컨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 1등이라고 주장하면 도대체 누가 진짜 1등인 걸까 헛갈린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기준으로 서로 1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렇게 억지스러워도 1등을 주장하는 것은 그 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대세라고 이야기하면 아무런 비교나 비판 없이 수 백만원에 달하는 에어컨이라는 제품도 술술 팔리기 때문. 첨단 가전제품만 1등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급속도로 시장이 성정하고 캠핑용품 시장이나 보일러 시장, 증권시장에서도 1등을 남발하고 있다. 보통 잘 사용하는 표현들이 “대한민국 No.1”, “최고”, “1등” 이런 표현들이다. 이렇게 “1등”이라는 표현이 남발하고 있고 이것은 그 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복잡하게 이 제품과 저 제품을 비교하면서 꼼꼼하게 따지기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이 뭐야?’ 즉, ‘1등 제품이 뭐야?’ 라고 확인하고서 그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별다른 제품비교나 정보탐색 없이 무비판으로 1등 제품을 사서 쓰는 현상을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일본과도 다른 ‘소비자 의사결정과정의 한국 고유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수가 선택하는 것을 따라가면 손해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소수가 되면 피해를 본다’는 의식의 발로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사회적 소수자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보아왔던 경험들을 축적해 놓은 우리만의 피해의식이라.

돌이켜 보면 우리 주변에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집에서 구박받았던 경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 사실이 마치 무슨 큰 죄인 양 신문이 떠들어대는 경험을 우리는 겪어보지 않았는가. 사실 대한문 앞 농성장도 마찬가지다. 소수라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력에 당하면서도 소수라는 이유로 손해보고 피해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다양한 소수의 의견과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소신과 주장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 본적이 별로 없다. 일단 주변사람, 윗사람의 의견을 듣고 적당히 따라가고 다수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편하고 좋다는 것을 무의식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무의식이 상품을 구입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 무난한 제품, 1등 제품으로 사게 한다.

이런 집단주의 효과는 20세기 초반에 사라졌다고 믿는 위험한 전체주의, 파시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1등에 도전하는 2등, 3등, 또 작지만 소신 있는 4등 ,5등, 6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그런 3등, 4등을 선택해야 시장도 올바르게 서고 소수자도 대접받는, 아니 최소한 무자비한 폭력에 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올바른 소비만으로도 세상을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바꿀 수 있다.

김범우 /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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