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가 지난 정기대의원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있어 큰 기쁨이었다. 금속노조로부터 발암물질사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던 것이 작년 11월. 그 이후 약 두 달간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과 수차례 만나서 발제와 토론을 거듭하였다. 우리의 꿈은 갈수록 커졌다. 발암물질로 인한 금속조합원의 고통을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기획하면서, '미조직 노동자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게 어디 노동자의 문제뿐이겠냐'며 금속노조가 나서서 우리 사회의 위험을 제거하는 일을 해보자고 다짐하면서 막걸리 잔을 부딪칠 때는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월 27일, 전례 없는 발암물질추방사업이 대의원대회를 통해 최종적으로 승인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부담도 있다. 금속노조에서 적극적으로 건강권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여기에서 성공을 거두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압박감도 무척 크다. 하지만, 나는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다시는 이런 기회 없다

첫째, 이미 시범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사업이다. 작년에 금속사업장을 대상으로 하여 발암물질 실태를 확인하였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쌍용자동차 최루액에 사용된 메틸렌클로라이드가 세척액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티씨이도 세척액에서 발견되었다. 현장 곳곳에 이러한 발암물질들이 있지만, 지금껏 몰라서 대응을 못해왔을 뿐이다. 조합원들과 함께 발암물질을 찾아내고, 어떻게 할 것인지 조합원들과 함께 토론한 다음, 다른 물질로 대체하거나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현장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추진하면 많은 문제들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달랑 보고서 하나 내고 마는 사업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는 사업이며, 조합원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업이 될 것이다.

둘째, 해외의 발암물질 운동사례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어,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게 준비하였다. 우리나라는 발암물질 추방운동이 이제 시작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운동이다. 따라서 성공사례도 많으며, 개선사례도 다양하다. 캐나다와 유럽 등 해외 노동조합들의 적극적 투쟁은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발암물질정보센터에서는 해외 사례를 이미 충분히 검토하고 정리해 놓았다.

▲ 1월 25일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 2010년 의제개발 기획회의가 열린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 배현철 실장이 참석하여, 금속노조의 올해 발암물질사업을 소개하고 환경운동단체들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셋째, 사회적으로 응원을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사업이다. 2009년 발족한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에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여성환경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이 함께 하고 있다. 발암물질목록작성전문위원회에는 약 30명의 전문가들이 결합되어 있다. 네트워크에서는 벌써부터 금속노조의 발암물질추방사업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네트워크에서 구축한 발암물질목록과 데이터베이스를 금속노조가 공유하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미 네트워크의 전문가들은 발암물질진단사업이나 직업성 암 피해자 보상투 쟁에 결합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조합원들과 많은 대화 나눌 수 있는 사업

하지만, 금속노조는 이들로부터 지원과 지지를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발암물질 중 다수는 노동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노동현장으로부터 발암물질을 없애나가는 것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현장에서 발견된 발암물질들을 잘 정리해서 사회적으로 공개한 후, 발암물질들을 어떻게 줄여나가고 있는지 시민들이 잘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합원 뿐 아니라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도 직업성 피해자를 찾아내고,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해외에서 전개되는 안전한 자동차 만들기 운동이나, 증가추세에 있는 어린이의 암에 대한 기업의 책임 등에 대해 우리의 할 일을 찾아낼 것이다. 금속노조는 한국사회를 유해물질로부터 지켜내는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아직 갖지 못한 것이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된 활동가들이 부족하다. 지부와 지회에는 발암물질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사업의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훈련에 나서야만 한다. 금속노조에서는 곧 발암물질사업을 위한 기획단을 구성하여 수련회를 가질 것이며, 금속노조 전체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수련회도 추진할 것이다. 발암물질진단사업이 추진되는 지부나 지회별로 교육과 훈련이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로부터 각 지회에 이르기까지, 무슨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잘 이해함으로써, 현장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지역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업성 암의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지역의 공단을 발암물질 없는 안전한 공단으로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직활동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도 따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금속노조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며 함께 하고 싶은 조직이라고 인정받는데 이 사업이 기여할 수 있게, 함께 고민하고 기획하는 자리도 마련되면 좋겠다.

원래, 노동자 건강권이란, 노동조합이 자본으로부터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해외에서는 산별노조가 조직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주장하고 인정받는데 있어서도 안전보건 활동이 상당한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통해 이기는 방식을 잊어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발암물질추방사업을 기획해온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의 각오는 ‘필승’이다. 그것도 개별사업장에서 작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크게 승리하는 것이다.

각 사업장에서 승리하는데,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금속노조가 승리하는데 있어 발암물질추방투쟁이 한 역할 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드린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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