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먹튀 얘기 좀 하지 말어.”
“아니 왜요? 마힌드라 먹튀 의혹이…….”
“누가 그걸 몰러? 마힌드라가 당연히 먹튀지, 안 그럼 뭐 하러 들어왔겠어?”
“그런데 왜 먹튀 얘길 하지 말라는 거죠?”
“현장 사람들 다 물어봐. 그 사실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다 자기 정년 할 때 까지만 먹튀 안 하길 기도하고 있지. 걔네들 먹튀할 건 뻔한 거니까 대안을 말하라는 거야. 먹튀 얘기 그만 하고.”

뻔한 내용 입증하기

사실이 그렇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란 사실을 굳이 법원으로 끌고 가야 입증되는 것일까? 단 하루만 현장에서 일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마찬가지로 상하이차에 한번 당했는데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한 이유를 알기 위해 굳이 과학적 입증이 필요할까?

현장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경험을 통해 마힌드라가 원하는 것은 쌍용차가 보유한 선진 기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도 역시 자국 자동차산업이 세계시장에 수출용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 습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뻔한 내용’을 입증하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현대차 노사, 쌍용차 노사 모두 각각 ‘불법파견’과 ‘먹튀’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 그 뻔한 내용을 주변에 입증함을 통해 사회적 원군을 조직하는 전투, 그래서 이 전투는 단순한 사업장 하나의 노사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전투’가 돼간다. 다시 한 번, 그 뻔한 내용 입증하기를 시작해보자.

‘마힌드라 쌍용 렉스턴’?

신차 코란도C가 2011년 2월 출시된 후 이렇다 할 신차가 없던 쌍용차는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차량 하나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렉스턴W. 기존 배기량 2.7ℓ 기반의 엔진을 쌍용차가 자체 개발한 2.0ℓ 디젤엔진으로 교체하고 차체 길이를 줄이는 등 최근 세계 자동차산업 주요 트렌드인 ‘다운사이징’을 한 것이다.
쌍용차가 자체 개발한 배기량 2.0ℓ 한국형 디젤엔진은 유럽의 강력한 환경규제인 유로6 기준을 충족하도록 설계됐으며, 올해 초 출시한 또 다른 페이스리프트 차량 ‘코란도 투리스모’에 탑재되고 있다. 렉스턴W는 지난해 인도 시장 출시를 시작으로 남아프리카와 유럽 시장으로 수출되고 있다.

인도 시장에 출시한 렉스턴W는 한국에서 CKD(반조립) 상태로 부품이 수출해 인도 현지 차칸 공장에서 최종 조립하고 있다. 인도에서 팔리는 렉스턴의 이름이 이상하다. ‘마힌드라 쌍용 렉스턴’. 이 차량의 뒷면에 쌍용 마크와 함께 하단부에 ‘by Mahindra’라는 마크가 찍혀 있다.

이거 도대체 쌍용차야, 마힌드라 차야? 아무도 모르게 인도에서 ‘마힌드라’ 브랜드를 쌍용 보다 앞에 사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남아프리카에 출시한 렉스턴은 어떤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지 의심된다. 쌍용차 해외 수출은 대부분 마힌드라 딜러를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힌드라 쌍용 S101

이뿐 아니다. 인도 최대의 자동차 포털 사이트인 ‘Cardekho.com'을 방문하면 자동차 브랜드 항목에 ‘마힌드라’와 별도로 ‘마힌드라 쌍용’이라는 카테고리가 별도로 존재한다. 그 항목에 들어가 보면 조만간 출시될 차로 ‘마힌드라 쌍용 코란도’, ‘마힌드라 쌍용 S101’이란 차가 소개돼 있다.

코란도C가 인도 시장에 출시될 것이란 소문은 계속 있었지만, ‘S101’이라는 차는 처음 들어본다. 해당 사이트가 소개한 내용을 보면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값싼 SUV”라고 한다. 전장 4미터 이하 길이로 가격은 800만원대로 출시할 예정이라 한다.

▲ 인도에서 팔리는 렉스턴의 이름이 이상하다. ‘마힌드라 쌍용 렉스턴’. 이 차량의 뒷면에 쌍용 마크와 함께 하단부에 ‘by Mahindra’라는 마크가 찍혀 있다. 이거 도대체 쌍용차야, 마힌드라 차야? 사진= www.ssangyongrexton.in에서 인용

인도 자동차시장이 워낙 작은 차량에 집중하다보니 이런 신차 개발 시도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 마힌드라는 이 차의 이름에 왜 ‘쌍용’이라는 두 글자가 포함했을까? 수많은 외신 기사들이 똑같이 보도하고 있다. S101 신차의 엔진 개발은 대부분 쌍용차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고 말이다.
인도정부는 길이가 긴 SUV에 대해 22%의 소비세를 매기는 반면, 전장 4미터 미만(Sub-4-meter) 차량에 10%의 소비세만 부과한다. 한국에서 배기량 1.0ℓ의 경차에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와 유사하다. 다시 말해 S101은 기본적으로 인도 시장을 겨냥한 차량이다.

게다가 이 차량 역시 렉스턴W가 조립되고 있는 차칸 공장에서 양산할 예정이다. 이 차량 생산은 한국에서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는 CKD 방식이 아니다. 부품 생산 전체를 인도 현지화 해서, 설계와 생산 과 판매까지 모두 인도에서 이뤄진다. 쌍용차가 한 일은 오로지 엔진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한 것이다.

인도에서 차량 길이만 짧다고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처럼 엔진 배기량에 제한이 따른다. 배기량 1.2ℓ 이하 엔진, 디젤의 경우 배기량 1.5ℓ 이하 엔진을 탑재해야 세금 감면 혜택이 있다. 마힌드라에 이들 소형엔진 개발 기술이 핵심 기술에 해당한다.

신차와 신형 엔진 개발에 8억 달러(8,800억원) 투자

올해 초 무급휴직자 455명 복귀시키겠다는 발표와 함께,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향후 3~4년간 9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쌍용차 주가는 연일 상종가를 치며 상승했으며, 마힌드라가 쌍용차의 장기발전 프로젝트를 갖고 있는 것처럼 치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9억 달러 투자계획과 별도로 마힌드라는 인도에 9억5천만 달러 투자계획을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두 개의 투자계획이 가진 목표는 마힌드라와 쌍용차가 각각 B-100과 X-100이란 신차와 엔진 3종씩, 총 3개의 플랫폼과 6종의 신형 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보도된 외신 기사들에 따르면, 개발 예정인 신형 엔진 6종은 배기량 1.2~1.6ℓ의 가솔린 엔진 3종과 디젤 엔진 3종이라 한다. 게다가 모조리 마힌드라와 쌍용차의 ‘합작 개발’ 형식이며, 개발 과정 전체는 인도의 마힌드라 리서치 밸리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게 과연 두 개의 투자계획에 입각해 진행하는 것인가? 사실상 하나의 투자계획 아래 쌍용차 기술력으로 신형 엔진을 개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 쌍용차 라인업(제품군)만 보자면, 가장 작은 엔진이 렉스턴W에 탑재된 배기량 2.0ℓ 디젤 엔진이며, 나머지 차량에 이보다 더 큰 엔진이 들어간다. 즉, 배기량 1.2~1.6ℓ 신형 엔진 프로젝트 대부분은 인도 시장을 염두에 둔 개발이다. 특히 배기량 1.2~1.5ℓ 엔진은 인도에서 세금감면 대상이다. 신형 엔진 양산 역시 인도에서 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은 X-100과 800억원 유상증자로 땡?

9억 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 마힌드라의 행보 역시 엄청난 의혹을 사고 있다. 올해 2월14일 쌍용차 이사회에서 800억원 유상증자 계획을 확정한 후, 파완 고엔카 사장이 직접 언론 인터뷰를 통해 더 이상의 투자는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쌍용차에 현금 더 못줘, 개발비 자체 마련해야”, <조선일보> 2월18일자)

9억 달러, 아니 한국 돈으로 9,900억원을 투자하겠다 해놓고 실제 800억원 유상증자로 땡이라는 것이다. 신차 하나 개발에 최소 3,000억원이 들어가는데, 이 돈으로 무슨 차를 개발한다는 말인가? 고엔카의 언론 인터뷰 이후 수많은 언론사들이 마힌드라의 ‘먹튀’ 가능성을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마힌드라 그룹, 쌍용차 ‘기술 이전’ 시나리오?”, <한겨레> 2월19일자)

쌍용차에 존재하는 신차계획은 소형 SUV로 알려진 ‘X-100’ 프로젝트가 전부다. 그나마 빨라야 내년 연말에나 출시될 예정이라, 그때까지 생산라인 운영을 어떻게 할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X-100을 출시하더라도 인도에서 병행생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일한 신차 계획, 그러나 그조차 미덥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유수한 세계적 자본들도 당했는데?

<이코노믹 타임즈>가 2012년 12월31일자로 내보낸 중요한 기사가 있다. 지난 15년간 마힌드라가 해외 선진 업체들과 합작회사를 차리는 방식으로 기술 습득한 뒤 합작을 정리해왔다는 내용이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본가 언론이라 할 <이코노믹 타임즈>조차 이런 기사를 심층 취재해 다룰 정도다.

1995년 마힌드라는 미국의 포드와 50:50 자본 출자로 합작사를 차렸다. 마힌드라는 이 합작사에 300명의 기술진을 파견해 포드가 가진 선진 자동차 제조기술 습득에 나섰다. 양사의 합작은 고작 30개월 만인 1998년에 손해만 입은 채 종료하고 말았다.

마힌드라는 기술을 전수받은 300명의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02년 마힌드라 최초의 승용차이자 SUV인 스콜피오(Scorpio)를 출시했다. 이전까지 마힌드라는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를 주로 만들었고, 기껏해야 외국 짚차를 CKD 상태로 받아서 최종 조립하던 회사였다.

2005년, 마힌드라는 프랑스의 르노 사와 합작사를 차리고 ‘로간’이라는 르노의 승용차를 생산,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마힌드라는 ‘모노코크 방식’의 SUV 제작 기술을 습득한다. 아울러 로간의 플랫폼과 엔진 라이센스 공유에 성공한다. 이 합작 역시 55개월 만인 2010년, 무려 1억 달러의 손실만 입은 채 종료했다. 마힌드라는 ‘마힌드라 르노 로간’을 외형만 약간 바꿔 ‘마힌드라 베리토’라는 이름으로 재출시 한다.

마힌드라는 미국의 트럭 제조업체인 ‘내비스타’와 합작도 지난해 12월, 30개월 만에 정리했다. 이 회사 역시 무려 1억 3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합작 과정에서 마힌드라는 4.7ℓ와 7.2ℓ 맥스포스 엔진 라이센스를 공유한다.

지난 15년간 마힌드라가 합작사를 통해 무슨 일을 벌였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코노믹 타임즈>는 한 전문가의 입을 빌어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보기에 마힌드라가 기술력, 자동차 제조 노하우, 기획력 등을 합작회사로부터 흡수한 반면, 이들 각각의 합작회사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며 끝장나고 말았다.”

또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아래 그래프는 최근 경총이 발간한 「쌍용자동차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소책자에 실린 것이다. 1998년 대우그룹이 인수한 후 적자폭이 크게 늘었고, 반대로 주인 없이 조흥은행이 관리하던 2000년부터 적자를 극복하고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상하이차가 인수한 2004년부터 다시 적자로 떨어지고, 법정관리 시절인 2009년 오히려 적자폭이 줄어들다가 마힌드라가 인수한 2011년부터 또다시 적자로 떨어졌다.

▲ 1998년 대우그룹이 쌍용차 인수. 2000년 대우그룹 부도에 따른 은행관리. 2004년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 2009년 법정관리. 2011년 마힌드라가 쌍용차 인수.

이 그래프가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주인이 있던 시절에 기술력 빼가고 노동력 착취하느라 적자가 났고, 오히려 주인이 없던 시절에 자체 기술력을 통한 회생능력으로 흑자를 봤다는 얘기이다. 우스운 일이다. 그럼 경총은 쌍용차 공기업화를 밀고 있다는 말인가?

3월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마힌드라에 대한 먹튀 의혹을 전사회적으로 제기한 가운데, 3월27일 열린 쌍용차 주주총회에서 이와 관련한 어떤 언급이 없었다. 파완 고엔카도 이유일 사장도 입을 다물었다. 2월14일 이사회 직후 자청해서 인터뷰를 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던 모습과 비교해보면 태도가 완연히 달라졌다. 최근 국회에서 구성된 쌍용차 여야 협의체와 면담도 가졌지만, 일체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조금씩 ‘마힌드라 먹튀’의 베일이 벗겨지고 있는 가운데 자본가들도 조심스럽게 숨기 시작했다.

또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동자, 시민, 학생이 주변에 이런 ‘뻔한 내용 입증하기’를 통해 사회적 원군을 조직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미 ‘뻔한 내용’임을 잘 알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 다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 조직하는 것이다. ‘뻔한 내용’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요구하는 ‘대안’을 들고서. 따라서 ‘먹튀’ 얘기만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오민규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팀/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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